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마라 미얀마종정 스님 모시고 남대문시장과 용인민속촌을 가다
9월 12일, 미얀마 종정 스님 수행단이 남대문 시장 쇼핑을 가고 싶다고 하여 점심 공양 뒤 승합차 두 대를 여래원에 대놓고 신청자를 알아보니, 당연히 쉴 것으로 예상했던 미얀마 종정 쿠마라 큰스님(90세)과 인도 종정 가네쉬와르 큰스님(82세)이 성큼성큼 나서셨다.
1. 남대문 시장, 도무지 살 물건이 없다?
남대문 시장에 이르러 쿠마라 종정 스님은 속가의 친조카가 휠체어를 밀고, 키가 커서 몸무게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 가네쉬와르 인도 종정 스님은 김상국 교수가 휠체어를 밀었다. 이 날 쿠마라 종정 스님 휠체어는 나도 나누어 밀었는데, 문제는 가네쉬와르 스님이었다. 휠체어 바퀴가 내려앉아 땅바닥에 붙을 지경이었다. 워낙 거구인 데다가 체중까지 어마무시하게 나가다 보니 휠체어가 헐떡거렸다. 경사진 곳을 오르내릴 때 끌어올리거나 잡아당길 때는, 올 8월말로 정년퇴직하여 대우교수 신분이 된 김상국 교수가 사력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교수는 아무에게도 휠체어 손잡이를 내주지 않고 헉헉거리며 끝까지 큰스님을 모셨다.
나라다 스님과 수행단 일행은 따로 갈라지고, 덕산 스님과 나, 김 교수는 두 종정 스님을 맡았다. 덕산 스님은 두 분 노스님께 뭐라도 사드려 보려고 이것저것 물건을 보여도 두 스님은 도무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 "아나파나하실 때 땀이 나면 요걸 틀어보세요, 아주 시원합니다."
덕산 스님이 손선풍기를 사드리려는데 쿠마라 종정 스님이 웃으면서 사양했다.
"비구에게 필요한 물건이 아니야."
생각해보라, 마누라가 있어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나 액세서리가 아름다워 보이겠는가, 자식이 있어 장난감이 눈에 들어오겠는가. 평생 샌달 하나에 바리때 한 벌, 그리고 가사 세 벌로 사는 분들이니 모자도 필요없고, 양말도 필요없다. 남대문시장이 아무리 큰들 꾸마라 스님이 살만한 물건은 거의 없다. 점심 공양까지 하고 나와 뭘 먹자고 해도 소용없다. 뜨거운 날씨에 겨우 커피 한 잔 드셨다.(오후불식에 음료나 주스는 예외다)
그런 중에 김상국 교수가 가네쉬와르 스님 휠체어를 밀며 옷 파는 쇼핑센터로 들어가 휘젓고 다녔다. 나도 올커니 싶어 쿠마라 큰스님 휠체어를 밀고 들어갔는데, 공간이 좁아 여성복 코너의 옷과 옷 사이를 지나게 되었다. 그러자 쿠마라 큰스님께서 오른손을 내밀어 그 옷들을 손끝으로 스치며 지나가셨다. 필요하지는 않지만 실크 종류의 그 부드러운 질감이 좋았던 모양이다. 한 가닥 그림자처럼 남은 속세에 대한 아련한 미련처럼 보였다.
이 날 스님은 결국 덕산 스님이 거의 반강제로 사준 효자손과 여권과 지갑을 넣어 어깨에 거는 작은 가방을 선물로 받아주었다. 진짜 비구에게는 공양물 올리기가 이처럼 어려운데, 파계 일삼는 한국 비구들 중에는 돈 먹고 애 낳는 불가사리 스님들이 많다(고 일부 스님들이 주장한다. 오늘 모스님이 그러는데 아는 스님한테서 자식 결혼시킨다는 청첩장을 받은 일로 한참 이야기했다. 쌍동이 아빠도 그 아이들 결혼은 시켜야겠지, 뭘 그런 일로...)
2. 63빌딩 아쿠아리움, 인어공주가 내뿜는 숨에 푹빠지다
그 다음에 한강유람선을 태워 드리려고 가던 중 통역 조모앙이 "미얀마는 배 천지다. 63빌딩 가서 아쿠아리움 보여드리는 게 낫다"고 하여 그리 갔다.
과연 큰스님들은 아쿠아리움에 반했다. 보고 또 보고, 인어공주 쇼까지 재밌게 보셨다. 인어공주 연기하는 여성들이 이산화탄소를 내뱉을 때마다 하트 모양이 생겨 모두 박수치며 좋아했다.
