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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장점을 버려라!

장점을 버려라!

 

'뒷다리보다 더 길고 강한 앞발 두 개', 침팬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나는 왜 침팬지가 그 손으로 기어가는지 의아했다. 앞발로 땅을 짚으며 가는 편안함, 나뭇가지를 잡고 이 나무 저 나무로 뛰어다니는 능력을 포기해야 하는데 침팬지는 그러지 않는다. 뒷발 두 개로도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데 침팬지는 끈기가 없는지 금세 엎드리며 앞발을 짚는다. 사바나로 나가면 다른 동물을 잡아먹을 수 있는데 침팬지들은 나뭇잎을 뜯어먹거나 열매를 따 먹는다. 육식이라고는 기껏 개미를 잡아먹는 것뿐이다.

 

그러기를 6백만 년, 그런 사이 안락한 밀림을 떠나 사바나로 진입한 다른 침팬지 무리는

맹수들이 두렵고 달아나기 불편하지만 뒷다리로만 걸으며 앞발을 쳐들어 도구를 잡았다.

그들은 맹수들의 위협에 노출된 채 허겁지겁 도망다니다가 마침내 인간이 되었다.

인간이 된 침팬지들은 기득권을 다 버리고 맹수들이 득실거리는, 그러면서도 잡아먹을 만한 작은 동물이 많은 신천지 사바나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를 잡으면서 인간이 된 것이다.

 

침팬지에서 인간으로 진화하기까지 생물학적으로 어마어마한 사건이 줄을 이었다. 앞발이 손이 되고, 손으로 도구를 잡고, 언어를 발명하고, 문자를 발명하고, 불을 발명했다. 그러는 동안 침팬지들은 여전히 강인한 앞발로 열매를 따먹고 안락한 밀림에서 6백만 년간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진화론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끝없이 변화를 추구했다.

네 발로 걷는 편안함을 버리고나서야 앞발을 손으로 바꿔 쓸 수 있었다.

동물 섹스법인 후배위를 취하지 않고 마주보며 섹스를 하면서 인간은 더 풍부한 감정을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짐승 사냥을 하다가 직접 길러보기로 하여 가축을 만들고, 열매 채취를 하다가 농사를 생각해냈다.

 

먼 바다로 나가면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는다고 할 때 과감히 먼 바다로 나간 콜럼버스 일행은 미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자가 삼대를 못간다는 소문은 종종 사실임이 밝혀지곤 한다. 부자의 자녀들이 부유한 환경에 빠져들 때 변화에 둔감해지고, 부를 지키려고만 하는 순간 그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해버린 세상은 그 자녀들의 부를 무너뜨린다. 왕조가 무너지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하늘의 선택을 받은 천자라는 착각을 하는 순간 왕조는 망한다.

 

발전하는 인간은 항상 자신의 장점을 버리고 모험을 선택했다.

위기에 맞서 도전한 침팬지들은 인간이 되고, 안전한 밀림에서 나오길 거부한 침팬지는 오늘날 철창 우리에 갇혀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

“지성은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은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며, 기술력은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은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진다는 로마인이 수백 년간 대제국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은 간단하다. 그들은 약하기 때문에 강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대륙 중국에 붙은 작은 나라이자, 북쪽으로는 여진족, 몽골족이라는 강력한 유목군대의 위협을 받고, 바다 건너에는 더 큰 나라 일본의 침략을 수시로 받아야 했다. 그런 나라가 망하지 않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약점 때문이다.

 

조선 왕조가 개국하여 약 2백년간 명나라와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북쪽의 유목민들은 명나라가 눌러주고, 때마침 일본도 잠잠하여 태평성대가 계속되었다. 군대가 필요없고 무기가 필요없었다. 그러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연이어 터져 이 나라가 도탄에 빠져버렸다.

수천 년간 낙원에 안주하여 살던 인디언 수천만 명은 죽음을 무릅쓰고 먼바다를 건너온 정복자 수백 명에게 참담하게 죽었다. 그들의 총에 맞거나 혹은 그들이 몸에 지니고 온 천연두 균에 감염되어 죽어 오늘날 인디언은 보호정책에 기대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세상의 이치는 간단하다. 하늘 높은 곳은 영하 수십 도에 이른다. 햇빛을 받은 땅은 여름철이 되면 30도 이상 치솟는다. 그 차이가 임계치를 벗어나는 순간 뜨거운 열기는 하늘로 치솟고, 이 열기에 밀린 찬공기는 땅으로 끌려온다. 결국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나중에는 태풍이 된다. 그러다가 하늘과 땅의 온도차가 임계치 내로 접어들면 태풍은 사라지고 바람은 잦아든다.

사람 사회도 마찬가지다. 권력과 부가 소수에 집중되어 너무 오래가면 민중이 봉기하고, 그렇게 하여 왕조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 왔다. 권력과 부는 결코 영원할 수가 없다.

 

우리들 자신의 바이오코드는 사실상 아늑한 낙원 같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편안하기 때문에 잘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외부의 충격이나 공격을 받게 돼 있다. 그때는 방어에 취약해진다.

전인 성격을 갖춰야만 외부 변화에 강해진다. 마음이 요동치지 않는다.

 

글쓰는 일에 20년 넘게 전념해온 나는 그사이 글쓰는 환자가 돼버렸다. 남이 쓴 글을 보고 걸핏하면 화를 내고 너무 깊이 분석해서 점점 더 재미를 잃어간다. 지나가다 잘못 표기된 간판이라도 보면 신경질이 나고, 신문을 읽다 맞춤법이 틀린 걸 보면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그러다보니 독자와 거리가 너무 멀어지고, 뒤를 돌아다보면 따라오는 독자가 없을 때도 있다.

 

그래서 음악을 듣는다. 시간을 내어 피아노 레슨을 받을 생각도 하고 있다. 난 어려서부터 유난히 음악에 약해 음계, 음정을 구분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지금이라도 아마추어 단계를 넘을 만큼 음악 공부를 하고 싶다. 이처럼 내가 싫어하던 것, 하기 싫던 것에 도전해보고 싶다.

내 장점을 버리지 않으면 난 내 장점에 갇혀버리게 될 것이다. 단점을 극복하고, 미지의 분야에 몸을 던지지 않으면 난 가치를 잃고, 내 유전자는 크게 실망할 것이다. 내 유전자가 실망할 때 내게 다가올 재앙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