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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장의 시신을 놓고 다급하게 후퇴하던 그 날의 숨막히는 순간

소설가 이재운 2020. 6. 24. 22:49

육이오전쟁 70주년, 돌아오지 못한 전사자 12만 2609명 가운데 우리 아버지의 사촌 李肅範(이숙범) 소위(전사 당시 계급)가 있다.

1.4후퇴 당시 쫓고 쫓기는 격렬한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돌아오지 못한 군인들은, 대개 전투 중 중공군이나 인민군에 밀려 후퇴하는 과정에서 전사하신 분들이다.

어쩔 수 없이 전우의 시신을 전장에 놓고 온 전우들은 얼마나 가슴 아프겠는가.

부하들이 소대장의 시신을 놓고 다급하게 후퇴해야만 하던 그 날의 그 치열하고 숨막히는 순간을 상상해본다.

 

어쩌면 아버지가 가야 할 전쟁이었지만 장티푸스에 걸려 가지 못하고,

또래 사촌이 집안의 지명을 받아 짧은 훈련만 받고 소위 계급장을 단 채 그대로 전선으로 달려갔다.

 

12만 2609명, 이 분들이 다 돌아오시기 전에는 육이오전쟁이 끝난 게 아니다.

우리 할아버지들로서는 매우 참담한 게, 우리 집안 식구들이 밥을 굶으면서 군자금을 모아 보낸 돈을 받은 독립군들이 당시 북한 인민군이 되었다는 사실이고, 그럼에도 할아버지들은 그들에 맞서 싸우라고 자식을 전선으로 보냈다는 또 다른 사실이다.

 

내가 북한과 친일파 등을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복잡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해방되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탈영병으로 숨어 살았을 것이고, 여순사태 투입 직전에 같은 군인을 죽일 수 없다며 탈영한 숙부는 죽을 때까지 탈영병 신분으로 차별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독립유공자가 되었지만, 자식들 중 대부분은 교육받지 못한 채 가난하게 살고... 형과 동생들에게 이런 집안 이야기를 해줘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이게 역사지 뭐.

 

* 육이오전쟁 기념 배지. GS리테일과 농협은행에서 나눠준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