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전생은 누구였을까?
1597년 임진, 1598년 계사 왜란 때, 평양성, 한양성에서 패퇴한 일본군은 수치심을 털고, 진주성 1차전 패전을 설욕하기 위해 또다시 진주성을 공격하기로 한다. 이에 앞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년 진주성 패배로 호남진입이 좌절된 사실을 들어 "진주성 군민을 모두 죽여라!" 명령을 내린다. 이에 9만 3천여 명의 일본군이 진주성을 향해 진군한다.
이때 조선국왕 선조 이균은 성을 비워 싸우지 말라 했고, 전시작전권을 갖고 있던 명군은 일본군과 짜고 멀리 물러나 있었다. 그러나 경상우도 사령관인 최경회(주논개 남편), 충청병마사 황진, 도절제사 김천일, 진주목사 서예원 등이 중앙정부의 지시와는 달리 진주성을 사수하겠다며 모여든다. 이에 전라도, 충청도에서 달려온 군사들이 힘을 합쳐 총력전으로 공격해오는 일본군 연합군과 맞섰다. 이 전쟁에서 경상우병마사, 경상우병마우후, 진주목사, 도절제사, 김해부사, 병마사 부장, 충청병마사, 해미현감, 남포현감, 회덕현감, 당진현감, 보령현감, 진주판관, 사천현감, 거제현감, 황간현감, 기타 무수한 의병장, 군민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다 전사하였다. 조선군 3500명 전사, 진주 백성 7만여 명 학살 및 포로. 진주목사 서예원의 목은 소금에 채워져 일본에 보내지는 수모를 당했다.
비록 진주성은 함락됐지만 치열한 전투로 내상을 입은 일본군은 또다시 조선의 부고라는 호남 진입에 실패한다.
패전 보고를 받은 국왕 선조는 "싸우지 말라는데 싸우다 죽었으니 어쩔 수없다."며 외면했다.
- 경상우도병마사 최경회의 부인 주논개를 형상화한 등. 진주유등축제 출품작.
육이오전쟁이 일어나기 하루 전, 1사단장 백선엽 등 전방 지휘관들이 휴전선을 비우고 국방회관에서 댄스파티를 했고, 술이 깨기도 전인 25일 새벽 전쟁이 발발하자 서부전선의 국군 1사단은 무조건 후퇴에 나서는데, 그마저도 속도가 어찌나 느린지 국군 방어선이 인민군 공격선보다 북쪽에 있었다고 한다. 급기야 대통령이 대전으로 달아나 수도 서울이 단 사흘만에 함락되었을 때, 중령계급에 불과한 임부택은 춘천방향으로 쳐내려오는 적 2개 사단을 맞아 사흘을 버텼다. 이 결과 유엔군 참전이 결정되고, 우리 국군도 전열을 재정비할 시간을 얻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언반구 안하다가 나중에 임부택 중령이 북진 끝에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아 보내오자 그제야 훈장을 내렸다 한다. 물론 임부택은 이를 거절했다.
- 임부택 중령. 이런 군인이 지금도 많을 테지만 별을 달지는 못하는 것같다.
국방비리가 끝없이 터지는 걸 보면...
어제 국무회의에 나온 박근혜 대통령이 박원순 서울시장더러 지자체 독자대응이 더 혼란스럽다고 비판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국민들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삼성서울병원을 상대로 적극 대응한 결과 정부 방역 지침이 달라져 비로소 진정국면으로 들어선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 대통령께서는 반대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홀로 적과 싸워 이긴 이순신 장군 잡아다 고문하고 죽이려 한 선조 이균이나, 육이오전쟁의 영웅 임부택을 압록강 물을 보내온 연대장으로 과소평가한 이승만이나, 쿠데타로 집권하자마자 임부택 소장을 해임시킨 박정희 전 소장의 행태가 반복되는 듯하다. 징비록, 천권 만권 써도 소용없다. 이런 글 천만 편을 쓰느니 대통령 한 사람 잘 뽑느니만 못하다.
- 왼쪽부터 <드라마 징비록>에 나오는 선조 이균(김태우 분), 이승만(젊은시절), 박정희(일본군 소위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