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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본 조카딸이 진수성찬을 차려주다

소설가 이재운 2017. 8. 20. 22:49

8월 19일-20일 제천에 다녀왔다. 해마다 한번 갖는 6촌모임인데, 이번에는 제천 사는 조카딸(7촌)의 간절한 소망이 있어 목적지를 그쪽으로 잡았다.
조카딸 이름 함평 이 O희, 얼굴 익히기도 전인데 아버지가 일찍(25세 때) 돌아가시고, 젊은 어머니는 시부모 권유로 바로 재가하셔서 할머니(내게는 당숙모) 품에서 자랐다. 태극도 믿으러 떠난 둘째 당숙 덕에 가난이 일상인 부산 감천동에 오글오글 모여 살았다는 말은 들었다. 내 이름도 그 당숙이 지어주고, 해마다 봄이면 우리집으로 찾아와 한문서적을 뒤적이고, 내게 이런 저런 가르침을 주곤 하셨다.


가난한 살림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컸지만 억척으로 일해 제천에서 제법 성공한 것같다. 울산에서 직장다닐 때 제천 사내를 만나 결혼했는데, 시댁이 있는 제천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단다.

지금은 청풍호수 근처에 큰 식당 두 개를 운영한다. 대형 버스 2대에 중간 버스 1대를 운영할 정도니 규모를 짐작할만하다. 자식들이 다 장성하였고, 잘 생긴 손자까지 두었다. 조카사위는 나보다 한 살 많은데, 아내의 사연을 다 아는지라 정성에 정성을 다해 버스를 운전하고,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 불편하지 않은지 묻고 또 묻는다.


사실, 초청을 받을 때만 해도 어색했다. 여자라서, 또 아버지 6촌 형제들이 모이는 모임이라 한번 가보지 못했으니,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한번 모시고 싶다 하여 별 생각 없이 우르르 갔더니, 점심, 저녁, 아침, 점심을 진수성찬으로 정성껏 내놓는다. 그 비싼 송어회를 지천으로 내놓는다. 먹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먹으라는, 다시 모시기 어려우니 한 점이라도 더 드시라고 채근한다.


실컷 먹고나면 식당 큰 버스로 제천, 단양 일대 관광까지 시켜준다.

내 동생이 이 아이 중학생일 때, 그러니까 어지간히 힘들게 살고 있을 때 부산으로 찾아가 위로한 적이 있는 모양인데, 그걸 50 중반에 이르도록 기억한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 작은 인연까지 기억할까. 어젯밤 새벽 두시까지 이 조카가 내 동생들에게 이야기 하는 걸 잠결에 들었다. 사연이 애절하다 보니 귀로 쏙쏙 흘러들어와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난 이 조카를 처음 보았다. 이 조카를 다시 보기 어렵겠지만, 부디 잘 살고 좋은 공덕 지으면서 이 세상에 더 귀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붓다께서는, 집 지어 나그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배 고픈 사람에게 밥 지어 공양하는 공덕이 몹시 크다 하셨으니, 그 복 꼭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