혓바닥만 놀려가지고 일본 이길 수 있나?
어제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외무장관합의가 있었다. <위안부 문제, 이제 우리가 해결하자 <합의문 전문>>
그런데 자칭 진보계 신문을 보니 합의를 조롱하고 정부를 비난하는 기사로 채워져 있다. 기타 신문은 10억엔에 실망했느니, 법적 책임이 모호하느니, 지엽말단에 매달려 엉뚱한 소리나 늘어놓는다. 실망스럽다. 이런 기사에 대한 댓글 또한 수준 이하라 이런 국민의 일원이라는 게 솔직히 두렵다.
병풍 뒤에 숨어 댓글질이나 하고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같은 데에 이 합의에 대해 욕설이나 써대는 몇몇 철부지들에게 한 마디 하고자 한다.
오늘날 일제 징용, 징병,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을 그렇게 비판 비난하면서 우리 책임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구는 그 어리석음에 진저리가 난다.
- 미군이 처형한 A급전범들. 우린 이들을 잡아 처벌하지 못했다. 이들은 오늘날 야스쿠니신사의 신으로 살아나
아베 신조 등 일본 우익들의 영웅이 되어 있다.
미군이 아니었으면 이놈들을 사형시킬 수 있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해방되고도 한참 뒤인 9월 8일, 인천으로 미군 환영식에 나갔다가
줄 이탈했다고 일본군이 쏜 총에 맞아 죽은 게 우리다. 그러고도 아무 말 못하는 그런 용렬한 백성이었다.
묻는다.
우리 민족을 갈갈이 찢어놓고 견딜 수 없는 모욕과 고통을 준 전범주범 히로히토 일왕이 88세까지 장수하다 편안히 죽도록 방치한 건 누군가? 위안부 문제보다 천 배 만 배 더 심각한 특급전범을 장수시켜 놓고, 오늘날까지 그의 죄를 묻지도 않는 건 대체 무슨 까닭인가. 히로시마에 강제징용갔다가 불폭탄 <리틀보이>가 떨어질 때 피폭된 한국인이 7만 명이고, 이중 4만 명이 즉사했다는 사실을 댓글이든 한 줄이든 써본 적이라도 있는가. 일본군이 경복궁에 쳐들어가 대원군을 끌어내고 친일정권을 세웠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런 다음 또 일본 낭인들이 쳐들어가 왕비와 궁녀, 내관들을 베어죽이고 시신을 모욕했다는 사실에 대해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글이라도 쓴 적이 있는가.
적기로 말하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개떼들처럼 독도 망언 나오면 독도로 들끓고, 위안부 망언 나오면 위안부로 들끓고, 늘 저들이 던져준 개뼈다귀에 홀려 본질이 뭔지 모르는 이런 하찮은 인간들 하고 놀아나다가 정작 나라가 위급할 때는 동학농민군들처럼 가슴에 부적이나 써달고 일본군의 총탄이 빗발치는 우금치로 달려갈 것인가.
그래서 적는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차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보라. 그들은 세 치 혀만으로 조선을 병탄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런 일본 이기려거든 재잘거리는 그 세 치 혀는 이제 그만 돌돌 말아 집어넣고 그런 다음 이를 꽉 물고 공부하라.
일본은 조선을 병탄하기 위해 세 번의 대전을 치렀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으로 청군, 일군의 개입으로 일진일퇴를 한 이하응과 민자영 두 인간은 나라를 결딴낼 파국으로 치달았다. 이 두 인간이 히로히토보다 나쁜 사람들이다. 그런 데도 뮤지컬로 칭송하고 드라마로 미화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다.
대원군 이하응은 왕후 민자영이 정권을 잡자 이를 보복하기 위해 식객 전봉준을 꾀어 농민반란을 요구한다. 약속대로 전봉준이 반란을 일으키자 놀란 왕후 민자영은 농민군을 진압하지 못하자 결국 청나라와 일본 양측에 농민군 토벌을 요청한다. 이 어리석은 여인은 외국 군대를 불러 우리 백성을 진압시킨다는 게 무슨 뜻인지도 알지 못했다. 이런 어리석은 여인이 국정을 농단하도록 당시 지식인들, 사대부들이 방치하고 동조하였다. 그나마 좀 개화되었다는 놈들은 친일파가 되어 나라 팔아먹는 궁리나 하였다.
