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태양/허신행을 읽다

[스크랩] 다시 보는 천안함 사건-힘없는 우리를 누가 도와줄 것인가?

소설가 이재운 2011. 12. 12. 11:20

천안함 대응자세로부터 얻는 교훈

- 허신행 박사(한몸사회포럼 대표, 전 농림부장관)

 

  2010년 3월 26일 46명 해군장병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침몰사건은 유가족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슬픔을 남기고, 정부측에도 많은 어려움을 안겨줬지만, 나라 발전을 위하는 차원에서 정부의 대응자세로부터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된다. 금년은 일본에게 우리나라의 국권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지 100년이 되는 해로서 자성과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시점이기도 하여 천안함 사건은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지금으로부터 150여년 전 서구 열강들이 한반도를 개항시키고자 문을 두드렸던 첨병이 군함이었고 우리는 차분한 협상 대신 그 군함들을 격퇴시킴으로써 세계변화와 등을 돌렸다.

  일본이 정한론(征韓論)을 감추고 트집을 잡기 위해 보낸 것도 운양호(雲揚號)였고, 그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 함정을 공격한 것이 빌미가 되어 나라를 잃게 되었던 것은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번 천안함 침몰사건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패권 싸움은 100년 전의 이런 아픈 상처들을 들춰내고도 남았다. 급변하는 세계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나라를 굳건하게 지키고 세계 중심국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인지, 천안함 대응자세로부터 얻는 교훈을 정리해보는 것은 앞날을 위해 값진 공부라 생각된다.

   첫째, 정부 수뇌부의 확고부동한 자세가 필요했다. 가정이나 국가를 막론하고 언제나 위기는 닥치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지도자들이 흔들리거나 감정에 따라 가볍게 움직이는 인상을 주면 국민들이 불안해지고 주변국들과 세계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이번 천안함 침몰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보인 군수뇌부의 늑장 대응과 사건 보고에 대한 일관성 결여, 대 언론 및 국회 질의에서 나타낸 추상적이고도 가상적인 답변 등은 매우 가벼워 보였을 뿐만 아니라 불안하고도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1988년 12월 21일 팬암 103기가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갑자기 폭파, 270명의 귀중한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과 영국 등 피해 당사국들은 수년 동안 치밀하게 조사하는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흥분하지 않고 가상적이거나 추상적인 발언을 하지도 않았으며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하게 대응해나갔다. 무려 15년이란 긴 시간에 걸쳐 치밀하고도 과학적인 조사와 함께 지루한 국제재판을 통해 리비아 테러리스트 2명을 찾아내고, 리비아의 자복과 함께 보상금까지 받아낸 이들의 굳건한 자세와 인내심이야말로 귀감을 삼을 만했다. 


   1945년 해방 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이승만 대통령은 아무런 준비없이 기회 있을 때마다 ‘북진통일’을 주장했다. 이 말에 놀란 미국이 현대식 무기를 우리 군에게 넘겨주기는커녕 오히려 미군을 철수시켜버렸다.

  한편 김일성이 이끄는 북한에서는 이승만의 ‘북진통일’에 불안을 느낀 나머지 오히려 선제공격을 감행하기 위해 소련과 중공을 은밀하게 접촉,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며 1950년 6월 25일 비극적인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쓰라린 전쟁을 일으켰다. 지도자의 가벼운 말이 2백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전쟁을 오히려 불러들인 셈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천안함 사건에서도 군 수뇌부는 “적 기습공격...명백한 침략행위”, “반드시 더 큰 대가 치르게 하겠다”, “영해⦁영공⦁영토 침범 땐 선제적 자위권을 발동하겠다”, 대통령은 또 “전쟁 두려워하지도 원하지도 않아...”, “북 잘못 인정할 때까지 단호 조치” 등 많은 말을 쏟아냈는데, 이런 것은 책임 있는 사람들이 할 말이 아니다. 안보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고, 그 행동은 심사숙고를 거듭하고 치밀하게 준비한 다음 천금 같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실천에 옮겨져야 한다.

   둘째, 침몰 원인 조사활동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단 한 사람의 의심자도 남지 않게 끝까지 명명백백히 이루어졌어야 했다. 민간 27명, 군 22명, 외국 전문가 24명 등 73명으로 구성된 천안함합동조사단이 2010년 4월 초에 조사활동을 시작해 불과 한 달 반 만에 서둘러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팬암 민항기 폭파 사건의 조사와 마무리 작업은 무려 15년이란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하물며 군사적으로 민감한, 또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이번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활동을 7주 만에 끝냈다고 하는 것은, 그것도 의문을 불러일으킨 갖가지 사안에 대해 치밀한 실험마저 없이 서둘러 발표를 해놓고는 왜들 믿지 않느냐고 말한다면 이것은 문제다.

