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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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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짐승 취급한 더러운 종자들 일제강점기 함경도 문천군 관노비의 모습. /한국학중앙연구원 사람에게 이름은 인격(人格)의 집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金春洙, 1922-2004)의 시구처럼 인간에게 이름은 자아의 거처이며 의식의 출발점이다. 소설 “투명 인간(Invisible Man)”으로 유명한 미국 흑인 작가 랄프 엘리슨(Ralph Ellison, 1913-1994)은 “타인이 선사한 이름을 인간은 자기 것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썼다. 누구인가 나에게 붙여준 이름은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내 존재의 기호(記號, sign)이다. 만약 우리를 가리키는 존재의 기호가 우리의 현재 이름이 아니라 “말똥(馬㖯)”이나 “암캐(雌介)”처럼 흔하디흔한 조선 노비의 이름이었다면, 우리..
짐승은 오직 짖기만 해도 의사소통이 된다 페북에 우리말 자랑하는 글이 자주 보이는데, 또 그만큼 아직도 한문에 목을 매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한문은 이미 우리 문자가 아니다. 갑오경장 때 훈민정음과 함께 쓰이기는 했지만 나중에 한글만 우리 문자로 지정되어 지금은 한자를 쓰면 60세 이하의 국민들이 알아듣지를 못한다. 이미 늙은 분들이야 어려서 한문을 공부했으니 자기는 읽고 쓰고 이해할 줄 안다지만 국민 99%가 모른다. 어떤 기자가 번역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오늘 네타냐후가 이렇게 말했다고 기사가 뜬다. "하마스를 부수고 파괴할 것" 나이 어린 기자들은 파괴란 말에 이미 부순다는 破가 들어가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그러니 말이 많아진다. 이 기자들이 한문을 공부하고, 그러면서 우리말에 대한 사랑이 깊다면 파괴란 말 대신 '부수고 무너뜨리다..
독립에 대해 독립에 대해 독립은 '홀로서기'란 말이다. 홀로 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문빠들과 명빠들과 개딸들이 모여 울부짖거나, 윤심 윤핵관 하면서 용산만 바라보는 건 홀로 서는 것이 아니다. 자유의지를 갖고 서는 것이 홀로서기다. 여기 이 사진을 보라. 독립문 앞에서 '대한독립만세' 외치며 일제로부터 독립하겠다고 외치는 멍청한 인간이 하나 보인다. 그러기로 말하면 독립문 세우라고 가장 큰 돈 낸 이는, 너희들이 원수로 아는 그 이완용이다. 이완용이야말로 독립은 가장 큰 목소리로 외친 분이다. 뭔 소리냐고? 등신아, 독립문은 중국으로부터 독립하자고 세운 문이란다. 사진 속 등신들은 중국으로부터 독립하자고 우리 조상들이 세운 곳에서 엉뚱하게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고, 중국하고는 옛날처럼 잘 지내자고 하는 것들이다. *..
"이순신은 영웅이 아니라 역적이었다" 머리말 “이순신은 영웅이 아니라 역적이었다”, 서인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는 국왕 이균에게 망궐례를 하지 않은 반역자이자 삼도수군을 몰고 한강으로 쳐들어와 조선 사직을 뒤엎으려는 역모자였다. 그의 조부 이백록 역시 역적 조광조를 따르던 패거리로 한때 삭탈관직된 바 있다. “파직해라! 잡아들여라! 죽여라!” 서인들은 소리 높여 외쳤다. 그래서 파직되고, 좌천되고, 고문받고, 두 번이나 삭탈관직되어 말단 병사로 백의종군했다. 하늘조차 그의 편이 아니었다. 녹둔도 전투로 여진족을 몰아냈건만 조정은 그를 삭탈관직하여 계급조차 없는 말단 병사로 강등시켰다. 기어이 여진족 추장 울지내를 잡고 여진병을 크게 무찔러 명예를 되찾지만 아버지 이정의 사망으로 3년 시묘살이에 들어간다. 그 사이 일본군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이순신의 편지 나라와 고을에 어지러운 일이 생기거나, 목숨이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같은 큰일이 닥치더라도 하늘을 부르거나 호국영령, 열사, 의사를 부르지 말라.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배 부르고, 자기 자식이 사탕 물고 깔깔거리면 온 세상이 다 편안한 줄 안다. 뿐이랴. 헐벗고 배를 곯는 이웃이 눈에 보이지 않고, 아파 울부짖는 사람과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날 부르지 말라. 나라고 왜 기치창검이 눈부신 수백 척의 적선 앞에서 무섭지 않았으랴. 속절없이 식은땀을 흘리고, 벌떡거리는 심장 박동에 숨쉬기도 벅찼다. 전선 겨우 열한 척 밖에 줄 수 없는 나라가 왜 내게 수백 척 적선과 싸워 이기기를 바라는가. 난들 왜 안무섭고, 내 목숨인들 왜 아깝지 않겠으며, 눈앞에서 부하들이 죽어나가는 걸 보고 어..
