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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단기 출가기 2 / 탁발, 밥을 얻어 먹으러 맨발로 걸어가다

소설가 이재운 2017. 11. 22. 21:55


나는 대학을 졸업한 이래 지금까지 수십년 간 이른바 저작권료로 먹고살았다. 돈에 대해서는 별 생각없이 그저 글 쓰면 그 대가로 돈이 저절로 내 통장에 들어오는 줄 알았다. 그야말로 한 푼 두 푼 저작권료가 모여 입금된다는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하고, 출판사가 모아서 보내주는 돈을 우물에서 물 퍼 쓰듯이 썼다.

지난 달 말에 용인 보문정사 덕산 스님의 권유를 받고, 김상국 교수, 진철문 박사와 의기투합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라는 미얀마로 건너가 단기출가를 하였다.
가자마자 머리 깎고 계를 받고 가사를 입었다. 군대 가면서 머리 깎은 이래 처음으로 삭발을 해보았다. 논산훈련소에서 비참하다고 느꼈던 '운명에 끌려다니는 나약한 생명체'가 아니라 내 의지로 나 스스로 삭발한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하루 종일 정글에서 아나파나 수행을 했다.

새벽 4시부터 2시간 동안 아나파나 명상을 하고 나니 비구로서 가장 중요한 수행이 탁발이라고 해서 우리도 스님들 뒤에 섰다.
(나는 밥 문제로 아내와 엄청나게 다툰 적이 있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컴퓨터 앞에 붙어 있다가 기어이 큰소리나고, 정성껏 차려놓은 밥상 앞에 앉아 시간 아까우니 우주인처럼 알약 하나로 먹으면 안될까 중얼거리다가 혼나고, 먹고 싶은 것 있느냐고 물으면 아무거나라고 대답해서 진노를 샀다. 그러다가 막상 서재에 홀로 나와 살자니 밥 먹는 게 너무 힘이 든다. 사먹으러 나가면 그 시간이 아깝고, 누가 밥 먹자고 해도 실은 '아이고 적어도 한 시간이 날아가는구나' 싶고, 집에서 밥을 짓자니 그 시간이 아깝다. 아내가 해다 바치는 밥을 고마운 줄 모르고 데면데면 바라보던 생각이 나 대체 내가 왜 밥 앞에 그리 오만했었나 후회가 사무쳤다. 그런 내게 밥과 토마토 등을 볶아 얼린 밥덩이를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 냉동실에 넣어주고는 배 고플 때 그거라도 녹여먹으라는 아내의 말이 얼마나 큰 공덕인지 전에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아까운 시간 내어 4킬로미터 흙길을 맨발로 걸어나가 밥을 얻어다 먹어야 한다니...)
그렇게 밥 얻어먹으러 맨발로 거리에 나섰다. 붓다가 된 고타마 싯다르타 이래 2600년간 계속돼온 탁발 수행이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붓다가 된 이래 이런 말씀을 자주하셨다.
"모든 중생은 다 먹음으로써 그 목숨을 지킨다. 먹으면 살고 먹지 않으면 곧 죽는다."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바빠 어젯밤이 돼서야 겨우 사진첩을 정리했는데, 탁발 사진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하염없이 미안하고 죄스럽고, 아내에게도 미안하고 죄스럽고 딸에게도 미안하고 부모님에게도 미안하고 죄스럽고 형제에게도 미안하고 별군이에게도 미안하고, 먼저 간 우리 아이들에게도 미안하고, 죽은 형 동생 숙부 고모 다 미안하고, 편하게 살아온 나의 삶, 게으른 삶을 용서받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너무 울어서 머리가 아팠다.

오전 7시, 탁발 시각에 맞춰 밥을 지어 들고 나온 분들, 공양물을 준비하지 못한 분들까지 다 거리로 나와 신발 벗고 무릎 꿇고 두 손을 모은다. 나같은 '짝퉁 비구'마저 이들은 최선을 다해 공손히 받든다. 그런데 나는그들에게 줄 게 없다.
시주가 먹여주는 밥으로 비구들이 공부한다. 그런즉 탁발은 밥을 얻어먹으며 아상을 내려놓는 수행이기도 하지만 넌즈시 시주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살피는 것이기도 하다.
이 분들을 위해 밥값을 해야 한다, 비구들은 이런 생각으로 치열한 구도를 한단다.

탁발로 받은 쌀밥이 차오르자 바루가 뜨거워진다. 그간 인생을 너무 편하게 살았다는 후회가 밀려든다.
더 치열해야지, 비겁하지 말고 내 양심 속이지 말고 힘껏 공부하자, 진실 앞에서 물러서지 말자, 사람들을 더자비하자, 아니 생명을 더 자비하자 맹세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확실한 결심을 했다.
"네 발 달린 동물은 절대로 먹지 않는다."
이 결심에는 상당히 긴 과학적 논리가 있는데 아직 글로 쓰는 중이라 말 못하겠다. 나 혼자 결심하면 되지 남에게는 아직 권하지 않겠다.

