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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육이오전쟁의 영웅 임부택 장군

블로그에 <김태영 국방장관 청문회를 보며>를 쓰면서 임 장군을 언급했는데, 여기 더 자세히 살펴본다.(아래 글 중에서 바이오코드 표기는 생략함. 카페 분석용 글에는 자세히 적음)

 

임부택 장군은 1919년 9월 24일, 전라남도 나주에서 나셨다.

당시 대부분의 군 고위 장성과 국방부 관리들이 육이오전쟁을 거의 대비하지 않은 데 비해,

임부택 장군은 마치 이순신 제독이 거북선 만들고, 판옥선 만들며 수군을 조련한 것처럼 미리 참호를 파고, 각종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임부택 장군은 육이오전쟁이 일어날 때 중령이었다. 그의 계급이 만일 준장이나 대령만 됐더라도 육이오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거나 허무하게 대구 이남으로 정부가 밀려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임부택 장군의 업적을 이순신 제독만큼 올릴 수가 없다.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의 처지가 그러했다. 천하의 영웅이라도 초야에 묻혀서는 빛을 발할 수가 없듯이 이런 훌륭한 군인이 겨우 중령이라면 그에 맞는 일밖에 이룰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을 적재적소에 써야 하는 것이다.

 - 육이오전쟁의 영웅 임부택 장군

 

임부택 장군은 거의 모든 사단장들이 육이오 당일 전선을 비우거나 방어선을 포기하고 후퇴할 때 적 2개 사단을 상대로 춘천을 방어한 영웅이다. 이때문에 서울을 점령하고도 인민군은 한강 이남으로 진격하지 못했다. 무려 3일간 인민군은 춘천 전투를 지켜보며 서울에서 대기했다. 원래 춘천으로 내려온 인민군 사단이 수원까지 돌아내려와 국군 후방을 치기로 작전을 짜놓았는데 이게 틀어진 것이다.

이 사흘 사이 유엔군 파병이 결정나고 미군이 부산항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맥아더 장군이 노량진 진지를 순찰하며 한강 너머 용산을 바라다보는 일도, 노량진 참호를 지키던 이등병이 "왜 후퇴 안하느냐?"는 맥아더 질문에 "후퇴 명령이 오지 않는 한 이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대답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이순신이 이순신인 것은 완벽주의자라서 그렇다.

그는 완전무결하게 승리하고 싶어한 제독이었다. 그래서 전쟁 초기 원균의 구원 요청을 묵살하고, 정유재란 때 왜군을 공격하라는 왕명을 거역하는 것이다.

이처럼 임부택 장군 역시 (G07 때문에) 적의 남침 정보를 소홀히 하지 않고 미리 준비한 것이다. G07의 위기의식은 이런 데서 빛을 발한다. 늘 불평불만이 많아 주변 사람들로부터 소극적이라는 평을 받기 쉬운 G07이지만 이런 전쟁 상황에서는 누구보다 위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토머스 에디슨, 스티브 잡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모두 G07의 안전, 완벽을 추구하는 의식이 낳은 영웅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평화시에는 재미를 못본다. 불만을 자주 표현하는 이들을 좋아할 윗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뛰어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군단장을 마지막으로 퇴역한다.

이런 그가 이승만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것은 춘천 전투가 아니라 압록강 물 떠다 이승만에게 바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임부택 장군은 이 훈장을 거절했다고 한다.(물론 훈장 기록에는 있지만 메달을 안받은 듯하다.)

 

평화시에는 뭐니뭐니해도 G12나 G01 같은 사람들이 고위직을 차지하기 마련이다. 김태영 장관이 바로 G01이다. 오늘도 안타까운 영웅들은 음지에서 뭔가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다. G07들이 용기를 얻으시기를...

 

<임부택 장군 자세히 알기>

<6.25 때 이순신 장군이 환생했었다>

<춘천전투 국군 및 인민군 지휘관 명단, 및 자세한 날짜별 전투 일지>

 

* 바이오코드 분석용으로 쓴 글이라 코드 표기를 완전히 삭제하지 못했음을 양해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