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태양/*파란태양*
나의 비판적인 글은 내 시대에 대한 내 의무다
소설가 이재운
2017. 10. 28. 11:52
- 비판 좀 하지 말아요. 비판 많이 한다고 사람들이 싫어해요.
그런 사람하고 친하다고 나까지 싫어해요.
- 그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라 아직 사람이 되지 못한 짐승이다. 얼굴은 사람 모양을 하고 있지만 뇌를 들여다보면 아직 악어나 도마뱀, 혹은 늑대나 하이에나란다. 사람이 안된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면 큰일난다. 그들 말에 귀기울이지 마라. 그런 반인반수(겉은 인간인데 속은 짐승인)들은 시기질투가 무기란다. 이순신 잡아다가 고문하고, 김구 선생을 총쏘아 죽이고, 일본군 장교 박정희에게 예쁜 여성을 꾀어다 바친단다. 다시는 일본에게 당하지 말자 쓴 징비록이건만 그들은 금서로 묶고, 싸우자싸우자 하다 숨어버린 척화파(주전파)는 국민 60만명을 포로에 화냥년을 만들어도 기어이 노론이 되어 권력을 차지한다.
- 그래도 힘들잖아요! 잘난 사람, 다 죽거나 해꼬지당하잖아요.
- 이 세상에 힘들지 않던 영웅호걸은 아무도 없다. 붓다도 굶어죽을 뻔하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이 박혀 죽었다. 공자는 밥을 빌다 흙이나 먹으라는 모욕을 당하고, 썩은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민본국가 조선을 세운 정도전은 이성계의 아들에게 칼 맞아 죽는다.
이처럼 이승의 삶 자체가 힘든 거다. 힘드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지, 안그러면 지금쯤 하늘나라에 있어야지, 안그러니? 그러니 참자. 참고 견디다 보면 다음에는 진실과 양심이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하늘나라에 태어날 것이다. 지금은 오직 진실에 의지하고, 그렇다 해도 분노하거나 원망하는 대신 자비심을 내고, 그들을 가르쳐 이끌 생각을 해야 한다. 단 한 명이라도 손잡고 하늘 가자.(최근 제자와 나눈 대화)
자연의 동물은 병들거나 다친 동료를 몰아냄으로써 집단을 지켜낸다. 인간도 동물이라서 이런 고약한 버릇이 아직 남아 있다. 동물이야 스스로 치료할 능력이 없어 예방하기 위해 그런다지만 자칭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가진 감염병 환자라도 격리병원으로 데려가 안전하게 치료해줄 수 있다.
우리가 정신질환자들을 수용해 치료와 연구를 하고, 한센병 환자 같은 난치 환자들을 모아 그들을 돌보는 것은, 지금 당장은 돈이 들고 노력이 들지만 그런 가운데 새로운 치료법이 나와 미래의 인류를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세기까지 속절없이 죽어가던 인류가 20세기, 21세기에는 거뜬히 살아남고, 수명 백 살 가까이 바라볼 수 있게 된 것도, 그런 수많은 난치병 환자와 장애인 등을 연구한 결과 덕분이다.
붓다는, 인류 70억 명은 인드라망처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한 송이 꽃과 같다고 했다.
그런데 날새자 마자 남 욕하기 시작해서 잠자리에 들 때나 돼야 그 입을 다무는 짓을 하면 안된다. 그 독이 자신을 죽이고 남에게 해를 끼친다. 페이스북 같은 SNS에 거리낌없이 욕설을 쓰는 사람들이 자주 보여 그때마다 삭제를 하는데, 그래도 한없이나온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짐승형 인간'에 둘러싸여 있는지 알 수 있는 징표다.
이와 반대로,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면서 알려주지 않는 것은 더 큰 범죄다. 이 사회가 암세포처럼 무지와 거짓을 퍼뜨리고, 들쥐 레밍 수준으로 몰려다니는 빠들이 바글거리는 데도 입 꼭 다물고 대문 걸어잠근 채 저 혼자 살겠다고 숨는 지식인은 더 나쁘다. 이 우주에 숨을 곳은 하나도 없다. 안전하게 숨을 곳은 오직 한 군데, 진실 뿐이다. 진실이 당장은 자기 자신을 지켜주지 못할 수 있어도 끝내 지켜준다. 지오다노 부르노는 진실을 말하다 화형당했지만 그 이름은 기어이 부활했다. 그를 죽인 가짜들은 지금쯤 지옥에서 헤매고 있을 것이다.