63층에 올라가 서울 시내 구경도 잘했다.
- 마포대교 너머 서울 시내를 구경하는 쿠마라 미얀마 종정 스님
- 한강 하구 쪽을 바라보다가 사진을 찍는 인도 종정 가네쉬와르 큰스님.
- 미얀마 승가대학장답게 앉으면 책을 펼치고, 차에 타면 팔리어 경전을 암송하는 나라다 스님. 갤러리아 구경 중 해골 조형물을 만나더니 급히 포즈를 취해 한 컷 찍었다. 나라다 스님은 63층 투명유리로 땅바닥이 보이는 '무서운 공간'에 올라가 재밌게 걸어다닐만큼 호기심이 많고 매사 발랄하다.
3. 용인 민속촌
쿠마라 큰스님 수행단장이나 마찬가지인 미얀마 정부 종교성 감사 등이 용인민속촌에 구경간다고 큰스님께 보고드리며 "오늘은 민속촌에 가고 내일은 경복궁에 가는데, 힘드실 테니까 여래원에서 쉬세요"했다가 한 소리 들었다. 쿠마라 큰스님께서 "나를 여래원에 남겨두면 너희들이 돌아왔을 때 아마 저 통유리가 깨져 있을 것이다."라며 거실 창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단다.
결국 쿠마라 스님은 승합차에 타는데 성공하고, 가네쉬와르 스님만 휠체어 사정을 고려해 오늘은 쉬겠다며 대중을 통 크게 배려해 주셨다. 김상국 교수가 선약이 있어 못나온 탓이기도 하다. 김 교수 정도는 돼야 불평없이 가네쉬와르 스님의 휠체어를 끌지, 웬만한 사람은 공덕이 아무리 크다 해도 슬슬 피한다.
일행이 승합차 두 대로 나누어 가는데, 나는 일부러 미얀마 종정 스님과 나라다 스님이 탄 차에 올랐다. 운전은, 만능일꾼인 주지 덕산 스님이 했는데, 나라다 스님이 차만 타면 경전을 암송한다는 말을 듣고 과연 그런가 내가 확인하려고 차를 바꿔탄 것이다.
차가 여래원을 떠나자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나라다 스님이 바깥 풍경을 내다보며 소리를 질러댔다. 소리를 하도 질러 내다보니 뭐 들깨밭과 수수밭 정도가 보일 뿐이었다. 아마 쿠마라 노스님께 한국 농촌에 대해 설명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큰길에 들어사자마자 나라다 스님이 냅다 경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덕산 스님이 승합차 세차하는 것도 신기할 거라며 일부러 주유소에 들렀는데, 거기서 일단 기도가 완성되어 조용해졌다. 세차 뒤에 다시 출발하려 할 때 내가 먼저 "기도합시다!" 하고 외치니까 나라다 스님은 깔깔 웃더니 정말로 경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모든 경전을 다 암송하는 분이니 아무 때고 아무 데서고 암송이 가능한 것이다.
- 차가 출발하자 나라다 스님이 경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미얀마어와 팔리어 경이라 나는 알아듣지 못한다.
- 뒤에 탄 미얀마 수행원들이 합장한 채 나라다 스님을 따라 경을 암송한다.
미얀마인들의 비구 존경은 상상을 넘어선다. 거의 신을 대하듯 경외하는 듯하다.
- 쿠마라 종정 스님도 나라다 스님 선창을 따라 염송하신다.
30살 적은 제자 나라다 스님이 기도를 하든 경전 암송을 하든 일단 시작하면 쿠마라 스님도 꼭 따라서 외우곤 했다.
민속촌에 입장하자 쿠마라 스님은 이곳저곳 관심을 보이며 묻기도 하고, 오래도록 바라보기도 했다.
나라다 스님은 어린애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아이패드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었다. 이런 사진이나 동영상은 페이스북에 금세 올라온다.
이러다 보니 나라다 스님은 미얀마 내에서 "살아 계실 때의 노무현만큼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자칭 민주화투사인 통역 조모앙의 표현) 원주에서 한 미얀마 청년이 찾아와 나라다 스님을 친견하고 갔는데, 미얀마에서 친견하지 왜 그 먼 데서 왔느냐고 물으니 "미얀마에서는 감히 뵐 수가 없는데 마침 한국에 오셨다니 서둘러 뵈러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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