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군아, 너는 왜 장애를 갖고 태어났느냐?
아가, 별군아,
우리 아가 별군아.
너는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갖고 있었으니 네가 어떤 장애를 갖고 있는지 잘 모를 거야.
아빤 너같은 장애견을 몇 번 길러보아 대번에 너의 고통을 이해하지만, 넌 본 적이 없어 뭐가 장앤지도 잘 모를 거야.
산책 중에 쏜살 같이 달려가는, 또는 보호자 앞에서 자랑하듯이 씩씩하게 우쭐거리며 걷는 아이들을 보면 아빠는 늘 그게 부럽단다. 어쩌면 저렇게 힘차게 걷고 뛸 수 있을까 부럽단다.
너 말고도 사진 속의 네 형 리키가 뛰질 못했고, 그리고 작년에 하늘 간 할머니 바니는 아에 서질 못해 아빠가 가슴에 안고 다니면서 더 마음이 아팠단다.
그런데도 또 장애를 가진 너 별군이를 맡은 것은, 그래도 장애를 잘 아는 아빠가 널 돌보는 게 조금이라도 낫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단다.
별군아,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
넌 이제 뒷다리 수술만 한번 더 하면 그런대로 걸어다닐 수는 있을 것같다.
남들처럼 잘 뛰지는 못해도 길가의 꽃향기는 네 마음대로 맡을 수 있고, 아빠 걸음에 맞춰 아장아장 걸을 수는 있단다.
그럼 됐지, 암, 이만해도 큰 복이란다.
어차피 너희들은 존재 자체가 장애란다.
말 못하고, 웃지 못하고, 책을 읽을 수가 없잖아.
물론 아빠도 그래. 아빠도 크고 작은 근심, 걱정이 끊어지지 않는 '사람 병'을 앓고 있어.
먼저 간 아이들 꿈꾸다가 벌떡 일어나는 적도 있어. 아빠 손이 미치지 않는 세상이 있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데.
너에게 새 주인이 생길지 정말 걱정이구나. 장애를 갖지 않은 유기견도 많거든. 굳이 장애가 있는 아이를 맡아줄 이가 있을까, 아빠도 엄마도 누나도 걱정이다.
아빠가 나이가 많지 않으면 아무 걱정이 없는데, 엄마도 누나도 직장을 다니니 널 돌볼 수가 없어 아빠 눈치만 보는구나.
처음 너를 맡을 때 카페지기 누나가 아빠에게 간절한 메시지를 여러 번 보내와 어쩔 수없이 맡았다. 안그러면 너는 지금 보호센터의 케이지 안으로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지. 난 그게 싫었어. 어린 네게 또 케이지로 들어가라고 할 수는 없었어. 그래서 아빠가 널 데려왔다.
이 사진이 처음 카페에 올라왔을 때 "경추장애로 일어서지 못하는 7개월 말티즈 아가"라는 설명을 보고 아빠 가슴이 너무 아팠다. 사실 그때 이미 "네가 만약 수술이 실패해 영원히 서지 못한다면 아빠가 맡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수술 경과를 계속 올려달라고 댓글을 달아두었는데, 그걸 카페지기 누나가 보고 있다가 내게 임시보호를 맡긴 거야.
그런데 너는 경추수술이 성공하여 일단 일어서기는 했는데, 내가 바니 할머니 척추 수술을 해봐서 아는데 그때 그 초기 상태와 비슷하구나. 바니 할머니도 처음에는 뒤뚱뒤뚱 웬만큼 걸었다. 지금 거실에 깔려 있는 매트도 사실 그때 산 거란다. 장판 바닥은 미끄러워 자꾸 쓰러지길래 매트를 사줬더니 제법 서더구나. 하지만 얼마 못가서 바니 할머니는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처음 상태가 너보다 나빠서 소변을 제 힘으로 보지 못했거든. 너야 오줌발이 씩씩하니 아빠는 그것만 보고도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모른단다. 바니 할머니보다는 낫구나, 이런 생각으로 말이다.
슬개골 수술을 해봐야 아는데, 네가 술취한 듯 흔들거리며 걷는 걸 보고는 늘 불안하다. 신경섬유 어딘가에서 전달이 잘 안되는 것같기 보이기 때문이다. 슬개골 탓인지 신경 탓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서 슬개골 수술을 해봐야 알겠구나. 아프더라도 한번 더 수술하자.
등이 조금 굽은 건 아무렇지도 않은데 거기서 척추신경이 막힐까 걱정스럽단다.
이제 겨우 10개월이니 네 삶은 아직 14년은 남은 셈이란다. 네가 갈 때쯤 아빠 나이는 70을 넘어야 한다. 그래서 널 분양해보려고 노력하는 거지 네가 밉거나 장애 때문이 아니란다. 널 잘 돌볼 수 없을까봐 걱정하는 거란다.
잘 때마다 아빠 손가락을 물어야 잠이 들고, 후다다닥 달려와 아빠 품으로 뛰어드는 너를 보면 아빠는 차마 널 분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단다.
어떤 선택을 하든 별군이 널 위해 하마.
- 껌을 씹어도 씹어도 아빠 손가락 무는 것보다는 못하단다.
잠자기 전에는 반드시 손가락을 좀 물고 있다가 잠든다.
- 컴퓨터 작업을 하는 중에 안아달라고 통사정을 하여 전용 가방에 넣어 멘 채 일하고 있다.
뭔가 잘했을 때, 대소변 시원하게 보는 걸 엄청난 자랑으로 여긴다, 이런 보상을 요구한다.
많이 안아주마. 손가락 더 많이 물려주마.
아빠 품에 있는 동안 행복하게 살아보자.
누나 길러보고, 네 형 누나들 길러봐서 아는데 그때그때가 행복이지 나중에 행복이라는 건 없더라.
이 순간 행복하면 되는 거야. 지금 행복하자.
내일은 아빠가 준비하는 거니까...
봄꽃은 많이 보았으니 이제 가을 국화보러 가자꾸나.
아름다운 꽃을 많이많이 보여줄게. 이 냄새 저 냄새 향기를 다 맡아보렴.
아빠하고 있는 동안 좋은 추억을 많이 갖도록 해줄게.
추억 하나만 갖고도 평생 견디는 사람들이 있단다. 네가 어느 세상으로 가든 아빠하고 지낸 생각만 살짝 떠올려도 저절로 즐거워지도록 우리 재미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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