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재운 2016. 9. 30. 23:55

어머니가 병원에 계시니, 비록 형제들이 다 모이는 시골집이라도 일찍 가고 싶지 않고, 마침 아내와 딸이 명절에도 근무라서 이래저래 기분이 안나 추석 당일 아침에 별군이만 데리고 내려갔다. 


아버지 형제 5남2매 중 이제 4남 2매는 하늘로 가시고, 75세이신 네째숙부가 계신데 몇년 전부터 우울증이 깊어 성묘를 거르셨다. 시골 가면서 차에서 전화를 드리니 가고는 싶은데 우울증 때문에 못가겠다신다. 머리로는 나가서 햇빛도 쬐고 산으로 들로 나갔으면 좋겠는데, 추억 서린 시골땅을 밟고 싶은데 몸이 천근만근이라 일으켜지질 않는다고 호소하신다. 몇 가지 약을 계속 드시라고 권한 뒤 자동차 스피커폰으로 이런저런 인생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려갔다.


차례에 늦어 성묘만 갔다. 큰형이 1950년생이라 언제 성묘를 끊을지 몰라 애가 탄다. 아버지는 50에 지게를 내려놓고, 60에 성묘를 폐했다. 50부터 성묘 안하던 둘째숙부는 도리어 80이 넘어서야 명절 며칠 치나 택시를 대절해 내려와 조부모 묘소 근처까지 갔다 오곤 하셨다.


성묘 끝난 뒤에는 곧바로 천안으로 가서 어머니를 뵈었다. 빙그레 웃으신다. 소뇌경색 이후 어눌해진 발음이 더 나빠져 이제 어머니 말씀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예, 아니오 말고는 안된다. 누구누구 왔더라, 조카 태행이가 곧 어머니 증손자를 낳을 모양이더라, 손녀딸 기윤이는 오늘 근무라 내려오지 못했다, 증손자 건우가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참 예쁘더라, 대략 시골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해드렸다.


아, 추석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저 어린 시절은 다 어디로 흘러가버렸는지 안타깝다.

어머니는 숙모들과 함께 부엌에서 음식을 마련하시고, 형제들은 이리저리 쏘다니고, 숙부들은 술상을 앞에 놓고 이런저런 세상 얘기, 동네 얘기를 하다 간혹 싸우기도 하시고, 마을 청년들이 풍물을 두드리며 온 마을 집집마다 휘젓고 다니던 그 추석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어머니 문병을 마치고 돌아오니 딸이 퇴근하여 밥을 해주었다. 다음날 아침 수술 후 몸이 무거워 오르내리기 힘겨워 하는 아내를 보러 나는 서울집으로 가고, 딸은 시골에 가고 싶기는 한데 추석이 지나 기분이 가라앉았다며 천안 사는 이모한테나 다녀오겠다고 나섰다. 딸이 시집 가서 손자손녀라도 많이 낳아주면 추석이 좀 즐거울지 모르겠다. 어머니가 중병이시니 명절은 물론 하루하루가 즐겁지 않다.


- 아버지 유택에서 바라본 남쪽 풍경은 참 멋지다. 갈 때마다 속이 다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 성묘 때마다 사진을 남긴다. 1950년생인 큰형이 언제 성묘를 끊을지 모르니 늘 조마조마하다. 

우리 아버지는 대략 60세무렵부터 성묘를 폐했던 것같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으니 

우리형은 75세까지는 성묘를 해주길 기대해본다.

- 별군이는 성묘는 못가는 대신 조카 명원이가 잔디마당에서 놀아주었다.


- 모처럼 입향조에게 성묘하기 위해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다가 잠시 쉬었다. 

큰형은 살그머니 빠져나가 안보인다. 나이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