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전 편찬자가 된 이유
나의 또다른 직업은 우리말 사전 편찬자이다.
현재 10권을 써서 출간하거나 준비 중이고, 목표를 20권 정도로 잡고 있다.
내가 왜 사전 만드는 일에 손을 댔는지 적지를 못했다.
나는 역사소설을 주로 써왔는데, 글 쓰는 순서를 적으면 다음과 같다.
1. 먼저 등장인물을 사실적으로 조사하여 삽화와 성격 등 개인 파일을 만든다. 이때 출생연월일을 보아 바이오코드를 찾고, 이어 그 사람에 관련된 행장, 연보 등을 찾아 기록한다. 그래야 소설의 플롯 어디에 등장시켜야 할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매우 자세한 등장인물 사전이 만들어진다.
2. 소설 소재에 따라 서로 다른 어휘를 많이 써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칭기즈칸>의 경우 8권 짜리 대하소설인데, 몽골 등 칭기즈칸 정복지의 지리, 종교, 언어, 문화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래서 따로 어휘 사전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칭기즈칸 사전> <소설 토정비결 사전> <소설 하늘북소리(정역) 사전> <소설 여불위 사전> 등이 만들어진다. 내 소설은 거의 다 이런 사전이 따로 있다. 책에 싣지 않을 뿐 나는 이런 사전을 수십 가지 갖고 있다.
3. 이러고 나면 역사, 종교, 철학, 사상, 예술, 문화 등 각 주제별 사전이 함께 만들어진다. 그래서 저절로 지식사전이 만들어졌다. 역사의 경우에는 후배인 민병덕 선생(용인 용동중학교 교감)이 역사 전공자라 이 분야의 지식 정보를 20여년간 모은 게 있어, 둘이서 모은 정보를 함께 사용한다.
이처럼 기본적으로 사전을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생활을 약 30년간 해왔기 때문에 저절로 습관이 두뇌에 배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나는 내가 쓰는 우리말 어휘가 일본한자어가 대부분이라는 충격적인 진실을 알고난 뒤로 겁이 나고 부끄러워 직접 우리말에 대해 연구하고 조사하여 사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이란 타이틀을 단 <우리말 사전> <우리말 어원 사전> <우리말 한자어 사전> <우리말 숙어 사전>이고, 그뒤 <절대적이며 상대적인 우리말 백과 사전>을 더 만들었다.
올해 내에, 내가 지금까지 만든 우리말 사전을 모두 모아 증보판으로 재출간할 예정이다.
우리말 관련 사전은 대략 20종 정도 만들어 적분하듯이 모아 종합 사전을 만들 것이다. 종합 사전은 표제어만 모으는 단행본이 될 것이다. 이러고 나면 우리말 사전은 역사상 처음으로 완성되는 셈이 된다.
1446년 세종 이도가 한글(훈민정음)을 만들고, 1887년 존 로스가 이 한글로 <예수셩교젼서> 즉 한글성경을 번역 출간하고, 1894년 갑오경장 때 한글이 우리 민족의 공용 문자로 인정되었다. 하지만 1920년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일본어사전을 번역한 <조선어사전>을 내놓으면서 우리말은 일본어와 일본 한자어로 뒤덮여 오늘에 이른다. 내가 만약 이러한 한글의 운명에서 자주적인 <우리말 사전>을 최종 정리한다면 민들레 홀씨만한 공덕이라도 세울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내 계획으로는 우리말에 관한 여러 종류의 매우 값진 사전(내가 운영하는 한국지식문화재단에서 규모있게 해야 할만큼 방대하다. 국가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어서 준비 중이다)이 있는데 내가 다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소설은 3종만 더 쓰면 대략 쓰고 싶은 건 다 쓰는 셈이니 그 다음부터는 사전 편찬에 좀 더 시간을 내고, 바이오코드를 직업으로 삼아 새 인생을 살고 싶다.
이 글을 보는 누구든지 우리말에 대해 혼자 아는 정보가 있으면 언제든 전해주기 바란다. 우리말은 한자에 한번 덮이고, 유학자들이 오염시키고, 일제가 또 덮어버리고, 지금은 영어 등 외국어가 홍수처럼 밀려들어 국민의 언어 생활이 수준 이하다.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국립 국어연구원은 현재 규모로는 현대 언어 생활을 감당하기 어렵다. 어휘 하나라도 귀하니 혼자만 알지 말고 자꾸 모으자.
- 인도의 아쇼카 대왕이 붓다의 성지 부다가야에 세운 마하보디사원.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한 것은 붓다의 반야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한글과 우리말은 우리 민족의 정신이 살아 있을 때 좋은 언어가 된다. 현재는 B급 언어일 뿐이라는 게 내 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