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정상의 히로시마 한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 참배를 바라보는 죽창들의 눈이 흔들린다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도시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핵폭탄이 터져 수십 만 명이 순식간에 죽은 도시다. 성경에 나오는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도 이처럼 무시무시한 죽음을 받지는 않았다.
그날, 일본인 69만 1천 명이 피폭되어 그중 23만 316명이 죽었다. 이때 천만 뜻밖에도 조선인 징용자 등 7만 명이 피폭되고, 이중 약 3만(또는 4만) 명이 사망했다.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는 바로 이들 3만 명의 고혼을 위로하는 비석이다.
* 히로시마 원폭으로 총 5만 명의 한국인 피해자가 발생했다. 그 중에 3만 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생존자 2만 명 가운데 귀국자가 1만 5천 명, 잔류자가 5천 명이다. 한편 나가사키에서는, 2만 명 정도 피해를 입었다. 약 1만 명이 사망했다. 생존자 1만 명 가운데 귀국자가 8천 명, 잔류자가 2천 명 정도다.
* 1967년 한국에서 ‘원폭피해자협회’가 결성된 후 지속적으로 일본정부에 대해 치료와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
* 1970년 4월에 민단 히로시마 본부의 주도 아래 한국인원폭희생자 위령비가 건립되었다.
* 위령비는 높이 5미터, 무게 10톤으로 전형적인 한국식 비석이다. 거북이 모양을 한 받침대 위에 석주를 세웠으며 그 위에는 쌍용 모양을 새긴 석관이 올려 있다. 한국에서 모두 제작되어 히로시마로 운반되었이다. 일본 현지 시의회 반대로 공원 밖에 세워졌다가 1999년에 안으로 옮겼다. 함에는 희생자 명부가 담겨 있다.
* 위령비를 참배한 한국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이다. 죽창 문재인은 간 적이 없다. 한일 정상이 공동으로 참배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총리로는 오부치 게이조 이래 두번째다.
* 한편 원폭이 터진 또 다른 도시 나가사키에도 한인 희생자 위령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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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 전문
* ( )에 설명.
유구한 역사를 두고 우리 민족은 남의 것을 탐내지 않았고 다른 겨례를 해치려 하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남보다 먼저 깨고 남보다 잘 살던 자랑스러운 시절도 있었읍니다. 그러나 크고 강한 나라들 틈에 끼어서 그들의 침노로 말미암아 사직이 위태로와지고 민생이 불안에 휩쓸렸던 적이 허다했습니다.
왕손과 고관대작의 자제를 독노화(禿魯花 ; 툴루게. 인질)로 보내야 했던 한스러운 이야기와 수많은 미모의 처녀를 공녀로 바쳐야 했던 억울한 이야기가 그러했고 우리의 임금이 적왕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 송파 수항단(受降壇 ; 인조 이종이 대가리 찧으며 홍타시에게 항복한 자리)의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그러나 오천 년 기나긴 민족사를 통해서 여기 모신 2만 여 위의 생령이 겪으신 것 같은 슬프고 원통한 일은 일찌기 없었습니다.
배달민족이 나라 없는 슬픔을 뼈저리게 맛 본 것이 바로 태평양 전쟁을 통해서였고 그 중에서도 고비를 이룬 것이 바로 원폭투하의 비극이었습니다.
나라 잃은 왕손이기에 남모를 설움과 고난이 한층 더 했던 이우 공 전하(매국노 고종 이재황의 손자. 32세로 죽었다)를 비롯하여 명분 없는 싸움에 명분 없이 죽음의 마당으로 향해야 동포 군인들 괭이와 낫을 들고 마소같이 부림을 받던 동포 징용자들 유리언걸 삶을 찾아 여기로 모여든 동포 남녀들 아마도 도합 5만은 되리라고 믿어지는 가여운 군상들, 그들이 광도(廣島 ; 히로시마) 시민과 함께 전쟁 막바지의 가쁜 숨을 몰아쉬던 1945년 8월 6일 인류 최대의 참극이 여기에 벌어졌읍니다. 휘황한 섬광이 번쩍하는 순간 아비규환 모든 것은 수라장으로 화하고 말았습니다.
일본 국민에 주어진 이 거대한 파양마(破壤魔 ; 메마른 대지에 초목이 시들어 죽게 하는 악마)는 한국민(韓國民)이라고 해서 조금도 관대하지는 않았읍니다. 이 참극으로 귀한 생명을 잃으신 이우 공 전하 외에 무고한 동포 2만 여 위, 그 일이 있은 지 이십유오년(二十有五年)에 아직 혼령의 쉬실 곳도 마련하지 못 한 채 임염(荏苒 ;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다) 오늘이 되었으니 두려워 몸 둘 곳을 모르겠습니다.
이제 뜻 있는 동포들 일동과 장태희 건립 위원장 외 위원들을 비롯한 일본인 유지 몇 사람의 정성의 결정(結晶)으로 뒤늦게 나마 여기에 의지(依支)없는 혼령의 쉬실 곳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비옵건대 2만 여 위의 혼령께서는 모든 원한과 증오를 다 잊으시고 길이 평안히 쉬시옵소서.
앞으로 모든 이러한 비극의 씨를 뿌리는 자도 이를 받는 자도 없게 하시고 침략의 죄를 범하는 자도 침략의 슬픔을 받는 자도 없게 하시며 먼 나라와 가까운 이웃이 길이길이 서로 도우며 화친하게 살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옵소서.
평화를 사랑하고 침략과 살육을 미워하는 모든 인류는 여기 모신 혼령의 희생을 마음 깊이 슬퍼하며 영원하신 명복을 충심(衷心 ;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참된 마음)으로 빌 것입니다. 또 한국민의 뜨거운 사랑이 언제까지나 여러 영위(靈位)와 함께 할 것입니다.
- 나라 망하게 한 대원군 이하응(맨오른쪽)과 명성왕후 민자영(맨왼쪽), 망한 나라를 값싸게 팔아먹은 고종 이재황(가운데, 자기 아버지보다 위에 있다, 매국노가 그래도 왕이랍시고)
오른쪽 한국대통령으로서 처음 참배하는 윤석열 대통령. 일본 기시다 총리는 일본 총리로는 두번째. 죽창들(일제 때는 친일하다 지금 와서 갑자기 독립운동한 척 입으로 반일하는 사람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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