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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의리

소설가 이재운 2017. 2. 3. 20:30

정치는 기본적으로 전쟁을 닮았다.

고대 전쟁의 승패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이기면 땅과 재물과 여자와 노비를 차지한다. 하지만 지면 죽는다. 그냥 저만 죽는 게 아니라 아내와 딸을 적의 첩으로 빼앗기고, 아들을 적의 노비로 끌려가게 하고, 집이 불타고, 모든 재물을 약탈당한다.

정착민족 군대는 급료라는 걸 지급하지만 유목 군대는 급료가 따로 없다. 적국을 정벌한 후 마구 약탈해서 스스로 급료를 챙긴다.

오늘날 정치는 주로 선거로 전쟁을 대신하는데, 선거에 이기면 모든 걸 다 차지해버린다. 특히 대선과 자치단체장 선거가 그러하다. 선거가 마치 다 먹어치우는 제로섬 게임이다보니 전쟁과 다름없게 된 것이다.


전쟁에서 주로 쓰는 전법은 정치에서 고스란히 적용된다.

거짓말은 전쟁의 기본 수칙이다. 그러다보니 정치인들은 최대한 거짓말을 한다. 도와주면 어쩌겠다, 너 시도의원 공천 주마, 돈 조금 도와주면 나중에 은혜 갚겠다, 벼라별 거짓말을 마음대로 지껄인다. 기억할 수도 없을만큼 많은 거짓말을 하여 막상 선거가 끝나면 그런 말을 했는지조차 잊고 산다.


지금도 동료들을 버리고, 전우들을 버린 정치인들이 고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똑똑하기는 한데 지지율이 안나오고 표가 안나올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역사소설을 쓰다보니 성공한 창업자(건국한 지도자)들은 동지들을 귀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전쟁이란 피차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인데 부하들에게 그 귀한 목숨을 요구하려면 지도자 자신이 의리를 먼저 지켜야 하는 것이다. 지도자가 의심스러우면 아무도 목숨을 걸지 않고, 그런 군대는 오합지졸이 된다. 현리전투에서 군단을 잃은 유재흥 장군이 그런 사람이다. 저 먼저 도망가고, 저만 전리품 챙기는 군대는 반드시 전멸한다.


칭기즈칸은 두 번에 걸쳐 측근을 구성했다. 소위 안다라는 이름의 의형제 그룹과 목숨을 공유하는 너커르라는 혈맹의 동지다. 이 정도 관계가 설정되면 칭기즈칸은 그들이 무슨 잘못을 해도 반역이 아닌 다음에야 절대로 버리지 않았다. 이들과 맺은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켰다. 그 결과 너커르들은 대부분 목숨을 몽골제국의 제단에 바치고 떠나갔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지금 나와 있는 대선 주자들 중 몇 명은 측근들을 잘 버리거나 버린 사람들이다.

자기 하나 바라보고 '내일' 창당 준비하던 사람들을 내팽개친 채 적진에 넘어간 황당한 사람도 몇 있다.

동지들에게 땀과 피를 요구하다가 막상 저 혼자 적진에 투항한 사람도 있다.

전리품 나눠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말하자 나갈 테면 나가라고 등 떠민 사람도 있다.

부하들에게 고생했다는 말조차 아끼는 사람도 있다.

전쟁터의 배신은 흔히 등짝에 비수를 맞는 것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하지만 정치에서는 그들이 적진으로 달아나서 나를 겨누는 선봉이 된다. 거듭 안될 때는 측근들의 얼굴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면 된다. 그들이 지금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자세인가, 적당히 줄 서서 로또나 긁으려는 기회주의자인가. 그런 기회주의자가 많다면 당신은 대선 주자 자격이 없는 것이다. 당신이 정치인이라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이라면 3년 뒤에 떨어질 것이고, 지방선거 당선자라면 내년 봄에 떨어질 것이다.


대선 앞두고 누가 어떤 식으로 동지를 대하는지 지켜보자.

동지를 가벼이 여기는 자, 미래가 없다.


- 지도자가 자기를 지켜주면, 따르는 자는 결정적인 순간에 목숨까지 내놓는다. 역사 속 그 많은 영웅은 목숨까지 바칠 동지를 가장 많이 가졌던 사람들이다. 하물며 거짓말로 속여 데리고 다니다 팽시킨다? 그 자신이 먼저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