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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사람들/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

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

* 이 책은 내가 대학교 3학년이던 1980년, 광주항쟁이 일어난 직후 휴교령이 떨어졌을 때 오갈 데가 없어 집에 앉아 쓴 것이다.

<선관책(禪關策進)>을 보다가 발심하여 쓴 책이다.

당시 선배가 고료를 준다고 하여 월간지인 <법륜>에 연재하기도 했다.

1982년에 경서원에서 초간본이 나오고 이후 여러 번 중간되었다.

몇년 전에는 경기신문에서 초록을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 절판 중이다. 

좀 더 연구한 뒤 손질하여 출간할 참이다.


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

- 스승께 바치는 깨달음의 노래 오도송,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해탈의 노래 임종게

  

차례

 

 

1. 샛별 보고 깨달은 맨발의 구도자 고타마 싯다르타(BC 623-544)

2. 염화시중의 미소 마하 가섭(BC 600년경)

3. 티벳의 마술사 밀라레빠(서기1042-1135)

4. 제자를 기다리며 칠 년 면벽한 인도의 마지막 조사 보리 달마(?-528)

5. 스승에게 팔을 잘라 바친 혜가(慧可)(487-593)

 

6. 제자들이 보는 데서 선 채로 죽은 승찬(僧璨)(?-606)

7. 자연을 읽으라고 가르친 도신(道信)(580~651)

8. 중국 선종의 마지막 꽃잎 홍인(弘忍)(602∼675)

9. 부처의 법맥(法脈)을 마지막으로 받은 혜능(慧能)(638~713.8)

10. 혜능의 ‘마음’을 얻은 남악 회양(南嶽懷讓)(677~744)

 

11.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까 마조 도일(馬祖道一)(709~788)

12. 공동 묘지에서 참선한 천황 도오(天皇道悟)(748 ~ 807)

13. 죽으면서 제자들에게 내놓은 화살 한 촉 대각(大覺)(?~?)

14. 스승을 문 호랑이 황벽 희운(黃檗希運)(?∼850)

15. 마음의 도장을 찍은 분주 무업(汾州無業)(780~821)

 

16. 목불(木佛)을 태워 사리나 얻어볼까 단하 천연(丹霞天然)(738~824)

17. 죽어서 검정 암소가 되겠다고 한 남전 보원(南泉普願)(748~834)

18. 달마를 힐난한 약산 유엄(藥山惟儼)(751 ~834)

19. 선사 가운데에서 가장 오래 산 조주 종심(趙州從諶)(778-897)

20. 누가 와도 주장자로 때려주는 덕산 선감(德山宣鑑)(780∼865)

 

21. 죽음으로 보여준 소리없는 삼매 신찬(神贊)(9세기)

22. 곡소리가 시끄럽다고 죽었다가 다시 깨어난 동산 양개(洞山良价)(807~869)

23.질문할 때마다 죽도록 얻어맞기만 한 임제 의현(臨濟義玄)(?∼866)

24. 말 대신 방울만 흔들어댄 보화(普化) (9세기)

25.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깨달은 협산 선회(浹山善會)(805 ~ 881)

 

26. 부처님이 사는 곳을 찾아간 앙산 혜적(仰山 慧寂)(803~887)

27. 자기 몸에 불을 붙여 스스로 화장한 경통(景通)(9세기)

28. 걸어가면서 죽는 시범을 보인 사람 지한(志閑)(9세기)

29. 설법 대신 평생 손가락만 세운 구지(俱胝)(?~?)

30. 부모도 죽이고 부처도 죽인 운거 도응(雲居道應)(835?~902)

 

31. 자기 시신을 산짐승 먹이로 내준 청활(淸豁)

32. 원숭이에게 유언장을 남긴 영은 할당(靈隱瞎堂)(?~1176)

33. 여자에 이끌려 환속 당한 부설(浮雪)(647~?)

