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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차 한 잔 하지, 뭘 그리 바삐 가나?

소설가 이재운 2016. 3. 21. 20:42

내 육촌아우는 면사무소에 근무한다.

근무  끝내고 나오는데, 마침 동네 후배 하나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길래 잡아세우고 말한다.

"집에 가나?"

"예."

"커피 한 잔 할까?"

"바빠서요. 어서 가봐야 해요."

"차 한 잔 하지 뭘 그리 바삐 가나? 가자, 내가 커피살게."

"진짜 바빠요. 먼저 갈게요."

"정 그러면 할 수 없지. 먼저 가."

3분 뒤, 바쁘다는 이 청년은 마주오던 트럭에 치여 아주 멀리 먼저 갔다.

죽는 일이 그리 바쁘단 말인가. 

저승가는 데 차 한 잔의 여유도 없나.

다시 한번 읽어보면 더 섬뜩하다.

 

12월초, 인척관계인 0840~45(딱 기준일에 태어났다)는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했다.

치료를 하는데, 머리쪽이 개운치 않아 불만을 호소하니 시골 의사는 서울가서 자세히 검진받아보라고 권했단다. 그래서 조카 중에 129라는 사설 구급차를 운전하는 아이가 있어 불렀다. 청양을 출발하여 예산에서 아들을 태워 함께 서울로 갈 참이었다.

 

12월 9일, 조카가 운전하는 차이니 피차 마음이 편했는지 침대 벨트를 채우지 않고 눕기만 했다.

그런데 이 조카는 출발지 청양이 아닌 대천에서 할동하는 사람이라 청양 지리를 잘 몰랐다. 청양에서 예산 가는 길은 두 갈래 뿐인데, 그는 중간에서 굳이 홍성가는 쪽으로 길을 돌렸다. 아는 길로 해서 예산에 가면 더 마음이 편하다고 여겼는지 모른다. 이렇게 하여 청양에서 예산가는 사람이라면 결코 가지 않는 길로 들어섰다.

 

그런만큼 차량 왕래가 뜸한 길.

12월 9일이니 열섬현상이 없는 시골은 당연히 춥다. 빙판이 남아 있을 수 있다. 도시이자 해안가인 대천에 사는 이 조카는 빙판을 상상하지도 않았는지 마침 교량을 지나가다가 이 빙판을 만나 당황했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빙판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브레이크를 밟으면 안되는데 당황한 그는 그만 밟고 말았다. 운전미숙이다.

 

차가 미끌어지는데, 차량 통행이 뜸한 그 한적한 시골길에 대형 버스가 마침 지나는 중이었다. 미끌어진 차는 상대편 차로로 뛰어들고, 버스와 앰블런스는 피하지 못하고 정면 충돌했다. 그 바람에 앰블런스는 박살이 나고 뒤에 타고 있던 환자는 뒷문이 열리면서 튕겨져 나가 11미터 다리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고는 딱 하고 바위에 부딪혀 즉사했다. 다른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놓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데스티네이션'이란 영화를 보는 것같다.

청양에서 서울을 갈 거면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

이들이 말하는 앰블런스라는 건 말이 앰블런스지 봉고차일 뿐이다. 봉고차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안전성이 떨어지는 차량이다. 그런 차를 타고 서울까지 가는 짓은 애초 하지 말았어야 한다.

또 청양에서 예산을 가자면 1코스가 운곡-신양을 거쳐 가는 길이고, 2코스가 비봉-광시를 지나가는 길이다. 그런데 그는 아무도 가지 않는, 멀리 돌아가는 3코스를 선택했다. 어째 129 응급차량이 네비게이션조차 없었던가.

 

또 그는 빙판을 만나 브레이크를 밟았다.

또 그가 브레이크를 밟아 차가 미끄러지는 그 찰나의 순간, 마침 잘 다니지도 않던 대형버스가 저승사자처럼 달려들었다.

