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태양/허신행을 읽다

[스크랩]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이유

소설가 이재운 2011. 12. 12. 11:17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이유

- 글 / 허신행 박사(전 농림수산부장관)

 

‘대한항공’사의 상업마크는 우리나라의 상징인 태극기의 변형된 모양이다. 음양을 조화시킨 태극마크는 대한민국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우주 만물을 생기게 한 근원적인 본체를 의미한다. 우리 국민은 오랜 기간 이 태극기와 더불어 살아왔다. 태극기는 우리나라 고유의 국가적인 상징으로서 우리 마음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대한항공’사가 이 태극마크를 약간 변형시켜 비행기에 그려넣고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그들이 만든 다양한 물품, 안내책자, 제복 등에 박힌 이 상표는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해졌다. 외국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해외 여행중 이 ‘대한항공’사의 낯익은 마크를 보노라면 그지 없이 반갑다. 고국을 대하는 듯한 느낌마저 물씬 풍긴다. 이처럼 한국적인 것으로써 세계화한 것을 간간이 찾아볼 수 있다.

 

‘아시아나 항공’사의 상업마크 역시 순수한 우리 것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든 좋은 사례라고 생각된다. 색동저고리를 입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높이 치켜올리면서 꿈과 사랑, 감동을 펴보이는 한국인의 여성적인 기상과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전통적인 진한 인상을 주고, 외국인들에게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한국적인 이미지를 심어준다.

한국의 전통적인 천연염료로 물들인 무명, 모시, 삼베, 명주 등으로 만든 한복 그리고 변형된 다양한 동양풍의 의상이 프랑스 파리에서 코리아 돌풍을 일으키는 것은, 그것이 매우 한국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적’이란 의미는 매우 인간적이고 예술적이며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어떤 것들의 표현일 수 있다. 반만 년에 걸쳐 다양한 기후풍토 속에서 우리 선조들이 자연스럽게 적응해나오면서 즐겨 입었던 옷이라면 거기에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토속적인 체취가 스며 있을 것이다. 그런 역사적인 소재와 패션은 고갈상태에 빠진 유럽의 패션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도 남을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야생초처럼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가 감춰진 한국적인 의류가 매일 새로운 것을 찾는 디자이너들에게는 신비의 금광처럼 여겨질 수 있다.

 

세계여행을 자주 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가족과 친지들에게 줄 선물 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상품이야 구태여 해외에까지 나가서 살 필요가 없으니까 그 나라의 고유한 것을 찾게 되는데, 흔하지 않다. 예를 들어, 스위스에 가면 아주 작은 손칼이나 스와치라는 플라스틱 시계 이외에는 살 만한 선물이 없다. 이탈리아에 가도 가죽제품 외에는 별로 없는데, 요즘은 국산 피혁제품이 우수하다.

한국에 오는 관광객들이 관심을 갖는 상품은 주로 실크로 만든 한복천, 홍삼, 골동품류 그리고 저렴하면서도 세련된 다양한 의류와 전기제품 등이다. 불고기와 신고배는 이미 세계적인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김치는 호기심의 차원을 벗어나 확산단계에 놓여 있다. 다양한 토종 농산물에 대한 진가도 머지 않아 알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근무하는 젊은 미군들이 제주도의 감귤이나 나주 신고배를 가족선물로 들고 가는 것을 보면 세계적인 상품으로서의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과거 이란의 팔레비 국왕이 한국 신고배 한 상자만 가지고 가면 최고의 예우를 해주었다는 외교가의 일화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의 민속무용이 외국인들에게는 신비스럽게 비친다. 그 가운데에서도 부채춤은 일품이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와 문물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값지지 않은 것이 없고 세계시장에 내놓지 못할 것이 없다. 이처럼 한국적인 것, 그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먼지 낀 민속박물관에 있는 전시품, 우리 선조들의 숨결이 살아 있는 생활용품 모두가 값진 보고寶庫일 수밖에 없다. 개방화시대에 외국상품을 모방하는 것은 후진적인 행위이다. 모방제품으로는 높은 값을 받을 수 없다. 새로운 것, 값진 것, 문화적인 것 그리고 특색을 갖춘 제품이라야 제 값을 받을 수 있고 떳떳하게 돈을 벌 수 있다. 그런 것들은 민속박물관에서 잠자고 있다.

 

기업인들은 민속박물관을 자주 찾아야 한다. 의류제조업자나 디자이너들은 우리나라의 전통의상에서 아이디어를 찾고 신소재와 현대적인 패션감각을 보태 신상품을 개발하면, 그것이 곧 세계적인 제품이다.

 

다양한 기구나 생활도구를 제조하는 기업인들 역시 민속박물관을 찾아 선조들의 아이디어를 배우고 첨단기술을 동원하여 신제품을 개발하면, 세계적인 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건설회사나 건축업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보잘것없는 것처럼 허수룩하게 지어진 우리나라의 전통가옥들로부터 철학이 담긴 낭만적인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현대적인 디자인과 소재를 첨가시켜 멋진 주택을 개발해보면 어떨는지. 8만 대장경이 소장되어 있는 해인사 목조건물의 건축술은 현대과학으로도 알아내기 힘들다 하지 않던가.

 

식품도 예외일 수 없다. 민속박물관에 가보면 숱한 종류의 음식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다. 음식 하나하나가 정성껏 만들어진 데에는 그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원인을 찾아내면 값진 현대식품을 개발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고소득 계층이 전통식품을 즐겨 찾는 이유는 역시 그 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반만 년이란 역사가 결코 짧은 것은 아니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알맞게 개발해낸 우리 것이 세계적인 상품으로 각광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이런 노력이야말로 우리 것을 지키면서 세계 속에 우리 문화를 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부富 축적의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출처 : 용인타임스
글쓴이 : 개마고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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