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두 개의 공간이 있다
호모 사피엔스 70억 명이 바글거리는 지구,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인류가 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법칙으로 사는 건 아니다.
세상에는 두 개의 보이지 않는 층이 있다. 이 서로 다른 층의 사람들은 언제든 서로 만나기도 하고, 얽히기도 한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린다. 하지만 적용되는 법칙이 다르다. 중력, 인연법, E=MC2, 다 좋다. 내가 인연의 법칙을 연구하고, 바이오코드를 파다 보니 겨우 보이더라만, 아는 이가 더러 있고 모르는 이가 대부분이다.
가 그룹에서는 욕을 해도 용서되고, 더러 싸움을 해도, 술 마시고 난동을 부려도 크게 죄가 되지 않는다. 종일 남 욕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쳐도 특별히 잘못될 일이 없고, 나름대로 박수를 받을 수도 있고, 인기를 얻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늘 불만 갖는, 저 놈은 악랄한데, 지독한데, 어째서 돈도 잘 벌고 잘 사느냐는 것이다. 그거야 가 그룹의 법칙이 그러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종일 남 욕하고, 성 내고 악을 쓰며 살아도 괜찮은 것과 같다.
그런 반면 나 그룹의 법칙은 전혀 다르다. 남 욕하고, 남 무시하고, 자기 자신의 공부를 게을리하면 즉각 벌을 받는다. 심지어 남을 돕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암 등 불치병에 걸리기도 한다. 만난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데 막연히 한 도시에 살면서도 그의 불행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더라도, 그의 도움이 있었더라면 죽지 않았을 거라는 그 정황만으로도 죄가 되어 반드시 과보를 받는다.
어쩌다 실수라도 하면 영락없이 감옥에 가고, 한번 비난하는 소리에, 한번 내지른 욕에 불행이 잇따른다. 대체 왜 남에게 피해 안주고 혼자 잘 살겠다는데도 이런 법칙이 작용되는지 화를 내면, 그래서 하늘을 원망하면 그는 가 그룹으로 가야 한다. 거기서는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가 그룹에서 잠시잠깐 나 그룹으로 올라온 자들 중에 속은 아수라인데 겉은 아닌 척하는 사람들은 죽을 때 표가 난다. 아수라가 탈을 쓰고 용을 쓰면 돈이야 잠시 모으겠지만 먹고 죽지는 못한다. 그냥 재산 쌓아놓고 죽고, 그 몸이 썩기 전에 재산은 구름처럼 흩어진다.
가 그룹은 인간의 탈을 쓴 아수라의 세상이요, 나 그룹은 하늘이 비좁아 잠시 인간세상에 내려와 수행 중인 선비들이다. 아수라는 꽃을 다발째, 뿌리째 뽑아가도 죄가 되지 않지만, 선비들은 피어 있는 꽃의 향기만 맡아도 죄가 된다. 아수라의 세상에서는 용서가 덕목이지만 선비의 세상에서는 작은 잘못에도 추상같은 벌이 따른다. 그래서 선비의 세상에는 노블레스 오블레주(Noblesse oblige)라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는 것이다. 심심하거나 시간이 남아돌 때 잠시 기웃거리는 것이 아니라 의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 알라.
* 선비 ; 4향4과(四向四果)에 이른 분들로,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우리말 '선비'로 표기했다.
* 목 마른 사람이 있어서 우물을 준비할 게 아니라 목 마른 사람은 언제든 마실 수 있는 우물을 준비해야 한다.
삼계의 대도사 삐냐저따 큰스님께 "고타마는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며칠만에 깨달을 그 지혜를 어째서 6년이나 이곳저곳 설산으로, 정글로, 모래밭으로 다니며 미친 듯이 죽을 듯이 공부하였는데도 깨우치지 못했느냐?"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셨다. "연등불께서 선혜보살에게 수기하기를 '훗날 아승지겁을 지나 보리수 나무 아래에 앉으면 며칠만에 깨달아 석가모니 붓다가 되리라.'고 수기했다. 그런데 선혜보살이 '붓다가 되는데 어찌 며칠 수련으로 깨달으리까.' 의심하였다. 이 의심 한 자락이 설산 6년 고행의 업으로 나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