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재운 2015. 11. 25. 12:14

나는 생물학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는 특별한 관점으로 외로움과 우울증을 이해한다. 

국내에서는 아직도 외로움과 우울증의 정체에 대해 '마음의 감기'라는 막연한 수사로 이해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데 미국 대학 등에 설치된 선진 연구소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우울증에 대해서는 이미 병으로 인정되어 다양한 연구 결과가 나와 있으나 외로움에 대해서는 아직 국내 학자들의 관심이 적은 듯하다. 사실 외로움은 우울증의 전단계로서, 외로움 단계에서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우울증으로 넘어가는 기전을 갖고 있다. 


인류 진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집단 즉 사회 의식이었다. 

원시 수렵 사회에서 집단에서 축출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밀림을 벗어난 원인류들이 천신만고 끝에 사바나에 정착하지만 그 과정은 험난했다. 동굴 등 지형을 이용한 방어망 내에서 서로를 지켜줘야만 하는 상황에서 인류는 맹수, 기후, 천재지변을 극복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다보니 집단에 복종해야 한다는 뿌리 깊은 심리가 인간 두뇌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제적, 퇴출, 멸빈, 제명, 해고, 해임 등이 그런 흔적이다.


오늘날에도 정부정책에 쌍수를 들어 지지하는 거품글을 올리고, 마치 정부 대변인이나 되는 양 시위대를 비난하고, 야당을 따라다니며 물어뜯는 사람들이 많다. 권력으로부터 어떤 녹조차 받아먹지 않는 평범한 사람인데도 SNS 전사처럼 사사건건 권력을 결사옹위한다.


물론 인류 역사 10만 년에 걸친 오랜 권력추종 습성이 자기도 모르게 나타난 것으로 매우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왕이 나라를 이끄는 봉건시대라면 그래도 된다. 하지만 민주시대, 즉 국민이 주인인 오늘날에는 위임된 권력을 한시 관리하는 대통령보다는 이 대통령이란 권력을 위임한 국민이 더 큰 주인인데, 이 점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아마도 상당 기간 이런 종의 습성은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생물학적으로도 인간은 집단에서 빠져나오면 외로움을 느끼고, 이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울증에 빠지며,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면 암 등 치명적인 면역질환에 걸려 사망하게 된다. 


이 점에서 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갖는 집단무의식에 주목한다. 권력이나 집단이익이라는 작은 관점이 아니라 종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외로움이든 우울증이든 종의 발전에 도움이 안되는 것으로 판명이 나면, 당연히 도태 내지 거세 대상으로 간주될 뿐이다. 우리 두뇌에는 집단을 거역하지 말라는 자물쇠(lock)가 걸려 있다. 10만년 정도 걸려 만들어진 자물쇠다. 그럼에도 집단을 거역하면 즉시 면역체계가 무너지는 보복 시스템이 있어서 외로움, 우울증, 면역체계 붕괴, 치명적인 질환으로 진행시켜버린다.


하지만 인류를 오늘날의 영장으로 만든 것은, 외로움과 우울증을 극복하고 일궈낸 반역자들의 DNA다. 힌두교를 거부하고 불교를 창시한 붓다, 유대교를 거부하고 기독교를 세운 예수 등 기존의 무지와 오류를 이겨낸 사람들이 인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온 것이다. 화형을 받으면서도 지동설을 주장한 지오다노 브루노, 회유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참수형을 받은 김대건, 천주교에서 파문되고 나서 개신교를 만든 마르틴 루터 등 수많은 외로운 자, 우울한 자들이 오늘날의 우리를 만들어냈다. 북풍한설을 뚫고 일본군과 싸운 우리 독립군, 4.19 때 목숨 바친 대학생들, 민주화 과정에 한 몸 던진 투사들, 이런 외로운 자, 우울한 자들이 있어 오늘의 대한민국이 이루어졌다. 일제에 아첨하고, 친일세력에 붙고, 군부독재에 충성한 사람들은 그저 생명을 유지한 것밖에 일절 가치가 없다. 하지만 이런 종들도 집단 가치를 이루어 대한민국의 동력의 일부가 되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본디 유비는 공부 못하고 인정 못받는 건달이고, 관우는 살인하고 도망다니는 떠돌이고, 장비는 깡패였을 뿐이지만, 집단에 들어가지 못하여 외롭고 우울한 이 3명이 뭉쳐 그들의 일상이었던 외로움과 우울증을 극복하자 후한시대 한 귀퉁이를 움켜잡는 세력으로 클 수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언제나 외로움과 우울증에 직면한다. 소수는 늘 외롭다. 권력에 붙거나 의지하면 일신의 안녕을 어느 정도 보장받을 수 있지만, 거기서 벗어나면 세상은 무변광대해서 혼자 몸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온 우주에 외로움과 우울증이 가득 차게 된다. 

이혼을 해야 할 상황을 앞두고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혼자서 맞아야 할 주변의 차가운 시선, 사회 차별, 외로움이 가득 찬 시간과 공간 등을 극복할 엄두가 나지 않아 결행을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러나 더 큰 행복은 외로움과 우울증 건너에 있다. 우리는 우리 안의 비겁한 종을 끌어내 내쫓아야 한다. 호랑이처럼 홀로 살 수 있는 배짱과 내공을 지녀야 한다.


<오하이오대 행동의학연구소/외로움이 면역기능 떨어뜨린다>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일 수록 체내 염증을 일으키는 ‘헤르페스 바이러스’ 잠복 수치가 높다. 

- 체내 염증과 관련된 단백질도 많이 생성된다.

<미국 시카고대, 캘리포니아대 공동 연구 / 외로움이 면역력 낮춰 염증을 많이 일으킨다>

 - 백혈구에서 염증을 일으키는 유전자들이 많이 발현하고,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유전자들은 적게 발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혈구가 세균과 바이러스로부터 우리 몸을 지키는 세포라는 점에서 외로움이 면역반응에 영향을 미친다.

<오하이오 주립대 / 우울증이 면역력을 약화시킨다>

 우울증을 동반하는 생물학적 과정이 있다

 가벼운 우울증이 면역력을 손상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