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시인의 역사 인식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우리 역사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다. 사학자만 다뤄야 한다는 생각은 매우 치우친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종환 씨가 상고사에 대해 대놓고 자기 주장을 펴는 것은 적절치 않다. 문재인 씨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가야사를 연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매우 주제넘는 짓이다. 그들이 자연인일 때는 무슨 말을 해도 좋지만 대통령이나 문화체육부장관 같은 직책을 받아드는 순간부터는 말과 행동이 더 엄격해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시인에 관해 한 마디 더 한다.
시는 기본적으로 우뇌의 소산인 경우가 많다. 물론 훌륭한 시 중에는 좌뇌와 우뇌의 적절한 합작품도 굉장히 많다.
다만 시의 발생 자체가 감성의 표현에서 시작된만큼 좌뇌적 논리나 이성보다는 우뇌의 감성과 직관에 의지하는 바가 더 많다. 그렇다 보니 시에는 비과학적인 요소가 많아도 대개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주고 무리한 비유가 있어도 못본 척한다. 산문에서 만일 그러한 문장이 보이면 그건 대번에 비판을 받지만 시에서는 늘 그러려니 눈감는다.
도 시인의 시에도 감성으로는 봐줄 수 있을지 몰라도 이성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소가 굉장히 많다.
-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어떤 마을)
별이 뜨는 것과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 것 사이에 어떤 인과가 있는지 시인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냥 별개의 이미지를 갖다 붙이기만 한다. 노란 색종이와 파란 색종이를 갖다 이어붙이는 것처럼 설명도 없이 한 문장에 쑤셔넣는다.
-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처음 가는 길)
이 역시 비과학적이다. 그게 사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까지 아우르는 표현이라면 모르지만 이 세상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매우 많았고, 지금도 발길이 닿지 않는 땅이 있다. 이런 점에서 대단히 비과학적이고, 사실이 아닌 글이다.
- 기러기떼 열지어 북으로 가고 길섶에 풀들도 돌아오는데
당신은 가고 그리움만 남아서가 아닙니다.(다시 오는 봄)
기러기가 북으로 가려면 봄이라는 뜻이고, 그래서 잎이 말랐던 풀이 다시 새싹을 내민다는 뜻으로 이렇게 지을 수는 있다. 하지만 단계를 너무 건너뛰어 독자가 읽어내질 못한다. 기러기는 당신이 되고, 풀은 그리움이 될 수도 없다. '당신'은 단지 철새가 아니고 그리움은 죽었다 살아났다 하는 풀이 아니기 때문에 적절한 비유로 보기도 어렵다.
- 가장 화려한 꽃이 가장 처참하게 진다(칸나)
거짓말이다.
- 모란이 그 짙은 입술로 다 말하지 않듯
...아리고 아픈 이야기들 하나씩 있습니다 (사연)
모란꽃잎이 붉다고 말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 이 세상이 쓸쓸하여 들판이 꽃이 핍니다.
하늘도 허전하여 허공에 새들을 날립니다.(쓸쓸한 세상)
거짓말이다.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흔들리며 피는 꽃)
안흔들리고도 피는 꽃이 많다. 꽃은 비닐하우스에서도 피고, 집안에서도 피고, 식물원에서도 핀다.
그만한다.
시가 거짓말을 끌어들이거나 억지 비유에 감성을 실으면 어딘가 뻑뻑해진다.
감성은 그냥 솔직하게 표현하면 된다.
지하철 시를 읽어보면 억지 비유에 거짓말 투성이다. 그런 시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
공명이 이루려면 상식과 논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감성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내 스승 서정주 시인이 위대한 것은 자그마한 거짓말도 쓰지 않기 때문이다.
-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국화 옆에서)
국화꽃 피는 것과 소쩍새 울음은 아무 관련이 없다. 그래서 서정주 선생은 '그렇게 울었다'고 단정하지 않고 '울었나 보다'라고 한 발 물러서며 그것이 시인인 자신의 생각이라고 했을 뿐이다. 사실을 바꾸거나 속이려 들지 않았다.
-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문둥이)
문둥이(한센병에 걸린 사람을 가리키는 속어)가 동네를 돌아다니던 시절(나중에 소록도에 집단수용했다), 아이를 잡아 간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속설이 있었다. 그래서 달이 뜬 밤에 보리밭에 숨어 있다가 밖에 나온 아이를 잡아먹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아이를 잡아먹고도 죄책감에 밤새 울었는데, 그것이 꽃처럼 붉었다는 '붉은 울음'으로 표현된 것일 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도종환의 시에는 뛰어난 감성이 토해낸 것들도 있지만 이처럼 기본 논리와 합리를 무시하고 나오는 억지 시도 꽤 있다. 그런 이는 그냥 그런 시를 쓰면 되지 고고학으로 증명되고, 사료와 관련 학문으로 등으로 엄격하게 검증돼야 하는 역사 문제에 끼어들어서는 안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30여년간 역사소설을 써오면서 숱한 사료를 읽고 분석해봤는데 어떤 가정을 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안다. 지금 당장 일어나는 정치 사건도 매우 복잡해 진실을 찾기 힘든데 하물며 수천년 전 역사를 감성만으로 접근하려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나는 잘 안다. 특히 상고사는 고고학, 지질학, 물리학, 천문학 등 여러 학문이 공동 연구를 해야 진실이 약간 드러날 정도로 어려운 영역이다. 장관이 될지 모른다고 자신의 분야가 아닌데도 치열한 공부없이 함 부로 기웃거려서는 안된다.
- 호모 에릭투스(170만년~10만년). 최초로 아프리카를 떠난 인류. 아마 이들 일부도 한반도에 진출했을지 모른다. 그것도 상고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