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태양/*파란태양*

딸아, 이렇게 살아다오

소설가 이재운 2017. 12. 1. 17:12



기윤아, 네가 오늘날까지 살아오는 동안 네 손으로 혼자 큰 건 아니란다. 뭐 그렇다고 아빠 은혜 생각하라는 게 아니다. 설사 아빠가 사준 음식이라도 그 음식이 어디 한두 사람의 손을 거치겠느냐. 네가 입고 있는 옷 한 벌이 네 어깨에 걸쳐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손을 거쳤겠느냐. 그러니 내가 벌어 내가 쓴다, 이런 말도 해서는 안된다. 남 도움 필요없다, 내가 알아서 하겠다, 이런 싸가지 없는 말도 해서는 안된다.


네가 마트에 가서 우유를 살 때에, 너는 유통기한이 가장 긴 제품을 찾는다고 손을 깊숙이 넣지 말아라. 오늘부터 마실 거라면 맨앞에 있는 걸 사라. 유통기한이 짧더라도 네가 마시기엔 충분할 것이다. 뒤에 있는 유통기한 긴 우유들은 바쁜 사람들이 살 수 있게 건드리지 마라.


과일이나 채소를 살 때도 빛깔 좋은 것, 모양 좋은 것, 예쁜 것을 고르지 마라. 먹는 데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면 네가 먼저 못생기고 안팔릴 것같은 것을 사라. 더 좋은 과일이나 채소는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해라.



자동차를 운전할 때 누가 끼어들려고 하거든 기꺼이 양보해라. 앞차가 천천히 가거든 네가 차로를 바꾸어 가라. 바쁘고 급한 사람 다 보내 주고 그 다음에 네가 가라.


누군가 네게 말을 할 때는 귀담아 들어라. "아, 그래요" "말씀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잘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이런 추임새를 반드시 넣어줘라. 누군가 네게 말을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거란다.


손해를 보더라도 큰돈이 아니라면 웃으면서 잊어라. 어차피 하늘장부에는 빈틈이 없단다. 자갈밭에 보시해도 공덕이 있는 법, 도둑을 맞아도, 사기를 당해도 아주 공덕이 없는 건 아니란다. 하물며 네 손으로 건네는 도움이야 얼마나 좋으랴.


그렇다고 명백한 잘못을 보고도 웃거나 용서하거나 잘했다고 박수치지 마라. 죄나 악은 절대로 길러주면 안된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틀린 건 틀리다고 말해라. 당장 손해가 있어도 너는 용기와 정의라는 이익을 얻는다.

남들이 다 그런다 해도 네 생각에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판단된다면 절대로 따라하지 마라. 그래서 생긴 손해는 하늘이 보상해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다 몰라줘도 아빠는 너를 알아주고 박수를 칠 것이다.



네가 비록 네 돈을 내고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타더라도 반드시 기사에게 고맙다고 말해라. 그들이 비록 돈을 벌기 위해 운전을 한다지만 너를 위해 안전하게 운전해주고 상냥하게 대한 것은 그 기사가 주는 보너스란다. 물론 화난 듯 퉁명스러운 기사가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라도 꼭 인사를 하여 자신의 불친절을 반성시켜라.


누군가 네게 거짓말을 하거든, 나한테까지 거짓말해야 할만큼 절박한 그 사정이 뭘까, 내 도움이 필요하진 않을까, 이렇게 그 사람의 처지를 먼저 생각해라. 하지만 그 사람이 이익을 위해 늘 거짓말하는 습관성이라면 "나는 거짓말하는 사람하고는 거래를 하지 않아요." 이렇게 분명히 얘기해줘라. 그렇게 말해서 보는 손해는 하늘이 되갚아 줄 것이다.




누군가 너에게 자그마한 일로 큰 욕을 하거든, 그 사람은 아직 포유류나 파충류에서 진화하지 못한 반쪽 사람이니 굳이 싸우지 마라. 악어나 늑대하고는 싸우는 게 아니다. 반드시 '사람'하고만 싸워라.

사람은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이고, 생각은 계산하는 것이고, 계산은 시간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것이란다. 지혜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절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