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아가라 폭포, 너는 왜 비겁하게 얼어붙었느냐
- 야당 가리켜 토착왜구라고 비아냥거리고, 친일한 놈은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끌어내겠다며 핏대 세우는 사람들에게 내가 아는 1930년생 어르신이 글을 보내와 절규하신다.
- "일제 시대란, 왜인 교사들이 칼 차고 다니면서 우리 학생들을 교육시키던 시절이다.
태평양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하여 어린 국민 학생들한테까지 공부대신 송진을 따오라고 시켜서 산에 올라가 송진을 뜯어다 바쳤다.
일제는 쌀과 보리는 강제로 공출이라 해서 다 뺏어가고 기름 짠 콩깻묵을 먹으라고 배급을 주어 어린 우리들은 콩깻묵이 고급 과자인 줄 알고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먹었다.
우리에게는 국가가 없으니 국가가 무엇인지 모르고, 민족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일제의 앞잡이 선생들이 시키는대로 천황 만세를 외치고 창씨를 당하고 한글이 아닌 왜놈 글을 배웠다.
1945년 일왕의 무조건 항복으로 조국이 해방되었으나 3·8선이 생겼다.
북쪽은 소련군이 진주하고 남쪽은 미군이 진주하여, 우리 남쪽에 군정이 실시되었다.
그러자 좌익이니 우익이니 나뉘어 싸웠다. 당시만 해도 정확히 말해서 선생들도 좌익에 가까운 분들이 7, 8할 정도는 됐다.
그때 김일성 공산치하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친일 세력과 지주 계급, 개신교도들이 남한으로 내려와 서북청년단이라는 완장을 차고 미군정에 딱 붙었다. 그러더니 그 많은 좌익을 보도연맹으로 묶어 관리했다.
그러다 육이오전쟁이 나자 보도연맹으로 관리하던 좌익 비슷한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대전형무소에서는 보도연맹원들을 우물에 던져 죽였다. 나의 국민학교 시절 교사가 세 명이나 죽었다.
숨어 있던 지방 좌익들은 인민군이 들어온 뒤 완장을 차고는 자기 형제들의 죽음을 복수한다면서 우익계열 사람들을 죽창과 곡괭이로 찍어 죽였다.
이 더러운 세대를 살아보지도 않은 것들이 어찌 그리 말을 쉽게 하는지 피가 솟는 것같다."
* 나이아가라 폭포도 얼어붙으면 더이상 흐르지 못한다.
1930년생 이 어르신의 인생은 이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문빠들은 모두 김구나 안중근이나 이봉창처럼 자기 목숨 바쳐 독립운동하며 살 것같지? ㅋㅋ 그 입으로 이렇게 말해라! 나이아가라 폭포, 너는 왜 비겁하게 얼어붙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