내가 게을러질 때마다, 진실을 알면서도 한 걸음 물러서려 할 때마다 이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제 정신을 차릴 것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밥상 앞에 앉아 그때를 회고하지만 나와 함께 탁발에 나섰던 진짜 비구들은 오늘도 떠오르는 햇살을 바라보며 가난한 시주자를 찾아나서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한 군데, 한 마을에서만 탁발하면 안된다고, 중생들에게 공덕을 지을 기회를 많이 줘야 한다고 버스 타고 멀리 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식당에서건 어디건 밥을 앞에 두면 비록 돈을 내고 먹더라도 '얻어먹는다'는 생각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얻어먹을 때마다 기도하고 염원하리라.
- 참마 바세, 찬타 바세, 쪼셈바세(건강하시라, 부자되시라, 행복하시라)

- 아침 4시에 일어나 아나파나 2시간 하고, 아침 공양하고, 7시에 모여 탁발하러 나간다.

삐냐저따 큰스님이 노스님과 함께 우리 코리아 비구들과 기념사진을 찍어주셨다.

탁발할 때 여성의 얼굴을 바라보지 마라, 밥을 얻으면서 그들을 축원하라, 밥 얻어먹어야 산다는 걸 잊지 말고 오만한 마음을 내려놔라, 이런 훈계를 들은 다음이다.

- 탁발 나가자 동네사람들이 이 시각에 맞춰 밥을 해서 나온 사람은 밥솥을 들고 있고, 준비를 못한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엎드려 절하거나 합장한다. 공양 올리지 못한다고 신발 벗은 맨발로 흙바닥에 앉아 절하는 걸 보고 당황스러웠다.


- 동네 사람은 다 나온 듯하다. 공양하는 사람은 하고, 나머지는 모두 무릎 꿇고 앉아 합장한다.


- 스님들이 줄 지어 지나가면 주걱으로 한 번씩 떠서 바루에 담아준다. 맨앞에 우리 스승인 삐냐저따 스님이 선다.

스님도 신도들도 우리도 모두 맨발이다.


- 나는 이 줄 맨끝에서 두번째다. 끝에 보면 붉은색이 살짝 비치는데 쿠타라 비구인 진철문 박사이고, 난 그 다음이다.

계 받은 순으로 서는데, 우리 3비구 중 내가 가장 어리고, 맨끝은 군대로 치면 부소대장급 스님이 탁발 행렬이 어지럽지 않기 위해 서므로, 사실상 내가 맨끝인 셈이다.


- 내가 마침내 바루 뚜껑을 열어 미얀마의 쌀밥을 얻는다. 소득 5만불에서 10만불 사이인 우리가 소득 700불~1000불의 미얀마인들한테 밥을 구걸하는 중이다. 군부 시절 빈부 격차가 심해져 이런 시골 사람들은 소득이 500불 정도 밖에 안되지만 도시인들, 예를 들어 마타지(비구를 후원하여 붓다로 만들겠다는 여성 신도, 비구를 담당하여 평생 가사와 용채를 책임진다)들의 경우 소득이 몇십만 불이 되는 사람도 흔히 볼 수 있다.



- 멀리 있더라도 스님을 보면 무릎 꿇고 앉아 합장하는 게 미얀마 사람들이다.

늙은 할아버지는 서 있지만 아이는 무릎을 꿇었다.


- 내가 탁발하는 사이 오른쪽 여성은 신발을 벗은 채 흙바닥에 꿇어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있다.


- 사람들이 삐냐저따 큰스님이 오시는 길에 꿇어앉아 합장한다.

그러면 스님은 "짬마바세 찬타바세 쪼셈바세"라고 말해준다. 건강하세요, 돈 많이 버세요, 행복하세요란 뜻이다.


- 삐냐저따 스님이 앞장서서 걷는데 근처에 사는 한 비구가 다가오더니 넙죽 엎드려 절을 올린다.

미얀마 비구들은 큰 비구를 만나면 맨발로 엎드려 절한다. 당신이 깨우친 더 높은 진리에 경배한다는 의미다.


- 내가 밥을 얻고 있다. 이 시주자의 볼에 묻은 하얀 흔적은 다나카라는 나무를 돌판에 갈아 바른 천연 자외선차단제 겸 피부보호제다.



- 내가 밥을 얻으면서 웃고 있는데, 비구는 여성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안되는데 사실은 축원한답시고 지금 "짬마바세 찬타바세 쪼셈바세"란 팔리어를 어설프게 건네고 있는 중이다.


- 탁발하고 돌아오는데 할머니와 어린 손자가 길바닥에 꿇어앉아 합장한다.

어쩔 줄을 몰라 이 분들을 쳐다보지 못했다.


- 맨앞이 아사라 김상국 비구, 중간이 쿠타라 진철문 비구, 맨뒤가 나 태이자


- 탁발 중에 학생들을 만나자 덕담을 건네고 있는 삐냐저따 큰스님.





 

- 이 동영상은 2016년 마하미얀 대정글 사원 황금탑 낙성식 때 용인 보문정사 덕산 스님이 찍은 것이다.

위의 탁발 장소와 같다.


*** 이 글을 다 읽으셨으면 인연의 실을 이끌어 여기에 묶기 바랍니다.

아사라, 쿠타라, 태이자가 있습니다.

<황금탑을 세우는 용인 보문정사>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 11

문의 / 031-332-0670 1899-3239

안내/유승민 yuchunni@hanmail.net

 

*** 붓다는 불교신자가 아닙니다.

붓다는 스승이 없습니다.

그가 붓다이고, 그가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붓다에 대해 더 자세히 아시고 싶으면 아래 글을 눌러보세요

 

<나는 이렇게 들었다 1 보문경 상>

<나는 이렇게 들었다 2 보문경 중>

<나는 이렇게 들었다 3 보문경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