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13 - 내일신문 / 드라마도 출판도 '정도전 열기'
[드라마도 출판도 '정도전 열기'] 현실정치에 대한 갈증이 정도전에 투영
'기득권 횡포' '부·권력 집중' 현재와 비슷한 고려말 상황 … '밥이 하늘' 채워줄 정치인 요구
드라마 '정도전'이 주목받고 있다. 탄탄한 고증과 감각적인 대사, 묵직한 연기가 어우러져서다. 총 제작기간 2년, 제작비 135억원의 대작다운 풍모다. 시청률도 최고 13.2%, 평균 11.8%(닐슨코리아)로 선전 중이다. 퓨전사극이 지배하던 역사드라마 시장에서 오랜만에 등장한 정통사극으로 50~60대 남성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는 평가다.
출판계에서도 정도전은 '핫 아이콘'이다. 연초에만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정도전과 그의 시대', 이재운의 소설 '정도전'이 출간됐다. 연말엔 김진섭 동국대 만해마을 교육·기획부장의 '정도전의 선택'이 햇볕을 봤고, 정도전의 '불씨잡변' 한글본(김병환 역해)도 나왔다.
최근 정치권에서도 정도전은 인기 있는 이야기 소재다. '신권(臣權)국가 조선'이라는 정치설계를 거론하며 '개헌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시청률로 반영되고 있다'는 아전인수격 해석부터 역성혁명을 이끈 정도전을 통해 '5·16 쿠데타'를 정당화하려는 기획이라는 억측까지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왜 정도전이 주목받을까. 전문가들은 드라마의 완성도와 재미가 주요 인기요소지만 여말선초의 역사적 상황을 통해 현재를 투영하는 대중심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드라마 '정도전'의 정현민 작가는 29일 내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중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를 모두 난세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현재의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는 현실정치에 대한 실망이나 아쉬움이 정도전을 통해 투영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5년여 준비 끝에 '정도전의 선택'을 집필한 김진섭 부장도 "우리가 역사를 통해 보는 것은 오늘"이라며 "희망 없는 시대에 대한 갑갑함이 정도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고려말의 역사적 상황은 현재와 유사한 측면이 많다. 부와 권력이 소수의 권문세족에게 집중돼 있었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횡포도 극에 달했다. 백성들은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을 정도로 빈궁했고, 신흥강국 명과 몰락해가는 원의 세력 다툼 사이에서 고려의 운명은 바람 앞에 등불 신세였다.
이는 곧 '1대 99 사회'로 상징되는 양극화의 심화와 일상화된 경제위기, 기득권층의 횡포와 이기주의, 동북아 정세의 불안정성이 지배하는 2014년 한반도를 보는 듯하다.
권문세족의 대표주자 이인임이 청년 정도전을 향해 "세상을 바꾸려거든 힘부터 기르세요. 고작 당신 정도가 떼를 쓴다고 바뀔 세상이었으면 난세라 부르지도 않았습니다"라고 일갈한 것이 고려말에도, 현재에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정도전이 현실정치에 던지는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고 철학과 이념에 경도되지 않은 채 철저하게 현실에 발 딛고 500년 동안 지속된 조선의 시스템을 만들어낸 그의 노력은 현실정치의 모델이 될 만하다는 평가다.
김 부장은 "그 시대나 지금이나 백성들이 원하는 것은 밥이 하늘이라는 것이다. 정치는 복잡한 것이 아니라 간단한 문제"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때로 복잡한 시스템을 구상하고 작동시키는 것이 바로 정치인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정 작가는 "혁명과정에서 신진사대부들의 생존율은 10% 아래로 웬만한 전쟁보다 낮았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정치를 했던 것"이라며 "국민들이 '정도전'을 갈망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