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뭔지도 모르면서 복 받으란다
해가 바뀔 때마다 도량형 문화가 부실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해 인사를 여러 번 한다.
동지에 하고, 양력 설에 하고, 음력 설에 하고, 입춘에 한다. 그때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란다.
복이 뭔지도 모르면서 복 받으란다.
특히 쥐띠해가 되면 쥐가 새끼를 많이 낳느니 근면하니 여러 헛소리를 늘어놓으면서 올해의 특징을 설명한다.
링크한 글에도 쥐때, 소띠 식으로 정한 12지지가 언제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알지 못한 채 아무 말이나 그냥 한다.
나는 우리 국민들이 조금 더 슬기로워지기를 바란다.
무슨 일이든 의문을 갖는 사람이 많아야 발전이 있다.
의문도 없고, 궁금할 거 하나도 없고, 사리를 따져볼 것도 없이 주인이 시키는대로 물라면 물고 짖으라면 짖고,
엎드리라면 엎드리고 기라면 기며 살면 벼슬이 뚝 떨어지고, 뱃지가 뚝 떨어지니 종질이 습관이 된 건 어쩔 수 없다.
귀찮지만 한번 더 적는다.
1. 복이란 제사에 쓴 음식을 가리킨다. 즉 '귀신이 입을 댄 음식'이다. 이 복을 먹는 것을 음복(복을 먹다)이라고 한다.
제사 음식 실컷 먹으라는 건, 솔직히 말해 별로 좋은 뜻이 아니다. 집안에 제사 많아 좋을 일이 뭔가.
기독교인들까지 복 받으라고 인사하는 걸 보면 정신나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복이 무슨 뜻인지 모르니 그러겠지만.
기독교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기왕이면 '행복하세요'라고 하는 게 낫다.
이때의 복은 귀신이 도와주는 무형의 모든 것을 말하므로 그럭저럭 새겨들을만하다.
그런데 사람이 먹기만 하면 좋은 게 아니잖는가.
오늘 설날이라고 죄수들에게 떡국을 주었다는데 이 죄수들도 복은 받은 셈이다.
그래서 행복하라고 인사하라는 말이다.
幸은 입건, 기소, 재판, 형벌 같은 게 없이 두 손, 두 발이 자유로운 것을 말한다.
물론 영혼을 빼앗긴 빠들이야 幸이라고 할수는 없으리라.
그래서 <행복하라>는 말은, 신체의 자유를 얻고, 먹고 입고 사는 걱정이 없기를 바란다는 뜻이 된다.
2. 쥐가 새끼 많이 낳으니까 어쩌고?
실제 쥐의 일부 이미지를 빈 것뿐 쥐 자체하고는 큰 상관이 없다.
사실은 쥐가 컴컴한 굴속에 숨어 눈알을 요리조리 굴리며 바깥세상을 오래도록 살피는 모양을 딴 것이다.
조심을 많이 한다는 뜻이다. 이건 설명이 길어지니까 이 정도로.
3. 흰쥐니 빨간쥐니 하는 건 완전한 사기다. 그런 건 없다.
십간은 음력 한 달을 기록하기 위한 서수였다. 갑일에서 계일까지 10일인데 이게 한바퀴 도는 걸 旬이라고 했다(손가락으로 다 셀 수 있어서). 열 개의 태양을 사람 손 하나로 묶으니 순이다. 이 순이 3번 돌아가면 한 달이라서 상순, 중순, 하순으로 한 달을 구분했다. 이뿐이다.
이때문에 중국 상나라 시절부터 자기가 어떤 날에 태어났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갑일에 태어난 사람은 이름에 갑이 들어가고, 죽어도 갑일이 돼야만 장사를 지낼 수 있었다. 만일 을일에 죽으면 9일 기다렸다가 장사를 지낸다. 자기 날이 아니면 죽어도 하늘에 갈 수 없다. 죽긴 죽었는데 하늘에 못간 건 자기 날에 무사히 장사를 지내면 그때부터 亡이 된다. 합쳐서 사망이다.
4. 한 해가 바뀌는 건 여러 시행 착오 끝에 입춘으로 잡혔다. 중국 하나라 하력에서는 인월(양력 2.4)을 새해로 잡고, 상나라 상력에서는 축월(1.6)을 새해로 잡고, 주나라 주력에서는 자월(12.7)을 1월로 잡았다. 이후 신라는 효소왕 9년에 당나라 측천무후력에 따라 입춘을 기준으로 하는 인월을 1월로 고쳐 잡았다. 이처럼 동양에서는 입춘이 새해 기준이 되었지만, 서양에서는 춘분을 새해라고 생각하며, 달력만 무의미한 1월 1일로 삼은 것이다. 서양의 크리스마스는 원래 동지를 가리키는 태양절데, 동지 계산을 잘못해 25일이 된 것이다.
5. 사주 보는 이들 중에 2월 4일 기준으로 보는 천문력은 틀리고, 12월 21일 기준 동지부터 해를 바꿔야 사주가 맞는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든 저렇든 사주라는 건 미신이요, 가짜다. 사주 보려고 쥐띠 소띠 만든 게 아니다. 12지의 고향인 아랍에서는 사주 같은 게 없다. 중국에서 만든 가짜다. 그나마 중국의 12지는 아랍에서 바로 오지도 못하고 인도 거쳐서 온 것이다. 인도에도 사주가 없다.
*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고? 세상이 그럼 그렇게 단순한 줄 아는가.
모르면 지켜보고 살펴보고 배워야 한다. 모르면서 주인 가는대로 종종거리며 따라다니는 것,
이게 제일 못된 짓이다. 주인으로, 사람으로 살아야지 빠질하며 시간 낭비하지 말라는 말이다.
* 굳이 이런 글 올리는 것은, 혹시라도 궁금하게 여기는 분이 있지 않을까, 그 한 분을 위해서 나름 지식을 보시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받을 테면 받고 말 테면 마는 것이다.
역사 공부하다 보니 제일 웃긴 게 뭐냐, 비과학적인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장하는 유명 역사인물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허준의 동의보감이 아무리 유명하거나 말거나 거기 적힌 황당한 얘기들을 보면 허준의 정신세계를 믿을 수가 없다. 즉 허준도 남의 것을 그냥 베꼈다는 말이 된다. 난 그러고 싶지 않다. 내가 직접 의심하고 확인하고 실험해보고 싶을 뿐이다. 물론 시간이 모자라 나도 다 그렇게 따지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서로서로 관심분야마다 파헤치고 뜯어보다 보면 진실이 더 많이 드러날 것 아니겠는가. 나는 더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