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뫼마을에 다녀왔다
오늘 당진시 면천군에 있는 솔뫼마을에 다녀왔다.
올해는,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탄생 200주년이다.
그런데도 용인시는 잠잠하길래 혹시나 해 가보니, 당진시는 총력을 모아 이 행사를 펼치고, 거리마다 곳곳마다 현수막이 나부낀다.
그런데 아는가.
사실 김대건은 용인 사람이다.
증거로만 본다면 그는 확실히 용인 처인구 이동면 묵리 한덕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아명은 재복이다.
또 그의 아버지는 천주교 공소가 있는 양지읍 은이마을로 이사한 뒤 신도회장을 맡는다. 한덕골에서 은이는 산너머다.
재복이 열다섯 살 나던 해, 거기서 신부 유학생으로 뽑혀 마카오에 가고, 그는 신부 서품 받기 전에 용인으로 돌아오고, 다시 나갔다가 나중에 신부가 돼서 또 용인으로 돌아와 천주교를 전한다.
신부 수업 중에 아버지는 붙잡혀 참수형을 받는다.
김대건은 우리나라 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분이다.
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슬픔이 강물처럼 흐르던 조선 후기에 하느님의 복음으로 백성을 살리려던 그 정신을 높이 산다. 이는 전세계 천주교 역사상 결코 밀리지 않는 위대한 사건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원삼면 고초골에 살던 교우 이민식이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캐내 몰래 모셔다 산너머 미리내에 모신 것도 큰 사건이다.
김대건 안드레아가 묵리 한덕골에서 양지 은이로, 원삼 고초골로, 이리저리 복음의 옹기지게를 지고 거닐었을 그 길, 나도 걸었다. 검은 구름이 휘몰아치던 야만의 조선후기를 살아낸 그의 삶을 기리지 않을 수 없다.
'옹기지게 지고 복음 전하러 다니던 어린 아이 김재복'을 조각작품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아직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조각의 조(彫)는 했는데 이 조가 아직 완성되지 않아 각(刻)을 못한 것이다.
* 소나무 언덕이 솔뫼, 김대건 아버지 생가 마당에 앉아 있는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이 분은 김대건이 용인 사람이라는 걸 모르고 굳이 먼먼 당진까지 내려가셨다. 단언컨대 김대건은 저 집을 모를 것이다. 용인시는 홍보전에서 졌다. 용인시 공무원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것같다. 하기사 고려백자를 아나, 처인성 김윤후 장군을 아나, 난데없이 사주당 태교신기라는 걸 금과옥조로 삼아 그 책 따라 태교하자고 난리치다 지금은 신기루처럼 날아가버린 기록만 있다. 그래놓고 문화도시 운운하고, 이건희미술관 유치한답시고 관변단체 몰아 현수막쇼한다.
* 난 용인에 31년째 살고, 내 딸은 용인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사는 인연으로 어떻게라도 역사문화의 옷을 한 벌이라도 입혀주고 싶어 자주 거론하는데, 정말이지 용인 정치인들은 귀가 잘 안들리는 건지 글을 읽지 못하는 건지 도무지 씨가 안먹힌다(씨 안먹히면 베를 짤 수가 없다.) 세상에, 김대건마저 외지인이라며 쳐다볼 생각을 안하네. 하지만 김대건 아버지가 외지인이지 김대건은 용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