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태양/*파란태양*

종으로 살면 안된다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종들이 그냥 두려하질 않는다

소설가 이재운 2017. 6. 7. 22:55

나치 경례를 하는 독일인들 사진이다. 

잘 보면 뭔가 다른 사람이 보일 것이다.



독재자가 경례를 시키는데 안하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오른쪽 지점에 팔짱을 낀 채 거수 경례를 하지 않는 사람이 보인다. 딱 그 한 사람뿐이다.


역사의 고비마다 "아니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박근혜가 그 못난 짓을 하는 동안 아니라고 한 사람은 오직 유승민 의원, 이석수 감찰관, 조응천 비서관, 박관천 행정관 뿐이었다. 그 많은 친박이니 일베들은 찬양하기에 바빴다. 도리어 그들을 배신자라며 짖어댔다.

이승만, 박정희 때도 그러했다. 히틀러, 히로히토의 국민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난 아니라고만 말해야 하는 사간원 대사헌을 할아버지로 두었다가 풍비박산난 집안의 후손이라, 게다가 역사소설을 주로 쓰다보니 종질해서는 안된다, 종질하면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는 다짐을 수없이 해왔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 종들은 잘 모른다. 지역 정치인이 하는 잘못을 조금이라도 지적하면 그 추종자들이 악다구니처럼 달려들어 욕설을 퍼붓고, 손가락질을 해댄다. 제 주인이 감옥갈 게 뻔한 데도 결사옹위한다. 그러다 막상 주인이 감옥가면 조용히 주인을 갈아탄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이 종들로부터 글 내려달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듣는다. 그들은 주인이 죽을죄를 지어도 무조건 잘했다고만 두둔한다. 감옥에라도 가면 그제야 종질을 그친다. 그래 놓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종질한다. 그저 형님동생 뿐이다.


사진 속의 저 사람, 나치에게 경례를 하지 않은 채 팔짱 끼고 있는 저 남자는 아우구스트 란트메서(August Landmesser, 1910년 5월 24일 ~ 1944년 10월 17일)다.

- 아우구스트 란트메서


이 사진은 1936년 6월 13일에 찍혔고, 여기는 함부르크항 해군 함정 진수식 장면이다. 그는 이 조선소 직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용감하게 나치 경례를 하지 않았다. 나치를 반대한 것이다.

사실 그도 원래는 나치 당원이었지만 이 사진을 찍기 3년 전인 1933년 유태인 이르마 에클러를 사랑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나치가 얼마나 나쁜 종의 집단인지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나치를 반대했다.


- 1938년 6월에 찍은 가족 사진. 이 한 순간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그는 죽음을 무릅쓰고 양심을 지켰다.

7월 15일에 그는 체포되고, 부인도 게슈타포에 체포되고 만다.


이 사진을 찍은 뒤 소문이 흉흉하자(대개 이런 일이 있고 나면 다른 종들이 고자질해서 금세 소문이 난다) 유태인 아내와 아이들을 이끌고 덴마크로 탈출했다. 하지만 그는 국경에서 독일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나치는 그에게 부인과 이혼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나치의 요구를 또 거부했다. 나치는 그와 아내를 체포해 수용소에 집어 넣었다. 1938년이다.

2차대전이 치열해지자 1944년 그 역시 강제징집되어 독일군에 편성되고, 그는 크로아티아 전선에서 실종되었다. 

한편 그의 유태인 부인 이르마는 1942년, 그러니까 그가 수용소에 있을 때 딸 이렌느를 낳은 뒤 가스실로 보내져 죽고 말았다. 아들은 죽고, 살아남은 두 자매는 고아원으로 보내졌다가 나중에 할머니가 데려갔다. 할머니가 죽은 뒤 자매는 양부모에게 입양되었다.

이 사진은, 란트메서 부부가 국경에서 체포될 때 임신 중이었던 둘째달 이렌느의 제보로 세상에 알려졌다.


- 나치의 종으로 살뻔한 란트메서에게 양심의 불을 지른 여인 이르마 에클러.


- 자세한 사연이 나오는 유튜브 동영상.


진실을 말하려면 지오다노 부르노 신부(최초로 지동설 주장)처럼 화형을 각오해야 하고,

정의를 말하려면 장준하처럼 머리가 깨져 죽을 각오를 해야 하고,

양심을 지키려면 란트메서 부부처럼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대사헌이던 우리 할아버지는 진실 한 마디 때문에 거제도에 14년간 유배되었다. 생각해보라, 그 14년을. 그래서 우리 집안은 그 유배형을 내린 사람을 체포하여 제주도로 위리안치시키는데 앞장섰다. 그러니 제발 나더러 하찮은 인간의 종이 되라고 요구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