난 소설가로서 제법 잘 살아왔지만, 알고보니 우리말이 엉터리라는 사실을 안 뒤로 힘이 빠져 사전을 새로 만드는 데 시간을 많이 쓰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국어학자들이 있다. 교수, 교사, 연구원 등 그 수가 대체로 몇 십만은 될 것이다. 하지만 1920년 일본어사전을 번역해 들여온 이래 우리 한자어 대부분이 일본어로 뒤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물론 일본어라도 외래어로써 쓰면 그만이지만 그 이전까지 우리 조상들이 자연스럽게 써오던 우리 한자어가 사라져 문화의 연속성이 그만 끊겼다는 점이 문제다.
지금도 공무원, 법조인들은 새로운 말을 만들 때마다 일본말을 들여다보고, 그걸 억지로 번역해 들여온다. 친일 잔재들이 우리말을 병들게 해버려 지금은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를 정도다.
이러다 보니 내가 30대에 쓴 소설 중에도 일본한자어가 많고, 판이나 쇄를 바꿀 때마다 고치지만 아직도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물론 독자들은 잘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보기 바란다. 30년대 대학교과서 읽어보고, 50년대 교과서 읽어보고, 70년대 교과서 읽어보고, 90년대 교과서 읽어보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2010학번인 내 딸의 대학교과서를 보다가 홱 집어던진 일이 있다. 그야말로 토씨만 우리말이고 나머지는 모두 일본한자어이고, 게다가 그 일본한자어에 우리말 토를 달지 않은 채 책을 내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일본한자어휘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것들이 대학교수라고 아직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으니 우리 학문이 노벨상은커녕 기업에서도 쓸 수 없는 수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칭찬 받으면 고래도 춤춘다지만, 그래서 친일문학인들은 일제를 칭찬하고, 군부독재자들을 칭송했단 말인가. 올바른 비판이 없는 사회는 죽은 것이다. 임진왜란 직전의 지식인 중에 그런 범죄자들이 있었고, 병자호란 시기의 지식인들 대부분이 그런 범죄자였고, 일제 패망기의 지식인들 중 상당수가 그런 범죄자였고, 독재자들이 일제보다 더 악랄하게 우리 국민을 죽이거나 학대할 때에도 많은 지식인들이 그런 범죄자 노릇에 앞장섰다.
우리 사회가 요즘 정화 기능 자체를 잃은 듯하여 속상한 마음을 이렇게라도 적는다. 나 혼자, 혹은 몇 명이 열심히 떠드는 것같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나중에 무슨 말로 이 시대를 산 소설가였다고 말할 수 있으랴 싶어 일이 있을 때마다 의견을 적는다.
나의 비판적인 글은 시대에 대한 내 의무다. 그러니 쥐는 쥐로 살고, 늑대는 늑대로 살되, 사람으로서 쥐가 되지 말고 사람으로서 늑대가 되지 말기 바란다.
- 갈빗대가 튀어나오도록 비쩍 마른 이 사람, 거지가 아니다. 무식한 깡패가, 도둑이 아니다. 부모가 없어 떠도는 고아도 아니다.
가난하지 않은데 굶었다. 아름다운 아내가 있지만 돌아앉았다. 왕이라는 권력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뛰쳐나왔다.
인도 가필라국(현재의 네팔) 태자 고마타 싯다르타, 29세에 그는 이 모든 권력과 부, 안락한 삶을 버렸다. 단 한 가지, 진실을 찾기 위해 자기 몸까지 버리며 6년간 몸부림치다가 마지막에 숨쉴 기력 밖에 남지 않았을 즈음, 이렇게 앉아 죽을지언정 깨닫기 전에는 결코 일어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들숨날숨 들숨날숨 들숨날숨 아나파나 호흡에 집중했다. 이 분 앞에 서면 내 푸념은 어린애가 칭얼거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