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은 왜 군사도시가 되었나?
용인은 왜 군사도시가 되었나?
인구 110만의 용인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IT 첨단 도시다.
삼성전자 반도체가 기흥에 자리 잡은 지 40년, 이제는 처인구 원삼에 하이닉스까지 둥지를 틀고, 일대에 관련 첨단업체 유치를 위한 클러스터 조성에 120조 원이 투자된다.
우리나라를 먹여 살린 삼성반도체 기흥캠퍼스. 덕분에 용인도 110만 특례시가 되었다.
SK 하이닉스가 들어오는 처인구 원삼면 일대. 반도체 클러스터에 무려 120조원이 투자된다.
이것만으로도 용인시는 충분한 이야기거리와 홍보 가치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용인에는 용인시민들도 잘 모르는 역사 지리적 가치가 숨어 있다.
바로 휴전선 동부, 서부 전선을 모두 관할하는 육군지상작전사령부가 있다. 강원도 원주에 있던 1군 사령부와 용인에 있던 3군 사령부를 합쳐 경기, 강원, 인천의 대북 최전선을 담당한다. 서울은 수방사, 경기 이남의 후방인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는 기존 2군 사령부가 맡는다.
역북동 산 속에 엄청난 사령부가 있다 보니 시민들 눈에 잘 안띄지만, 이곳은 대한민국을 방어하는 육군의 심장부다.
지상작전사령부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렇게 중요한 군사기지가 용인에 자리잡은 까닭에는 이 곳 용인에서 치러진 세 번의 전투가 그 지리전략 가치를 충분히 보여준다. 용인에 살면서도 모르는 용인의 역사에 그 까닭이 있다.
용인에서 치러진 가장 유명한 전투로는 1232년, 처인성에 있던 승장 김윤후가 몽골군사령관 살리타이를 사살한 처인성 전투다. 몽골군 사령관이 전투 중 사망한 사례는 살리타이가 유일하다. 그럴만큼 몽골군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갖고 있었는데, 딱 한 군데 용인 처인성 전투에서 패하고, 그대로 철군하였다.
육군지상작전사령부 선봉사에 봉안된 김윤후 승장 영정
두번째 전투는 임진왜란 중에 왜군이 한양을 점령하자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3도에 흩어져 있던 관군이 일제히 용인 땅까지 올라와 한양수복전을 벌인 곳이 바로 용인이다. 당시 용인이란 지금의 마북동을 가리킨다. 이곳 관아는 한국민속촌에 그대로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용인현 관아. 용인민속촌에 보존되어 있다.
이때 모인 근왕군은 충청감사 윤선각, 영남감사 김수, 호남감사 이광이 이끈 8만 명이나 된다. 피난민까지 합쳐 대략 13만 명이나 되다 보니 제법 볼만했다. 선조 이균도 근왕군이 일본군을 물리치리라고 믿을 정도였다.
하지만 군사가 거의 그대로 보존된 8만 명의 호남군이 맹주가 되고, 이미 피투성이가 된 영남군은 수가 적어 호남군에 배속되고, 충청군 역시 왜군과 싸우다 패해 1만 5천 명이 참전했다. 이러한 근왕군은 용인현이 있던 마북동 남쪽 10리 지경에 진을 치고, 또 서쪽 수지의 광교산에 나누어 진을 이루면서 대대적인 공격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전라감사 이광은 군세가 가장 크다며 스스로 지휘권을 쥐고 흔들었는데, 불행하게도 그에게는 전술전략이 없었다. 그는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정예 병력 1600명에게 그만 패하고 말았다.
이후 이광은 조정으로 잡혀가 죽도로 맞고, 전쟁이 끝나도록 유배형을 받았다. 하지만 이광이 없었더라면 이순신도 없으니, 그의 공은 녹둔도에서 백의종군된 이순신을 전라도 조방장으로 발탁시킨 것으로, 이를 계기로 이순신은 수군절도사까지 되었다.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비록 근왕군이 패전하기는 했으나 그만큼 용인은 지리적으로 서울을 수북하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그 다음 세번째로 용인에서 치러진 유명한 전투로 육이오전쟁 때 터키군이 치른 김량장리 전투가 있다.
1951년 1월 25일, 북으로 쫓겨났던 북한인민군이 중공군의 도움으로 재차 서울을 빼앗은 뒤 용인까지 내려왔다.
이때 미군 25사단과 함께 싸우던 터키여단은 미군의 선더볼트 작전에 따라 26일, 용인 김량장리로 진격해 들어왔다.
여단장 타흐신 야즈즈 준장은 터키여단을 몰아 중공군이 버티고 있던 151고지(보라산. 지금의 상갈동, 민속촌 남쪽 현대모닝사이드 아파트 뒷산)를 향해 총공격을 감행했다. 이 날 중공군 474명을 사살했다. 이 전투는 마침 종군 중이던 API 기자가 생생하게 보도하면서 세계에 알려졌다.
"알라는 위대하다"를 외치며 중공군과 싸운 터키군. 이미지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이처럼 용인시는 매우 중요한 군사도시로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용인은 한양성을 떠받치는 지형으로서 지리적 가치가 매우 뛰어난데, 이런 가치 덕분에 경부고속도로가 관통하면서 오늘날 110만의 특례시로 성장하고, 나아가 세계적인 IT 도시로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앞으로 3번의 전투를 따로따로 설명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