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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정치 발언으로는 강도가 너무 센 거 아닙니까?
소설가 이재운
2018. 5. 19. 11:45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 소설가의 정치 발언으로는 강도가 너무 센 거 아닙니까?
예, 셉니다.
나는 직업 소설가입니다. 따라서 직업정치인처럼 오랜 시간 정치 문제에 몰두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도 하루 10시간씩 일을 해야 겨우 목표한 분량을 마칠 수 있습니다.
제가 SNS에 정치 관련 글을 쓰는 데는 10분 정도면 족합니다. 친한 후배들과 논쟁을 벌이면 재미삼아 주거니 받거니 쓰는 경우도 있지만, 머리 식히는 셈이지요. 온라인에서는 치열해도 오프라인에서는 만나서 낄낄거리며 잘 놉니다.
제가 정치 코멘트를 세게 하는 이유는 딱 두 가지입니다.
무지, 무명은 질병과 같습니다. 무식이 병이라는 제 말에 동의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수많은 역사인물을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행도 불행도 무지, 무능, 무식에서 온다는 걸 잘 압니다. 무식의 반대는 지혜입니다.
당장 병이 나 죽을 지경인 사람에게는 약을 먹입니다. 배 고픈 사람에게는 밥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는 물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지의 병에 든 사람은 약도 밥도 물도 소용이 없습니다. 반야는 약으로 조제해 먹일 도리가 없습니다. 석순처럼 오랜 세월 공부해야 겨우 한 방울 맺히는 게 지혜입니다.
그러니 무지의 병통은 두드려 깨는 충격을 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을 죽이거나 때릴 수는 없으니 우선 말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백이면 백, 말을 안듣습니다. 말을 들을 줄 알면 무지한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 다음 순서로 충격을 줘야 하는데 우리나라 같은 법치 국가에서는 폭력을 쓰면 큰일납니다. 그래서 법으로 합니다. 그러니 일단 고소를 하고, 그래도 안되면 증거를 잘 모아서 그 증거에 태워 감옥으로 보냅니다. 감옥에 보내는 것이, 무식하게 날뛰다가 더 큰 죄를 짓는 것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대개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뉘우칩니다. 그래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수가 있습니다. 어쨌든 다른 피해자는 안나오는 셈이지요.
다른 이유로는, 정치적으로 실패하면 그것이 학문이든 문학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어이없이 박살납니다. 정치적으로 인정받아야 좋은 시인, 좋은 작가처럼 보이는 세상입니다. 정치세력을 등에 업으면 상을 받을 수도 있지만 정치세력이 없으면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언론도 정치를 등에 업어야 힘을 갖고, 종교도 정치를 잡아야 영향력을 갖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작은 종교세력인 천주교가 영향력 면에서 가장 큰 것은, 그들은 오랫동안 정치를 직접 해봤기 때문에 그만큼 정치기술이 높아서 그렇습니다. 천주교 역사에 정통하신 분들은 정치 속성을 잘 압니다. 시속을 초월했다며 속세를 등진다고 심심산골 절간에 숨어 차를 마시고 있어도 군홧발이 쳐들어오는 게 세상입니다. 아무도 정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정치를 외면하지 말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십시오.
정치는 모든 것의 모든 것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결코 더러운 것이 아닙니다. 정치를 더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잘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도량형(度量衡)은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아니지만 길이를 정해주고 부피를 정해주고 무게를 정해줍니다. 눈금이 바르면 누구나 다 도량형에 승복합니다.
사람들이 고상한 척 정치를 외면할 때에는 이 도량형 눈금이 왔다갔다합니다. 국민세금이 도둑놈, 사기꾼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갑니다. 그대신 혼자 아이를 기르는 여성들이 배고파 울다 옥상에서 몸을 던지고, 노인들이 폐지 줍겠다며 바람 찬 골목길을 손수레 끌고 다닙니다. 고층빌딩에서 창을 닦다 떨어져 죽고, 맨홀에 들어가거나 탱크에 들어가 청소하다 질식해 죽습니다. 당신들이 고상한 척 외면해준 결과가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이런 분들 중에서, 종종 나더러 정치 발언 줄이라고 충고해주는 분들이 있는데, 정치가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저는 책임 있는 사람이고, 우리 국민 중 일부가 조금씩 저작권료를 모아주어 여태 제 가족과 함께 먹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정치인들 눈에는 국민이 표로 보이지만 제 눈에는 저에게 밥을 주는 분들로 보입니다. 저는 그 빚을 글만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약효가 빠른 정치로도 갚고 싶습니다.
정치는 원래 따뜻한 겁니다. 유익한 것입니다. 효과가 직방입니다. 소설은 아무리 써봐야 영양제 정도 밖에 안됩니다. 정치가 바로 역사를 바꾸고 삶을 바꾸고 인류를 더 나은 미래로 갖다줍니다. 정치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 보십시오. 우리 후손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선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치 참여입니다. 더 행복해지거든, 더 편안해지거든 한가할 때 제가 쓴 소설도 읽어주십시오.
나는 내가 사는 용인의 시장 후보들을 연구했습니다. 특히 현 시장은 그가 신나게 자랑하는 주제를 중심으로 의심하고 분석하고 증거를 찾아 그들의 포스터와 현수막이 허구임을 밝힐 준비를 마쳤습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이 사는 곳에서 출마자들을 잘 살피고, 따지고, 분석해 좋은 사람을 뽑도록 하십시오. 거짓말이나 현수막에 속지 말고, 포장 따위는 뜯어내 버리고 그 속에 알맹이가 있는지 없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그래야 당신들의 삶이 나아지고, 이웃이 행복해지고, 아이들의 미래가 밝아집니다. 안그러면 사기꾼과 도적떼만 태평가를 부르게 될 겁니다.
제 친구들이 저를 전략폭격기 <B-1b 랜서>라고 부르는데, 이런 대형 폭격기는 자주 출격하지 않습니다. 승부를 결정짓는 나가사키, 히로시마 원폭 투하 작전 정도는 돼야 이륙합니다. 평소에는 늘 제 본분에 충실합니다. 안그러면 제 나이에 책 150권을 쓸 수 있었겠습니까. 전 시간을 잘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니 더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나치 경례를 하는 독일인들. 그러나 이 중 한 사람은 팔짱을 끼고 있다.
찾아보라. 모두가 다 두려워 눈 감고 고개 돌릴 때 누군가는 적을 똑바로 쳐다보며
"당신은 틀렸다!"고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종으로 살면 안된다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종들이 그냥 두려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