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작품/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

아버지는 <나>를 늘 <우리>라고 표현하셨다

소설가 이재운 2015. 9. 4. 01:09

우리 아버지는 <우리는 비린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와 같은 식으로 <나>를 곧잘 <우리>로 표현하셨다.

여기서 내가 아버지를 가리켜 <우리 아버지>라고 한 것은, 내 형제가 5명이기 때문에 나만의 아버지가 아닌, 우리 5형제의 아버지란 뜻이다.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우리는 비린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 <나는 비린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것을 복수주격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궁중어였다.

즉 임금은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나'라고 하지 않고 '우리'라는 복수형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유럽에서는 주로 군주나 고승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로마 황제도 늘 'We'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황제는 한 명인데도 늘 우리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런 것을 'royal we'라고 부른다.


아버지가 하늘로 가신 뒤에는 큰형이 이런 어법을 사용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고치라고 주문한다. <나>를 <우리> 뒤에 숨기지 말라고, 절대로 <우리> 뒤에 숨지 말라고 나는 말한다.


- 산 봉우리에 아버지 유택을 마련하였는데 마치 왕릉같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산세가 그렇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