이 당시 조선의 실질 지도자인 대원군 이하응과 왕후 민자영은 나라 따위, 백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허수아비 국왕인 고종은 말할 것도 없이 겁쟁이 어린애나 다름없었다.
도리어 시국을 판단한 동학농민군은 청일 양국군에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자진해산했다. 그럼에도 일본군은 이 틈에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청군을 치기로 결심, 마침내 청일전쟁이 일어난다. 조선의 주인인 줄 알던 청군과 조선을 차지하려는 야욕에 불타던 일본은 수만 명의 정예 군대를 내세워 아산만, 평양성 등지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누가 되든 이기는 측이 조선을 차지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청군은 63만 명이 참전하고, 일본군은 24만 명이 참전한다. 87만 명의 외국군대가 이 땅에서 전쟁을 하는데, 우리 국민들은 넋놓고 구경이나 했다.
이때 조선에는 경복궁마저 지킬 군사가 없었다. 요즘으로 치면 SNS에서 세 치 혀나 나불거릴 '선비라는 것들'이 몇 있었을 뿐 총 들고 칼 들 사람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수십 만 명의 외국군대가 저희들끼리 피 흘리며 싸우는 데 우리는 불구경하듯 했다.
결과적으로 청군은 3만 5000명이 전사하고, 일본군은 1132명 전사, 3758명 부상으로 일본군이 승리한다.
청군은 조선에서 완전히 물러나고 일본군이 조선을 차지한다. 그 다음 일본군의 칼이 어디로 향할지 이 어리석은 조선인들은 알지 못했고, 알더라도 세 치 혀나 나불거릴 뿐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일본군은 승세한 힘으로 왕후 민자영 세력을 몰아내고 흥선대원군을 앉혔지만 대원군이 말을 듣지 않자 경복궁에 무단 침입, 친일 김홍집 내각을 출범시켰다. 이들이 추진한 게 갑오개혁이다.
그러자 동학농민군이 또 일어났다. 이번에는 조선의 국군처럼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이 나서서 공주 우금치전투가 벌어졌다.
동학농민군은 비록 세 치 혀를 나불거리지 않고 분기탱천하여 칼을 들고 일어났지만 대포와 소총으로 무장한 일본군 앞에서 부적이나 그려 가슴에 달고 싸웠다. 갑옷을 입어도 총알이 꿰뚫는데 이들은 단지 얇은 한 지 한 장만으로 대포와 소총을 막겠다고 감히 나섰다. 오늘날 우리 국민들이 세 치 혀만으로 일본에 대항하는 방식과 다를 바가 없다.
그 즉시 살륙이 일어나 1만 농민군 중 겨우 500여 명만 살아남았다. 일본군의 대학살이 벌어진 것이다.
동학군이 패퇴하자 친일내각이 보낸 정부군이 일반 농민들까지 찾아내 죽이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일본군 사망자는 없었다. 그러니 이 전투는 도륙, 도살이란 표현이 맞는다.
이때 일본은 조선을 완전히 차지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라이벌 러시아를 꺾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러시아는 조선을 39도선으로 나눠갖자고 일본에 제의했으나 일본은 이를 거절했다. 양국군 정예가 또 맞붙었다.
대규모 병력이 동원되었다. 소련군 50만 명 내지 100만 명이 동원되고, 일본군은 30만 명에서 50만 명 정도가 동원되었다. 한반도 주변 곳곳에서 싸운 두 나라는 엄청난 인명손실을 본다. 러시아군은 4만 내지 5만 명의 전사자를 내고, 15만 명의 부상자, 7만 4369명의 포로를 낸다. 일본군은 약 4만 7000여명이 전사하고, 1만 1천여 명이 부상을 입는다. 질병사망자는 2만 1000명에서 7000명 사이다. 우리 국민들은 이런 전쟁이 우리 땅과 우리 바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줄도 몰랐다.
이로써 일본군은 조선은 물론 고구려의 고토인 만주일대와 사할린 등을 차지한다.
그래놓고 조선을 둘러싼 4강 중 청국, 러시아를 패퇴시키고, 마지막 남아 기웃거리는 미국은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는데 방해하지 않는다는 <가쓰라태프트밀약>으로 따돌리고, 대신 조선에 대한 관심을 끄도록 외교역량을 발휘, 마침내 조선의 주인이 되었다.