또 그렇더라도 안전벨트를 맸더라면 경상 정도로 그칠 수도 있었는데 그만 벨트를 매지 않아 차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또 사고 장소가 다리 위만 아니었어도 밭이나 풀숲으로 떨어져 목숨을 잃지는 않을 수 있었는데, 하필 다리 위라서 11미터 아래로 떨어져, 그것도 바윗돌에 머리를 부딪혀 즉사하고 말았다.

운전자는 갈비뼈 한 대가 부러졌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불리한 상황이 연달아 닥칠 땐 더 나아가지 말고 멈추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조짐이라는 게 있다. 조짐이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믿는다.


어느 날,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신씨 할아버지'가 회한에 가득 차서 내게 이런 고백을 했다. 내가 그 동네에 이사갈 때는 이 할아버지 부부는 제법 떵떵거리며 살았다. 머슴을 두고 살만큼 살림살이가 컸다. 

그분 나이 80이 넘던 무렵, 내 앞에 앉아 그의 숨가쁜 인생을 회상했다.

 

- 살다 보니 좋은 일은 더듬더듬 천천히 와. 그런데 뭐가 안되려고 하면 한꺼번에 화가 들이닥쳐.

하다못해 병아리 깐다고 넣어준 알이 스무 개나 되는데 어쩌면 하나도 안까. 우리 밭에만 병충해가 들고, 쑥쑥 잘 낫던 소도 새끼를 사산시키고, 또 저도 죽어. 그러더니 내 아들이 사업이 망하더군. 그러더니 교통사고로 죽어버려. 그러고는 멀쩡하던 우리 할매도 죽어.

 

당시 이 노인은 집에 딸린 밭을 지나는 길 문제로 친척인 이웃하고 많이 싸웠다면서 자기가 더 늙으면 어쩌면 며느리가 그 미운 친척에게 팔아버릴지도 모르니 나더러 미리 사가라고 했다. 절대로 그 집에는 팔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며느리가 손자들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며 억울해했다. 명절 때도 안온다며 손이 끊기는 기분이라고 했다. 손자 녀석들이 대대로 살아온 그 집만이라도 지켜줬으면 좋겠는데 그래 줄지 걱정이라고 불안해했다.

할아버지는 그뒤 몇 달 안가 갑자기 죽었다.

 

그제야 며느리가 나타나 할아버지 재산을 다 처분해 버렸다. 집도 즉시 팔아버렸다.

집이 헐린 뒤 나는 할아버지 땅을 그냥 갖고 있기가 불편하고, 마침 대출금을 갚을 때가 되어 팔기로 했다. 농사 안짓는 사람이 밭을 갖고 있으니 동네사람들에게 미안해 견딜 수가 없던 참이었다. 하지만 구매자는 나타나지 않고, 할아버지가 절대로 팔지 말라던 그 이웃만 탐냈다. 내가 산 값의 1.5배를 제시했다. 대출금을 달리 마련할 길이 없어 하는 수없이 팔았다.

 

결국 할아버지 뜻대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며느리는 이 할아버지의 제사조차 지내지 않는다고 들었다. 어린 손자들은 할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다. '이레이저'가 나타나 정리한 것처럼 할아버지는 완전히 사라졌다.

 

사람이면, 생명이면 누구나 뻔한 종착지를 갖고 있다. 나는 열 마리나 되는 애완견을 기른 적이 있다. 솜털같이 부드러운 털에 얼굴을 묻고 간질이면, 강아지도 너무나 행복해 헹헹거리며 좋아하지만, 나는 그 아이들이 오래지 않아 죽는다는 걸 슬퍼했다. 그렇게 한 마리 남김없이 다 내곁을 떠나 이제는 꿈속에서만 볼 수 있다.

 

바쁘다, 바쁘다만 말고, 갈 길 서둘지만 말고 차 한 잔 하면서 조금씩 쉬어 가자.

어때요, 지금 차 한 잔? 오래 보지 못한 친구 불러내어.


 

 

출처 : 바이오코드연구소
글쓴이 : 이재운1045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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