34. 소 치는 스님 목우자(牧牛子) 보조 지눌(普照知訥) (1158∼1210)

35. 화두 백과사전 선문염송을 편찬한 진각 혜심(眞覺慧諶)(1178~1234)

 

36. 36. 선종의 맥을 고려로 가져온 태고 보우(太古普愚)(1301~1382.12.24)

37. 고려의 마지막 왕사 나옹(懶翁)(1320~1376)

38. 옛다, 도 받아라 벽송 지엄(碧松智儼)(?~1534)

39. 법란(法亂)의 진흙 속에서 핀 연꽃 서산 휴정(西山休靜)(1520~1604)

40. 진흙소로 달빛을 쟁기질한 시인 소요 태능(逍遙太能)(1562∼1649)

 

41. 기적의 선사 진묵 일옥(眞黙一玉)(1562∼1633)

42. 기행(奇行)의 교과서 경허(鏡虛)(1849∼1912)

43.눈물을 흘리는 돌부처 만공(萬空)(1871∼1946)

44. 세상이 생기기 전,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중원 한암(重遠 漢岩)(1876~1951)

45. 천지현황(天地玄黃) 넉 자로 공부를 마친 혜봉(慧峰)(1881~1958)

 

46. 대나무 부딛치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동산 혜일(東山慧日)(1890∼1965)

47. 판사와 엿장수와 선사 효봉(曉峰)(1888-1966)

48. 한밤중에 대문 빗장을 만져보라 경봉(鏡峰)((1892∼1982)

49. 내 말에 속지 마라 성철(性徹)(1912~1993)

 

머리말

 

저자는 몇몇 선서(禪書)를 읽으면서 선승(禪僧)들의 전기에 관한 매우 중요한 공통점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선승의 일생이 갖가지 형태의 시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었다. 출가, 득도(得度), 수도(修道), 오도(悟道), 보임(保任), 교화(敎化), 전법(傳法), 임종(臨終)에 이르는 선승의 일생 자체가 기지와 직관으로 번뜩이는 수많은 시의 연속이었다. 즉 선승들에게 있어서 시란 생활 그 자체였다.

특히 깨달음의 환희와 경지를 시로 읊어 선지식(스승)의 인가를 얻기 위해 바치는 오도송(悟道頌)과, 죽음을 맞이하여 제자들과 나누는 최후 문답 가운데 마지막 유시(遺示)인 임종게(臨終偈)에서 더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죽음마저 두렵지 않을 커다란 감동이었다.

 

저자가 이러한 놀라운 발견과 함께 이 책을 쓰고자 한 첫번째 동기는 그동안 한국 문학이 논의되는 어떤 자리에서도 선시에 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하나의 연구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선승들이 대부분 개인 문집 형식으로 그들의 작품을 남기고 있는데, 그것이 시의 형태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작품의 양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하지만 오도송과 임종게를 중심으로 창작된 이들 선시가 한시와 유사한 것이었다면 저자의 이번 시도는 포기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저 유명한 불교 시문학의 첫 쟝르인 향가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고려의 진각(眞覺) 혜심(慧諶)이 편찬한 공안 시집 <선문염송>을 정전(定典)으로 하면서 시작되는 선시의 특출한 상징과 비유, 그윽한 적멸의 세계와 처절한 무상에의 추적은 도저히 한시의 개념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그동안 경외와 무지로 사장(死藏)되어 왔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고려 조선 양조(兩朝)의 수천 수가 넘는 선시를 한국문학의 한 장(場)으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이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두번째로 저자는 오도(悟道)라는 막연한 어휘로 온갖 나태와 모순을 숨겨 왔을 뿐 아니라 오늘도 숨기고 있다고 여겨지는 선종의 실상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한국 불교계에 자극을 줄 수 있으면 하는 것이 또한 한 동기였음을 밝혀두지 않을 수 없다.

곧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등의 고승 전기와 <선문염송> 등의 공안 시집을 중심으로 하여 인도로부터 우리나라의 근세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오도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는 선승 수십 여명이 실제로 어떤 의문을 가졌었으며,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수행하였으며, 무엇을 어떻게 깨달았는지를 남아 있는 자료들을 근거로 추적하고자 하였다. 대부분 이러한 내용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선가의 금기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깨달음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정말 알고 싶었다. 그래서 깨달았다고 알려진 분들의 세계를 살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능하면 그 깨달음이 어떻게 오도송으로 시화(詩化)되고 어떤 식으로 누구에게서 인가를 받았는지도 밝히고자 하였다. 아울러 가장 확실한 깨달음의 증거가 될 수 있는 죽음 앞에서의 자세와 문답, 그것을 맞이하는 감상시(感想時)인 임종게를 거기에 조응시켜 봄으로써 더욱 확실한 전거(典據)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 글은 주로 오도와 임종의 두 시점에서 깨달음을 조명했다. 오도란 선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목표이다.