왕이 버린 역적 이순신 이 소설은, 너무나 익숙해서 막상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 이순신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다. 1. 왕이 말했다. “이순신은 용서할 수 없는 죄인이므로 죽어 마땅하다. 이순신이 가등청정의 머리를 베어온다 한들 그 죄를 어찌 갚을 수 있겠는가.” 이순신이 말했다. “해가 캄캄하게 보인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빨리 죽기만 기다릴 뿐이다.” 이 소설 《왕이 버린 역적 이순신》은 유치원생도 아는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는 참담하게 버려진 인간 이순신의 이야기다. 그는 버려진 인물이고, 임진왜란에 관한 가장 솔직한 기록인 《징비록(懲毖錄)》마저도 조선조 내내 ‘읽어서는 안 되는 금서’였다. 2022년 오늘의 이순신은 국민이 구름같이 모여드는 드넓은 광화문 광장을 차지한 채 태평로를 내려다보지만, 임진·정유..
짐승처럼 울부짖거나 악쓰며 소리지르지 않고 말을 바르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잡혀가거나 벌금을 무는 일은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의 가치는 확실히 달라진다. 즉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쓰는 말로 평가된다. 말 몇 마디만 듣거나, 글 몇 줄만 봐도 그 사람의 인생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다. 한자 쓰다, 몽골어 쓰다, 일본어 쓰다, 지금은 영어까지(그나마 일본식 영어로 위드코로나 어쩌는) 마구잡이로 쓰는 한국에서 우리말 공부를 무겁게 여길 이가 적다는 것도 안다. 언어는 인류의 문명화를 가늠하는 가장 큰 잣대다. SNS가 널리 이용되면서 무식이 철철 넘치는 나라가 되었다. 예전에는 검정을 거친 사람만 글을 쓸 수 있고, 지면에 글을 올릴 수 있었는데 지금은 말을 알든 모르든 아무나 쓰고, 떠들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교열부의 철저한 검증을 거치던 ..
말이 어지러우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 12년 전에 초판을 내고, 2019년에 3판을 낸 우리나라 최초의 을 만든 이야기를 적었는데, 지금은 그 세 배 분량의 원고를 다듬고 있다. 내가, 말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밀리언셀러 작가이고, 또 최초의 3밀리언셀러 작가라고는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남몰래 한없이 부끄러워 하는 일이 있다. 내 소설들은 대부분 재판 중쇄 때마다 손질을 하여 부끄러운 걸 조금씩 지워나가는데, 지금 봐도 아직 멀었다. 문장은 그만두고, 특히 단어를 잘못 쓴 경우가 많다. 어떻게 소설가란 사람이, 책을 150권이나 쓴 사람이 아직도 우리말을 잘 몰라 헤맨단 말인가. 우리말은 너무나 훌륭해서 문장이 다소 잘못 돼도, 앞뒤가 뒤섞여도 단어만 정확히 쓰면 대부분 무리없이 소통된다. 하지만 단어를 잘못 쓰면 그건 약이 없다. 나는 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