   놀라운 것은 정부발표에 대해 70 퍼센트 정도가 믿고 나머지 30 퍼센트 정도는 믿지 않는다고 하는 분열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믿지 않는 비중은 오히려 더 늘어나는 추세다. 상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나 러시아 전문가들마저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을 정도라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두 달 만에 (어뢰 잔해들이) 그렇게 녹슬 수 없다”, “어뢰 추진부만 온전하게 남을 수 있느냐”, “1번이란 글씨가 고성능 화약의 폭발에 타버리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느냐”, “스크루(오른쪽) 날개가 안쪽으로 휘었다가 끝부분에서 다시 바깥으로 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프로펠러 축에 감겨 있던 어선 그물은 또 무엇이냐“, “당시 서해에는 미국 이지스함 2척과 13척의 함대가 훈련 중에 있었는데, 북한이 거길 뚫고 들어와 어뢰를 쏘고 유유히 사라졌다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북한은 버블제트로 배를 단번에 침몰시킬 만큼의 고성능 무기 제작능력이 없고 보유하고 있지도 않다”, 최근에는 지한파로 알려진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러시아는 원했던 자료에 접근할 수 없었고, 실험도 허용되지 않아 조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중국 조사단이 한국에 안 간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사고 해역은 암초와 어망, 기뢰 등이 얽혀 있는 복잡한 지역”이라고 말해서 의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의문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진실을 끝까지 밝혀낼 수 있는 확고부동한 자세에 있다.

   의문을 제기한 사람마다 초청해 함께 조사하고 실험해가는 인내심과 성실성을 견지했더라면 그 자체가 참된 대응자세일 수 있다. 단 기간 내의 결론 발표가 아니라 중간 중간 과정발표를 통해 어떤 사람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의문을 다 해소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국론 분열을 막고 통일하는 길이며, 유엔이나 미국 등지에서 우리 민족끼리 서로 비판하고 얼굴을 붉히는 추태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자 가장 확실한 대응자세라고 본다. 단 한 사람의 의문도 없게 하는 것만큼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다시 말해서 진실이 북한의 어뢰발사로 명명백백해졌다면 그래서 단 한 사람도 의심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면 그것만큼 북한을 고립시킬 수 있는 방법도 없지 않겠는가 하는 아쉬움이다. 만의 하나라도 진실이 정부 발표대로가 아니라면 그때 정부와 우리 민족 모두가 입게 될 상처와 불신을 어떻게 감내할 것인가? 그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셋째, 우리 국가와 국민을 위한 안보문제는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나 당리당략을 벗어나 초연하고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선례를 남겼어야 했다. 이번 천안함 침몰사건은 6월 2일의 지방선거를 두 달 정도 남겨놓고 일어난 불행이어서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우리 국민의 자질과 역량을 시험해볼 수 있는 저울추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과 정부는 물론 야당까지도 과연 천안함 사건을 선거와는 아무런 관련 없이 초연하게 안보라는 차원에서 다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것은 몰라도 정부가 안보 차원에서 초연하고 싶어했다면 합동조사단의 발표 시점만큼은 최소한 여⦁야의 협의 하에 이루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가 지방선거 첫날에 서둘러 행해졌다고 하는 것은 선거이용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그에 대한 심판은 국민들의 투표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선거를 의식하지 않은 초연한 안보자세를 보고 싶어 했던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린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넷째, 천안함 대북제재로 북 선박 제주해협 차단, DMZ안 대북 심리전 확성기 재설치,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한 동서해 합동훈련, 북 도발 징후에 선제적 타격, 유엔 제재 등이었는데, 과연 이것이 최선이었는가? 다시 말해서 우리 민족의 자주적이고도 의연한 제재 방법은 없었던가 하는 의문이다. 100년 전 일제가 우리 국권을 침탈할 때 우리 지도자들은 청나라와 러시아는 물론 미국과 영국 등에 고개를 숙이며 애원하다시피 도와달라고 간청을 해보았지만 헛수고였던 비애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국력이 없으면 어떤 나라도 도와주지 않는 비정함, 오로지 우리 자신의 힘만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냉정한 세상을 우리는 체험했다. 

   천안함은 우리 민족 내부의 군사적 충돌문제다. 이것은 남북의 분단 상태에서 빚어진 비극이다. 연평해전의 보복선상에서 볼 수도 있는 사건이다. 하물며 남한의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북한의 그것보다 약하지도 않은데 군함 한 척이 훈련 중 침몰했다고 해서 유엔으로 아세안으로 다니며 북한을 비판하고, 4대 강국들에게 도와달라거나 제재에 동참하라고 호소하는 모습이 어딘지 의연해보이지 않았다. 천안함은 더욱이 군사분계선 가까운 곳에서 훈련 중에 침몰당했다. 만일 북한으로부터 침몰당한 것이라면 일차적인 책임은 예방하지 못한 우리 군에 있다고 보는데, 그럼에도 이를 전 세계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한 것은 자주 국방을 자랑하는 정부답지 않아 보였다. 

   만일 우리 군에 실력이 있다면, 그리고 진실이 만천하에 밝혀져서 의심을 갖는 사람이 하나도 없이 명명백백해졌다면 그에 상응한 군사 보복을 감행하면 될 것을, 유엔으로 갈 필요는 없었을 것 같고, 미국이나 중국에게도 제재 동참을 호소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유엔이나 세계인의 눈으로 볼 때는 남과 북 어는 쪽도 다 코리안이지 서로 다른 민족이 아니다. 남한이 북한을 제재하는 것만큼, 또 서로 헐뜯고 비난하는 것만큼 코리안 모두가 상처를 입는 것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했다. 결국 통일로 향해 나가야 할 남과 북은 더 경색되고 불신을 안게 되었으며, 경제적 유대를 더욱 깊게 해나가야 할 중국과는 멀어지게 되었으며, 미국과의 밀착은 부담 가중과 남남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좀 더 의연하고 굳건한 자세가 필요했던 것이 이번 천안함 사건으로부터 얻는 교훈이다.

출처 : 용인타임스
글쓴이 : 개마고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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