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여름쯤이었을 것이다. 당시 삼성 애니콜 휴대폰 신문광고를 찍으러 강화도 마리산에 오른 적이 있다. 정상에 올라 통화하는 장면을 찍어 한 번 딱 싣는 기획광고였다. 신문 맨 뒷면에 전면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광고료 약간 받고, 당시 매우 비싼 휴대폰 기기를 선물로 받았다. 옛날 일이라 정확하지 않은데 기기값이 아마 160만원 정도 되지 않았나 싶다. 당시 난 휴대폰을 이미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제품은 큰형에게 선물했다. 그러다보니 우리 형은 아직도 그때 그 번호를 고수하고 있다.
그때 나는 마리산 정상에서 노트북으로 전자도서관을 열람하는 시대가 몇 년 안에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광고였으니 신문에 그렇게 실렸을 것이다. 정말이지 나는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어느 산이든 올라가 마음껏 인터넷 하고, 마음껏 전자도서관의 책을 열람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17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아직도 그게 안된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기술은 이미 십수년 전에 개발이 되었다. 휴대폰마다 무선인터넷 기능이 있지만 기능을 꼭꼭 막아 놓고, 건드리기만 해도 엄청난 요금을 부과해버린다. 회사마다 표준이 달라 서로 소통이 되지도 않고, 제공하는 정보는 통신업체들이 정한 소수들이 독점하는 허섭한 것들이다. 죄다 어린 애들 호주머니나 터는 수준들이다. 그래서 SK나 KT에 아는 사람 찾아가 우리 컨텐츠 넣어달라고 사정하는 브로커들이 판을 쳤다. 보나마나 검은돈이나 향응이 오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읽을만한 기사. 댓글을 반드시 봐야 한다.>
아이폰이 출시돼도 별 거 아닐 것이라고 우기는 기사를 많이 보았다. 아이폰이 한국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할 것이라고 강변한다. 기득권자들의 몸부림으로 보인다. 아니면 그들의 대변자들로 보인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출시되는 스마트폰이 해상도나 배터리 성능이나 카메라 등 하드웨어 분야에서 더 좋은 것도 있다는 걸 나도 안다.
그런데 세상은 겉보다는 속이 충실해야 한다. 컨텐츠가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기기라도 컨텐츠의 소통을 막으면 아무것도 안된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집집마다 인터넷 전용선 깔지만 한 아파트에 AP 하나만 있으면 인근 수백 명이 이용할 수 있다. 내가 아는 한 컴퓨터 판매상은 집에다 커다란 안테나 세우고 거길 통해 무선인터넷 코드 하나를 개방해 놓았다. 덕분에 구난차(레커) 기사들이 사고가 없을 때는 인근 주차장이나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무선인터넷을 즐긴단다. 이웃들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 마음껏 인터넷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단다. 그래서 나도 암호 걸지 않은 무선인터넷을 늘 켜둔다. 다른 누가 마음껏 쓰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또 150회선을 쓰던 어느 큰 회사에 가서 딱 3회선만 무선으로 쏘아주고 나머지를 다 해지했더니 KT에서 난리가 났단다.
난 대한민국의 I.T를 이끌어가는 통신회사들이 이런 식으로 국민을 속이며 돈벌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제야 시외전화 요금을 시내전화와 똑같이 한다는데, 요즘같은 세상에 시내 시외를 구분하는 사람들이 I.T 정책을 세우고 있으니 우리나라 I.T 순위가 16위로 밀려나는 것이다. 10년 전에 그랬어야 한다. 국제전화 요금도 시내전화와 다를 이유가 없다. 국제전화도 이웃에 전화하는 것처럼 개방해야 한다.
물론 KT나 SK나 무지막지하게 요금을 거둬들여 그 돈으로 기술 개발에 쓰면 뭐라고 할 말은 없다. 일부러 세금도 내는데 I.T 세금이라고 여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수익금에 비해 정작 I.T 기술은 후진하고 있으니 용처는 우리 기대하고 다른가 보다.
아이폰이 출시된다는 의미는, 애플사의 아이폰 기기를 파는 이상의 다른 가치가 있다. 이게 핵심이다. 아이폰이 KT나 SK가 방통위 몇몇의 비호를 받으며 금이야 옥이야 쥐고 있던 아날로그 식 '나와바리'를 일거에 무너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두 회사에 밉보이면 하루 아침에 몰락하던 컨텐츠 제공업체들도 이제야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컨텐츠 자유 경쟁 시대가 열린 것이다.
또 회사마다 다른 옵션, 다른 기능, 다른 표준으로 헷갈리던 위치정보확인서비스도 벼락을 맞고 경계를 허물어야만 할 것이다. 한두 가지가 아니다. 소소한 기득권으로 밥 먹던 사람들, 안간힘을 다해도 경계를 허물어주어야만 할 것이다.
아이폰 출시는 I.T 빅브라더들을 물리치고 진정한 자유 소통의 무선 인터넷 시대를 여는 시발점이다. 거기서 애플이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해야 우리 기업들이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된 경쟁에 뛰어들 것이다. 컨텐츠가 무한 공급되고 무한 유통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에서 고급 컨텐츠가 생산된다. 하드웨어 장사만 돕느라 정보통신 정책이 일방통행한 측면이 있다. 소프트웨어 발전과 보호를 외면해온 방통위를 '아이폰 사건'이 벼락처럼 내려칠 것으로 기대한다.
17년 전의 뻔한 내 예측이 이제야 이루어진다니, 이렇게 오래도록 있는 기술을 쓰지 못하게 막아놓고 2류, 3류 서비스를 유지시킨 공무원, 기업체는 응당한 욕을 먹어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국민을 속인 죄, 속이는 죄가 가장 나쁘다.
일제 강점에서 해방될 때 가슴 떨리는 마음으로 태극기를 휘두르던 그 기분 그대로
웰컴 아이폰!
- 1945년 9월 9일, 미군이 진주할 때의 환영 시위
wellcome에 l이 하나 더 들어갔다. 放鮮은 조선해방이란 의미다.
그 아래는 민주정권수립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적어나간 플래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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