내가 먼저 깨달아야만 남을 깨우칠 수 있기 때문에 상구보리(上求菩堤)는 하화중생(下化衆生)에 앞선다.

 

그리하여 수도승들은 이 글에서 서술되는 바와 같이 온갖 방법으로 진리를 깨우치려 노력하였다. 스승은 윽박지르고, 때리고, 물속에 처박기도 하는 등 잔인한 인도로 제자의 어두운 심안을 깨뜨리려 하였으며, 한편 제자는 제자대로 가르침을 얻기 위해 팔을 잘라 바치고, 벼랑에 서고, 뭇 짐승의 밥이 되기도 하였다. 결코 정적인 것이 아니라 활활 타오르는 힘찬 생명력이 선승들의 가슴 속 깊이 고동쳤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진리를 체험하고 나면 그 깨달음의 경지를 시로써 선지식에게 인가를 청하는 것이다. 스승은 물론 온갖 공안과 오묘한 선문답으로 제자를 시험한 뒤 막힘이 없을 때에만 인가를 하여 진정한 제자로 삼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한편의 오도송(또는 悟道談)이 이루어지기 위해 어떤 노력과 인내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그 전말을 상세히 추적하였다.

 

임종은 각자(覺者)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가장 적절한 형태의 설법이나 법문이 될 수 있다. 오도송이 깨달음을 읊은 영혼의 시라면 임종게는 온 몸으로 읊는 진리의 노래인 것이다. 즉 보임과 교화, 전법으로 익을 대로 익은 진리의 덩어리가 되었을 때 비로소 임종게를 읊는 것이다. 임종을 맞이하여도 스승 자신이나 제자는 그 누구도 슬퍼하지 않는다. 다만 더 가르치지 못하고, 더 배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할 뿐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제자를 깨우치려는 집념과 죽어가는 스승에게 간절히 진리를 묻는 구도 정신만이 있는 것이다. 이토록 더 이상 호흡이 나아갈 수 없을 때 스승은 자신의 체험과 깨달음을 제자들 앞에 모두 토해 높고 열반에 들게 되는데 그것이 임종게(또는 臨終記)이다.

이러한 과정을 모두 열람하고 정리한 뒤, 저자는 실로 1년간을 이 원고의 감동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뒤 저자는 이 소설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사막을 건너는 사람은 별을 사랑해야 한다(아드반)⌋를 썼고, 이어서 ⌈밀라레빠의 탑⌋을 썼다. 뿐만 아니라 뜻하지 않게 큰 인기를 얻은 ⌈소설 토정비결⌋도 실은 이 책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을 종합한 이미지로 새롭게 설정한 한 승려를 나레이터로 내세워 불교적 깨달음의 과정을 소설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밝혀두고자 하는 것은 이 글에 쓰면서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난해한 불교 어휘를 되도록 쉬운 말로 풀어서 쓰려고 노력하였다는 점이다. 품위 없음을 나무라지 않기를 청한다. 더구나 깨달음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어느 정도 분석적인 접근을 시도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실수가 있으리라는 것을 고백한다. 그런 부분이 있다면, 공안을 이해하고 싶은 저자의 욕심이 너무 지나쳤기 때문이라고 이해해 주고, 틀린 부분은 꾸짖어 주기 바란다.

또한 이 글에 수록된 내용 중엔 거짓이거나 와전된 부분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 주기 바란다. 전기가 엮어지는 동안 문중이나 계보의 우월 의식 때문에 장식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으리란 점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밝은 눈을 가진 독자라면 의심되는 곳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으로 보며 그런 사문(死文)을 활문(活文)으로 바꿔주기 바란다.

이 책을 엮으면서 참고한 자료들은 다음과 같다.

 

道源 <景德傳燈錄),

靈隱普濟 <五燈會元>,

李能和<朝鮮佛敎通史>

慧諶 <禪門拈頌 >,

東國大 <韓國佛敎全書>,

釋智賢 <禪詩>

金正休 <高僧評傳>,

東國譯經院 <한글대장경> 한국 고승 해당권

기타

 

1991년 4월

 

이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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