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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이균은 얼마나 비겁했던가

소설가 이재운 2018. 3. 13. 12:08

* 비루하다 ; 鄙陋. 행동이나 성정이 너절하고 더럽다

* 비겁하다 ; 卑怯. 비열하고 겁이 많다.

* 선조 이균 ; 1255


오늘 동아일보에 <너는 달아나지 않고 끝까지 말고삐 잡았구나>란 미담성 기사가 올라왔다.

고대 민족문화연구소가 일본 교토대에서, 마부를 호종공신 3등으로 책봉하는 문서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자가 이런 제목을 뽑았다.

없는 말이 아니고, 선조 이균이 교서에 그렇게 적었다.



임금된 자로서, 대통령이 된 자로서 종을 데려다 과분한 지위와 직책을 주는 것은 다반사다. 어느 정권이나 다 그런 짓을 한다. 다만 모자란 지도자들은 염치없이 내놓고 잔치를 벌이니 문제다.


선조 이균은 임진왜란 경고를 깡그리 무시하다가 전쟁 준비는커녕 공작정치로 <정여립의 난>을 꾸며 영호남 선비 1천 명을 죽이고, 이때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도 잡아들여 국문을 한 졸렬한 인간이다.

그렇게 넋 놓고 있다가 전쟁이 벌어지자마자 의주까지 달아나고, 거기서도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에 망명하겠다는 걸 신하들이 겨우 붙잡아 놓은 용렬하고 비루한 자다.


당시 내 선대조 부자가 의주까지 선조를 호종하고, 더러 세자 광해군 이혼을 따라 적지를 호종했는데 나중에 전란이 끝난 뒤 공신책봉하는 걸 보면 기가 차다. 

이 기사처럼 내시, 마부 등 바로 곁에서 시중을 든 종들은 호종공신(호성공신) 3등으로 대거 올려주었다.

호종공신 1등은, 명나라에 들어가 원군을 이끌어온 이항복과 정곤수 밖에 없다. 이항복 이 자는 선조 이균더러 명나라로 망명하자고 권한 놈이다. 


그럼 2등에는 누가 있을까?

자기 아들 놈 신성군을 맨위에 떡 올려놓고(이놈은 그나마 피난 중에 병이 나서 죽었는데) 유성룡 등 의주까지 따라가며 고위직을 맡은 조정대신들이 들어간다. 물론 왕족은 여기 앞자리에 다 들어간다.


3등에는 잡신들이 들어간다. 여기서 잡신은 선조 이균 곁에서 옷 만들어 주고, 밥 지어주고, 말고삐 잡아주고, 빨래해준 내시, 어의, 노비 등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한 건 좋은데 결국 자기 일신의 노고를 덜어준 사람들에게는 감사하고, 막상 전쟁터를 누비며 적과 싸운 사람이나 광해군과 함께 적지를 누빈 신하들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선대 조상 두 분은 호종공신에는 못들고, 그러니까 노비만도 못하여 따로 만든 호종공신 아래등급인 <호종원종공신>에 겨우 1등으로 들어갔다. 광해군 때 대사간으로 있다가 삭탈관직된 때문인 듯도 하다. 이 할아버지가 쓴 책이 <호종일기>인데 사실상 <호종원종일기>가 돼버렸다.


실제 적과 싸운 사람들은 선무공신이라고 따로 정했는데, 여기에 이순신, 권율, 원균이 들어갔다. 다만 3등까지 다 훑어봐도 곽재우 등 의병장은 한 명도 못들어가고, 승장인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처영, 영규, 신열 등도 들지 못한다. 전쟁에서 목숨 바쳐 싸우든 말든 공신 책봉은 거의 엿장수 마음대로다. 특히 사명당 유정은 평양성 전투에 앞장서고, 이후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의 울산왜성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순천왜성을 공격하고, 이후 사신이 되어 일본으로 들어가 포로 3500명을 데려오는 공을 세웠지만 그는 선무공신 명단에도 없다.

뿐이랴. 의병장을 어떤 공신에도 책록하지 않은 비루함을 더해, 금산벌 전투를 함께한 중봉 조헌의 700명 의병과 승장 영규 휘하의 승군 800명이 전원결사로 호남으로 들어가려는 적을 막아내는 대첩을 세웠는데, 나중에 700의총과 이들을 기리는 사당은 생겨도 승군 800명은 역사에서 그 존재조차 거론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순신 휘하 수군에 여수 흥국사 승려 1500명, 권율 휘하에 처영 스님 아래 1500명 등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영화 <명량>에 그나마 머리 깎은 스님이 띄엄띄엄 등장하는 건 내가 2000년부터 경향신문에 연재한 소설 <당취(승군비밀결사조직/소설토정비결 2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뿐이랴. 임진왜란을 왜 당했는지, 왜 막지 못했는지, 왜 7년이나 대치했는지 우리 잘못을 두루 지적하여 다시는 외적의 침입을 당하지 말자고 피로 쓴 <전시재상> 유성룡의 참회서인 <징비록>은 금서로 지정, 아무도 읽지 못하게 했다. 

우리가 금서로 지정하여 못읽게 하고, 안읽는 사이 일본인들은 이 책을 구해다 출판, 지식인들이 돌려가며 읽었다. 일본은 마침내 다시 쳐들어와 조선을 완전히 복속시켜 임진왜란의 7년보다 다섯 배 긴 36년간 이 땅을 지배했다. 

어리석은 선조 이균을 한탄한다. 이런 지도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아야 하는데 현대에 이르러서만 이승만, 박정희, 박근혜가 대개 이 부류에 속하니 국운을 한탄할 수밖에 없다.

* 선조 이균에게 비겁, 비루, 졸렬, 용렬, 치졸 등 지저분한 말은 다 갖다 썼다. 그래도 그이 품성을 다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 선조 이균을 연기한 김태우. 

실존인물 선조 이균을 가장 잘 연기한 배우다.

선조 이균은 자존심은 강하고, 저만 중시하고, 

겁은 엄청나게 많은 용렬하고 비루한 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