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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이 마르면 그림이 안된다

소설가 이재운 2016. 6. 16. 20:42

늘 꾸준히 연습하지 않으면 실제로 글을 쓰거나 예술 활동할 때 잘 안된다는 걸 비유하여 <붓이 마르면 그림이 안된다>고 한다.

붓이 마를 새 없이 먹물이든 물감이든 맹물이든 자꾸 찍어 연습을 해야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그림으로 거뜬히 떠낼 수 있다는 뜻이다. 

글도 그렇다. 매일 꾸준히 써야 손가락이 부드러워지는데, 며칠 쉬면 자판이 낯설어지고, 머리와 손가락 사이 근육 연동이 잘 안된다. 또한 생각도 국수뽑히듯 잘 나오질 못한다. 내가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는 좌뇌우뇌 합작도 서툴다.


가까이 지내는 진철문 박사는 조각을 너무 오래 쉬었다 정을 잡으면 돌이 대답을 안한다고 표현한다. 정으로 한참 두드려야, 노크하듯이 두드리고 설득해야 겨우 눈을 뜨는데, 그러자면 시간이 더 걸리고, 더뎌진다는 것이다.(뱀꼬리 하나 : 진 박사는 현재 국가인권위원이고 인권위원상까지 받은 모범국민인데, 우리 지역에서는 종종 빨갱이로 불린다. 그래도 진 박사는 빨갱이라고 하는 놈이 빨갱이지 내가 왜 빨갱이냐며 씩씩하게 웃고 만다.)


지난 월요일 오후 식중독에 걸려 그 이튿날부터 어제까지 빈둥거리며 놀다가 오늘에서야 '붓'을 잡았다.

화요일, 수요일 이틀간은 기계적인 작업이라도 하려고 사전 자료를 다듬었다. 텃밭에서 잡초 뽑는 거나 다름없다. 블로그, 페이스북, 아무것도 못했다. 카카오스토리는 올라온 글들 제목 읽어주기도 짜증이 나서 아예 앱을 지워버렸다.

오늘까지 놀 수 없어 아침에 오늘 3번째로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너무 속상해서 내게 야단쳤다. 60조 세포들아, 이재운 연합군아, 들어라. 그렇게 게을러가지고 뭘 하겠느냐. 그간 노고 많았던 심장, 췌장, 두뇌는 좀 쉬더라도 나머지 세포들은 죽을힘을 다해 바이러스를 물리치고, 각자 위치에서 더 열심히 에너지를 만들고 대사에 열중하라! 내가 담배를 피우느냐, 술을 마시느냐, 마약을 하느냐! 짠것 단것도 피하잖느냐. 탄고기도 안먹고 합성화학재료 많은가 안많은가 따지고, 나처럼 까다롭게 몸관리하는 주인도 드물다. 운동 안하는 게 좀 미안하지만 근육 길러봐야 쓸 데도 없고, 그건 너희들이 해라. 게으르고 멍청하면 집단자살하는 것밖에 더 있겠느냐! 정신차려라!


지난 총선 때 미세먼지를 너무 많이 마셔 목감기를 한 달반 앓았다. 아프진 않은데 가래가 걸려 괴로웠다. 그땐 미세먼지가 매우 심한 날 "이런 데서 유세하면 안되는데..." 머리로 생각했지만 어쩔 수없이 했다. 살다보면 그런 일이 없을 수 없다. 뜻을 같이 한 친구들 생각하면 난 입으로라도 거들어야 할 형편이었다.

목소리가 돌아온 지 얼마 안되는데, 아마 면역력이 약해졌는지 가벼운 식중독인데 몸이 크게 반응하는 바람에 며칠 고생한 것이다.(같이 식사한 두 사람이 멀쩡한 걸 보니)

약을 안먹고, 병원 가는 걸 워낙 싫어하는 성미라 시간이 더 걸려도 어쩔 수없다. 그래도 때가 되면 밥 먹으러 나와라, 차 마시러 나오라는 친구들이 있어 아직은 우울하지 않다. 어제 저녁에는 비싼 전복죽에 오미자차까지 얻어먹었다.


최근 내 글을 보니, 우리 사회의 무지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마도 면역력 떨어진 시기와 일치하는 것같다. 내가 애쓴들 뭐를 어쩔 것이며, 변한들 얼마나 변할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런 사회에 살며 헛웃음 짓는 이가 어찌 나뿐이며, 그런들 무슨 가치가 있으랴 싶다. 대체로 이런 감정이었던 듯하다.


조울병에 대해서 잘 안다. 똑같은 상황에서 조증이 생기면 웃음이 많아지고 자신감이 솟구친다. 역시 같은 상황에서 울증이 생기면 죽고 싶고 외롭고 자기 자신이 무능해 미칠 것만 같아진다.

이런 호르몬 장난을 잘 아는 바라 나 스스로 감정조절을 하곤 한다.

그래서 큰 이유없이 깔깔거리는 사람이나, 큰 숨을 쉬거나 호흡을 느낄 수조차 없이 얕게 쉬는 사람, SNS에 욕을 너무 많이 쓰는 사람, 단호하고,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는 날카로운 주장 등을 하는 분들을 보면 이 사람이 요즘 건강이 안좋구나 의심한다. 다섯 줄 이내 짧은 글을 쓰면서도 연결은커녕 무질서한 경우 치매 혹은 인지장애를 의심하기도 한다. 동문서답 댓글이 보이면 그 사람 글을 찾아가 몇 편 더 살펴본 뒤 증세가 심하다 싶으면 삭친을 해버린다. 내 친구들에게 그런 나쁜 글을 보이기 싫어서다.


오늘의 두뇌 운동용 글을 마친다.

붓이 촉촉해질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같다.

나는 붓다처럼 중도 즉 바른 길로 간다.

- 지난 토요일 오후 3시, <은택미술원>에서 열강 중인 진철문 박사

"붓다는 아무 말이나 하면 경전이 되었다. 뛰어난 화가라면 붓을 던져도 그림이 돼야 한다."며 프로정신을 강조하는 중

나보다 열 살은 많아 보이지만 실제는 두 살 밖에 안많다. 

머리 빠지면 최하 5살, 수염 기르면 최하 5살이 더 들어보인다. 염색 안한 건 빼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