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교육 안해 나라 망해간다는 분들에 대한 내 입장
먼저 난 우리말 사전을 모두 4권 편찬하고, 현재 서너 권 더 집필중인 사전편찬자 겸
약 50여 종에 가까운 작품을 발표한 소설가라는 걸 언급하고 싶다.
그래야 말할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한자라면 옥편 하나만 있으면 웬만한 고전은 읽을 수 있는 정도라는 것도 말해야겠다.
난 직업상 고금도서집성과 사고전서를 갖고 있으면서 필요하면 들춰본다.
한자 한문도 모르면서 괜히 나선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니 하는 수없이 이런 사실까지 구차하게 말한다.
솔직히 말해 한자 교육 운운하며 우리 글 속에 시커먼 한자 섞어쓰는 거, 난 싫다.
불가피할 때 나도 가끔 한자를 병기하지만 대개 그러지 않는다.
생활 속의 어휘는 웬만하면 대학 졸업자라면 서로 의미를 알아듣는 데 큰 불편이 없기 때문에 굳이 적을 필요가 없다. 영어처럼 소리글자로 보면 된다.
다만 한자 교육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대학에 간 내 딸이 독서를 잘 못하는 걸 보고 한자 교육을 더 시키고 있다.
적어도 5000자 정도는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언제까지 한자를 가르쳐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우리 작가 시인들이 우리말을 가다듬는 속도로 봐서는
아마도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한자를 아주 없애지는 못할 것같다.
우리가 한자를 버리고 한글을 쓰기 시작한 지 백여년 남짓밖에 안됐다.
그것도 우리말 어휘를 만들고 가다듬기 시작한 건 50여 년 정도다.
초기에는 한자어를 한글로 단순 표기하는 정도였다. 한자어에 토씨나 다는 수준이었다.
독립선언문 같은 게 그렇다.
지금이라고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쓰는 이 글 중에도 실제로는 한자어 투성이다.
하지만 인간의 두뇌가 이 정도는 한글로 적어도 소통이 가능하므로 굳이 한자로 적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영어 어휘도 우리말로 사용해서 전혀 문제없는 게 수백 단어나 되듯이 한자어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조금만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우리말에는 한자어를 모르고는 이해가 어려운 어휘가 굉장히 많다.
학계에서는 지금도 새 어휘를 만들 때 굳이 한자어로 만든다.
얼마 전 정신분열병 병명을 바꾼다면서 조현병이라고 하는 걸 보았다.
한자 몰라가지고는 조현병이 뭔지 알 길이 없다.
한자공부가 된 분은 조현병이라고 한글로 써놓아도 그 뜻을 알 수 있지만 한자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냥 외워야 한다. 나는 사실 우리가 한글로 적는 한자어를 보면 그 즉시 한자어가 머리에 떠오르지만 내 딸 같은 경우는 그게 전혀 연결이 안되어 혼란에 빠지곤 한다.
우리 언어 생활이 아직 한자어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이런 사실을 인정하여
한자교육은 반드시 하고, 실제 언어 생활에서 한자를 쓰는 건 가급적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한편으로 우리 소설가나 시인, 국어학자들이 우리말 쓰기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편한대로 한자어를 남발하면서 정작 한자를 쓰지 못하게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더 쉬운 우리말로 표현해야 한다. 자기 지식 자랑한다고 어려운 한자어 골라 쓰고, 사자성어 남발하면 안된다.
우리말, 우리글을 지키려면 그만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난 우리말 사전, 우리 한자어 사전 편찬에 더 신경을 쓰고, 우리말이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언어가 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사전을 많이 편찬하려고 노력한다.
- 내 말 신용을 위해 내가 편찬한 사전을 증거로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