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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란 무엇인가

소설가 이재운 2018. 4. 20. 07:49

국가직 벼슬을 갖지 못한 양반이 죽으면 학생부군이 된다. 요즘에는 신분 차별이 사라져 국민 모두 양반이라고 우기지만, 조선시대 개국 초기에는 인구의 3%만이 양반이고, 조선 말기에는 10%가 양반이었다. 

이 양반 가운데 남성은 공무직을 맡을 수 있는 문반과 무반으로 진출할 수 있는데, 과거 시험을 보되 합격하기 이전의 사람을 학생이라고 했다. 서당, 서원, 성균관 등에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서원의 경우에는 진사 시험에 합격하고도 들어가는 곳이니 거긴 학생 신분을 벗은 이도 있었다.


오늘날에는 족보 세탁을 거쳐 대한민국 국민 100%가 양반이 되고, 죽으면 누구라도 '학생부군' 호칭을 받을 수 있는데 사실 조선 말기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종이 매우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국민들이 오늘날 보이는 집단 의식에는 종이 가진 500년 집단무의식이 남아 있는 듯하다.


따라서 지금 종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 자세를 보고 하는 말이지 실제 신분이 종이라는 뜻은 아니다. 자신의 의지로 생각하거나 판단하거나 행동하지 않고 누군가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면 누구나 종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 종에는 3가지가 있다. 여기서 종이란 조선시대 신분상 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정주영 현대 창업자가 말한 것처럼 누군가의 돈을 받아가며 일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우리집에서도 일꾼을 얻을 때 "놉을 얻는다"는 말을 썼는데, 이 놉이 바로 노비요, 종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으로 태어난 그 즉시 종이라고 말하는 기독교 사상도 꽤 의미가 있다. 누군가의 주인이 되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의 종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종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통령조차 청와대 직원들의 주인은 될지언정 국민에게는 종이 되는 사람이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기 바란다.


1. 주인에게 충성하고, 대외적으로도 그 충성심을 바꾸지 않는 사람들이다. 전쟁에 나가도 같이 나가 같이 죽을 정도의 종들이 뜻밖에 많다. 육이오전쟁 때만 해도 '도련님' 따라 군에 함께 입대한 사람도 있다.

현대에 이런 모습을 보여준 사람으로 전두환을 따르던 장세동 등이 있다. 이들은 주인에게서 선악을 구분하지 않고 정의와 불의를 따로 보지 않는다. 오직 주인만 바라볼 뿐이다. 늑대에서 갈라져 나온 개가 바로 이런 충성스런 자세로 생존과 번식에서 늑대보다 더 크게 성공했다. 왜냐하면 모든 주인들이 원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박근혜에 충성하다 지금은 구치소에 가 재판을 받고 있는 우리 동네 이우현 의원이 여기 속한다. 그는 누구를 섬기든 열심히 섬긴다. 정동영을 섬길 때는 그의 충복이 되고, 박근혜를 섬길 때에도 역시 그의 충복이 된다. 그는 심지어 유권자들에게 충성을 다한다. 그가 비록 박근혜와 서청원을 잘못 만나 잘못된 충성심을 보였지만, 그의 충성을 받은 지역 유권자들은 지금도 그를 아쉬워하고, 위로한다.


2. 주인에게 충성하는 척하지만 여차하면 배반을 하고 더 큰 주인을 찾아가는 것이다. 눈치를 봐가면서 이익이 되는 쪽으로 움직이는 이런 종이야말로 타고난 종이다. 대부분의 종이 여기에 속한다. 먹이를 주는 쪽으로 움직일 뿐 주인의 생사, 성패, 선악 구분을 결코 하지 않는다. 도리어 주인을 속인다. 이승만을 졸졸 따라다닌 이기붕, 박정희의 종인 척하던 차지철 등이 여기 속한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이후 보여준 몇몇 종의 사례 역시 여기 속한다.

친박 진박이라며 설치던 이정현 의원이 있다.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할 정도로 끝내주는 종의 표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박근혜가 기울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져 언론에 전혀 노출되지 않고, 뉴스거리에서 자신을 삭제해버렸다. 오늘날 박근혜를 실과 바늘처럼 따라다니던 종 이정현은 보이지 않는다. 또 박근혜를 누나라고 부르면서 살살거리던 윤상현의원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자들은 악의 소굴인 자유한국당 깊숙한 곳에 숨어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숨 죽이며 쓰나미가 물러가고, 폭풍이 가라앉기만 기다린다. 이런 자들은 언제고 반드시 나타나 누군가의 종으로 새로 태어난다.


3. 또 하나는 주인을 위해 충고하고, 주인이 바르지 않거나 위험한 길로 갈 때 그걸 막아서는 특별한 종이다. 이런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회사원이나 공무원 중에서 자주 발견된다. 오늘날처럼 직업인이 아주 많은 세상에서 이런 자주적인 사람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주 보기 어려운 종이다. 사회비판세력으로 성장하지만 실제로는 주인으로부터 엄청난 탄압을 받는 사람들이다.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지적하며 뛰쳐나온 유승민 등 바른정당 사람들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물론 이중에서 도로 악의 소굴로 돌아간 사람들은 작은 용기를 냈을 뿐 본질을 바꾸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을 뛰쳐나와 국민의당을 만든 사람들도 이런 부류에 속할 수는 있지만, 사실 공천을 받지 못할까봐 뛰쳐나온 호남 국회의원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종의 습성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인정신을 갖기가 그만큼 어렵다. 주인 정신을 가지면 손해가 나고 배척받기 쉽다.

작은 기업이라도 꾸려본 사람이면 주인 노릇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할 것이다. 주인은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스스로 정하는 사람이다. 모든 분야를 다 살펴야 한다.

이에 비하면 종은 주인만 따라가면 된다.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냥 주는 녹이나 얻어먹으면서, 이 녹이 적으면 더 달라고 요구나 할 줄 알지 그 녹이 어디서 어떻게 구해지는 것인지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부속으로 살 뿐 전체를 볼 필요도 없다.


나는 평생 종의 습성을 떨치려고 노력했다. 크고작은 데서 늘 종의 습성이 스물스물 기어오를 때가 있었다. 유신 교사들에게 얻어맞으면서, 종의 근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군대에서, 혹은 큰 집단이나 권력에 줄 서서 떡을 얻어먹으려는 세상에서 수많은 유혹을 뿌리치면서 나를 세워야 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종이 되지 않고 주인이 되는 학습을 하고 훈련하는 존재인 것같다.


생각할수록 슬픈 일이다. 지방선거를 지켜보니 여기저기서 수많은 종들이 보인다. 후보마저 종이다. 유일한 주인인 국민 역시 주인 정신을 잊고 종으로 처신한다. 그럴수록 나를 더 날카롭게 세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내 딸에게 "네가 결정해라" 이런 충고를 많이 한다. 누가 결정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면 된다.


- 핵폭탄이 떨어진 뒤 죽은 동생을 업은 채 묘지 앞에 서 있는 맨발의 한 소년. 이 소년은 지금 덩생을 화장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꽉 다문 그의 굳은 입술에서 종이 아니라 주인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1945년 8월 15일 이후 미군이 진입한 후의 일본 나가사키. 미 해병대 소속 조셉 로저 오도넬이 찍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무거운 업보를 짊어지고 살아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