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작품/소설 장영실

영화 천문을 본 사람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

소설가 이재운 2020. 1. 1. 16:30

- 소설가의 슬픔

내 작품이 영상으로 나와도 사실 나는 보지 않는다.
몇 번 아픈 경험이 있다.
영상으로 원작을 살리려면 아마 시리즈 영화라면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먼저 시나리오로 엉망 만들고 그 다음에 영상으로 짓이긴다.


1993년인가 청소년역사소설 시리즈 20권을 만들었는데, 청소년인만큼 거의 가공을 하지 않은 진실한 이야기를 썼다. 

내 출세작인 <소설 토정비결>은 사료가 워낙 없어 마음껏 이야기를 꾸미고, 사랑이야기도 집어넣고, 

갖가지 삽화를 끼워 독자들이 지루하지 않게 장치할 수 있었는데, 나는 청소년 소설은 그렇게 안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천년영웅 칭기즈칸>에는 상상이 많이 들어가지만 청소년용 <테무친>의 경우는 사실(史實)만 따라가도록 

담담하게 서술한다. 요 몇 년 사이에 나온 <이순신> <장영실> <징비록>이 청소년 역사소설이다.


영화 천문을 본 사람들은 아래 글을 더 읽어보면 흥미로울 수도 있다. 

영화는 주로 삭탈관직되기 며칠 동안의 이야기만 나오기 때문에 장영실의 삶을 들여다볼 수가 없다.

- 내 소설 <장영실>은 장영실이 왜 관노였는가 그 이유부터 추적한다. 

장영실은 1384년생이다. 고증이 필요하지만 장영실이 충남 아산으로 낙향한 것은 그곳이 그의 관향이기 때문이다. 

장영실 아버지가 원나라 소주 항주 사람이라고 실록에 나오는데, 그 후예란 뜻이다. 

그래서 나는 고려실록을 뒤져 그의 아버지를 정몽주의 측근 장성휘로 잡았다.


- 정몽주가 죽은 뒤 그의 측근들은 모조리 삼족이 멸족되고 처자들은 관노가 되었다. 

장영실 나이 9살 때다. 딱 들어맞는다. 장영실은 다음해부터 동래현 관노로 끌려간다.


- 장영실 나이 14세 때 이도가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 이방원은 이도가 두 살이 되던 해에 쿠데터를 감행, 정도전을 죽이고 왕권을 찬탈한다. 

열네 살 차이의 장영실과 세종 이도가 친구처럼 그려진 영화는 그래서 사실성이 한참 떨어진다.


- 장영실 나이 37세 때 동래현령의 추천으로 궁중 노비로 올라간다. 

아마도 상왕인 태종 이방원이 손재주 좋은 노비들을 모은 듯하다. 

이 무렵 대리청정 중이던 세종 이도가 종종 장영실을 불러 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이 과정에서 세종 이도는 장영실의 손재주를 알아보고, 

이듬해인 38세 때 명나라에 가서 천문기술을 배워오라고 보내는데, 이때 면천되었다. 

대호군이 된 건 천문기기를 만들어낸 2년 뒤다.


- 장영실 50세에 4품관이 되었다. 이때 영의정 황희가 찬성했다. 

영화에 나오는 것과 전혀 다르다.


- 장영실 55세에 종3품이 되었다. 영화에 없는 내용이다.


- 장영실 58세에 측우기를 만들었다.


- 장영실 59세, 세종 이도 46세에 안여 사건이 일어난다. 

영화에서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게 아니라 이천에 가 목욕까지 다 마친 다음 

남대문까지 들어온 상황에서 작은 금이 간 걸 세자인 문종 이휘가 트집잡아 못타게 한다. 

사실 이 안여는 황제만이 탈 수 있는 수레였다. 

명나라에서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이다. 천문기기와 더불어 황제가 노여워할 부분이다. 

황제는 스스로 天子를 자칭하여 천문역법 등을 독점한다. 수레도 다르고, 복식도 다르다. 

영화에서는 세종이 발톱 5개인 곤룡포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는다. 당시 발톱 4개 짜리를 입었다. 

5개짜리는 고종 이재황이 황제 선언 뒤 처음 입었다.


- 장영실이 물러난 지 두 해만에 훈민정음이 완성된다.

그의 묘는 아산시 안주면 문방리에 있다. 

아산 사람들은 장영실이 자기네 인물인 줄도 잘 모른다.


* 장영실의 발명품들. 별시계, 물시계, 해시계. 심지어 휴대용 해시계까지 있다.
* 영화 제목 <天聞>은 한문법에 맞지 않는다. 

한자 해석은 '하늘에 묻는다'가 아니라 '하늘이 듣다' '황제가 신하의 말을 듣다'다. 

물어봐야 알려주지, 내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