이것이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게 된 과정이다.
일제의 강점이 일어나도록 조선 조정은 혓바닥만 놀려댔을 뿐이다. 누구 하나 나와 싸우려 하지 않았다. 일본군 사무라이가 경복궁을 헤집고 돌아다녀도 막아낼 군사조차 없었다. 일본 낭인들이 궁성으로 쳐들어와 네 마누라 어디 있느냐고 물어도 벌벌 떨기나 한 것이 당시 국왕 고종이었다. 그렇게 왕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난자당해 죽도록 힘 한 가닥 없는 놈, 지혜라곤 먼지만큼도 없는 용렬한 자가 이완용 따위 데리고 무슨 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가 된단 말인가.
이따위로 말장난이나 한 우리는 지금도 혓바닥으로 북한을 상대하고, 혓바닥으로 일본을 상대하려고만 한다. 엄청난 국방비를 거둬쓰면서 이 정부는 북한이 핵무장하도록 방치하고, 일본이 군사대국이 되는 중에도 못쓰는 무기 사들이고, 국방비 빼먹으면서 미국에 작전권마저 헌납해버렸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일본은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약 10만 명에 가까운 인명을 희생시키면서 끈질기고 줄기찬 전쟁을 벌였다.
보자. 우리 독립군이 10만 명이라도 된 적이 있는가. 36년간 일제와 싸우다 죽은 우리 독립군이 10만 명이라도 되는가. 아마도 친일파 일본군은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징병가고 자원입대한 이들은 분명 10만 명은 되었을 것이다.
- 조선인들은 일본이 미국에 항복한 8월 15일 이후에도 9월 8일이 되도록 일장기를 끌어내리지 못했다.
그런데 어째서 8월 15일에 해방되었다고 믿는가. 이 일장기는 9월 8일, 미군이 들어와 성조기로 바꿔달 때까지 나부꼈다.
싸워서 이길 수 있을 때 화를 내라.
일본이 노벨상 23개 탈 때 1개 밖에 타지 못하면서, 국방비 40조를 쓰면서 북한도 못이기는 우리가 일본은 어찌 이길 것인가. 일본이 갖고 있는 이지스함이라도 있는가.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외칠 줄이나 알지 일본군 이지스함과 싸워 이길만한 전함이라도 배치했는가. 무기 사라고 국민이 내놓은 세금을 빼먹을 줄이나 알고, 잠수함탐지기 달으랬더니 어군탐지기나 다는 이런 정신머리로 무얼 어쩌겠다는 것인가.
혓바닥은 무상하다. 그런 혓바닥으로 정치하니 나라가 이 꼴이고, 그런 능력으로는 일본이나 북한의 털끝도 못건드린다. 김무성, 안철수, 문재인 같은 대선 주자들이 눈치 본답시고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일언반구 못하는 이런 게 우리의 현실이다. 조선이 일본에 병탄될 때 사대부란 인간들은 음풍농월하면서 저희들끼리 시 쓰고 시조 읊었다. 가끔 기개 있는 이 몇이 자살하고, 진짜 기개 있는 이들은 의병을 일으켰지만 국민들의 호응이 거의 없어 끝내 일본군에 쫓겨 만주로 달아났다.
나라와 나라는 이혼이 불가능하다. 사람처럼 이혼해서 일본이 저 미국의 동쪽 대서양 어딘가로 이사해주면 오죽 좋겠는가. 하지만 나라와 나라는 영원히 존속된다. 헤어질래야 헤어질 수가 없다. 지긋지긋해도 어쩔 수없이 우리 이웃이다.
그런 줄 알았으면 눈 부릅뜨고 공부하거나 일에 열중하시라. 일본, 결코 만만하지 않다. 일본과 싸워 이길 힘이 생길 때까지는 분노를 표시하지도 말라. 분노를 값싸게 표출하는 사람은 큰 일을 당하면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 아래에 일본군의 만행 사진이 있으니 심신허약자는 보지 마시오.
여성은 보지 마시오.
어린아이들에게는 절대로 보여주지 마시오.
난징대학살 관련 끔찍한 자료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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