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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힘/디지털 史草(사초)

<임을 위한 행진곡>, 언제 들어도 눈물 나는 내 청춘의 노래

* 2013년 5월 18일에 다른 카페에 쓴 글을 옮겨옴


<임을 위한 행진곡>, 언제 들어도 눈물 나는 내 청춘의 노래

- 광주에서 국군의 총탄을 맞고 떠난 내 친구를 다시 생각하며

 

오늘은 또다시 5.18이다.

내가 겪은 그 끔찍한 박정희 독재, 전두환 독재 얘기는 더 거론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나이 먹어가는대로, 내 젊은 얼굴이 잔주름으로 묻혀가듯이 그렇게 묻어버리고 싶다.

다만 광주항쟁 이후 즐겨 부르던, 아니 눈물 훔치며 부르던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 원본이 발견되었다 하여 몇 가지 소회를 적어본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에 백기완 씨가 지은 <묏비나리>에서 나온 노래다.

<묏비나리>는 꽤 긴 시다. 이 중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나중에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가 된 부분이니 유념하여 보기 바란다.

 

묏 비나리

-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

 

백기완 시집 <젊은 날> 중에서

 

맨 첫발

딱 한발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목숨을 아니 걸면 천하없는 춤꾼이라고 해도

중심이 안 잡히나니

그 한발띠기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라

 

아니 그 한발띠기로 언땅을 들어올리고

또 한발띠기로 맨바닥을 들어올려

저 살인마의 틀거리를 몽창 들어 엎어라

 

들었다간 엎고 또 들었다간 또 엎고

신바람이 미치게 몰아쳐 오면

젊은 춤꾼이여

자네의 발끝으로 자네 한 몸만

맴돌라함이 아닐세 그려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이 썩어 문드러진 하늘과 땅을 벅, 벅,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리시라

 

돌고 돌다 오라가 감겨오면

한사위로 제끼고

돌고 돌다 죽엄의 살이 맺혀오면

또 한 사위로 제끼다 쓰러진들

네가 묻힐 한 줌의 땅이 어디 있으랴

꽃상여가 어디 있고

마주재비도 못타보고 썩은 멍석에 말려

산고랑 아무데나 내다 버려질지니

 

그렇다고 해서 결코 두려워하지 말거라

팔다리는 들개가 뜯어가고

배알은 여우가 뜯어가고

나머지 살점은 말똥가리가 뜯어가고

뎅그렁, 원한만 남는 해골바가지

 

그리되면 띠루띠루 구성진 달구질소리도

자네를 떠난다네

눈보다만 거세게 세상의 사기꾼

협잡의 명수 정치꾼들은 죄 자네를 떠난다네

 

다만 새벽녘 깡추위에 견디다 못한

참나무 얼어 터지는 소리

쩡,쩡, 그대 등때기 가른 소리 있을지니

 

그 소리는 천상

죽은 자에게도 다시 치는

주인놈의 모진 매질소리라

 

천추에 맺힌 원한이여

그것은 자네의 마지막 한의 언저리마저

죽이려는 가진 자들의 모진 채쭉소리라

차라리 그 소리 장단에 꿈틀대며 일어나시라

자네 한사람의 힘으로만 일어나라는 게 아닐세 그려

얼은 땅, 돌뿌리를 움켜쥐고 꿈틀대다

끝내 놈들의 채쭉을 나꿔채

그 힘으로 어영차 일어나야 한다네

 

치켜뜬 눈매엔 군바리가 꼬꾸라지고

힘껏 쥔 아귀엔 코배기들이 으스러지고

썽난 뿔은 벌겋게 방망이로 달아올라

그렇지

사뭇 시뻘건 그놈으로 달아올라

 

벗이여

민중의 배짱에 불을 질러라

 

꽹쇠는 갈라쳐 판을 열고

장고는 몰아쳐 떼를 부르고

징은 후려쳐 길을 내고

북은 쌔려쳐 저 분단의 벽

제국의 불야성, 왕창 쓸어안고 무너져라

 

무너져 피에 젖은 대지 위엔

먼저 간 투사들의 분에 겨운 사연들이

이슬처럼 맺히고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 들릴지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노래 소리 한번 드높지만

다시 폭풍은 몰아쳐

오라를 뿌리치면

다시 엉치를 짓모고 그걸로도 안되면

다시 손톱을 빼고 그걸로도 안되면

그곳까지 언 무를 쑤셔넣고 아.........

 

드 어처구니없는 악다구니가

대체 이 세상 어느 놈의 짓인줄 아나

 

바로 늑대라는 놈의 짓이지

사람 먹는 범 호랑이는 그래도

사람을 죽여서 잡아먹는데

사람을 산채로 키워서 신경과 경락까지 뜯어먹는 건

바로 이 세상 남은 마지막 짐승 가진자들의 짓이라

 

그 싸나운 발톱에 날개가 찢긴

매와 같은 춤꾼이여

 

이때

가파른 벼랑에서 붙들었던 풀포기는 놓아야 한다네

빌붙어 목숨에 연연했던 노예의 몸짓

허튼춤이지, 몸짓만 있고

춤이 없었던 몸부림이지

춤은 있으되 대가 없는 풀죽은 살풀이지

그 모든 헛된 꿈을 어르는 찬사

한갓된 신명의 허울은 여보게 아예 그대 몸에

한오라기도 챙기질 말아야 한다네

 

다만 저 거덜난 잿더미속

자네의 맨 밑두리엔

우주의 깊이보다 더 위대한 노여움

꺼질수 없는 사람의 목숨이 있을지니

 

바로 그 불꽃으로 하여 자기를 지피시라

그리하면 해진 버선 팅팅 부르튼 발끝에는

어느덧 민중의 넋이

유격병처럼 파고들어

뿌러졌던 허리춤에도 어느덧

민중의 피가 도둑처럼 기어들고

어깨짓은 버들가지 신바람이 일어

나간이 몸짓이지 그렇지 곧은 목지 몸짓

 

여보게, 거 왜 알지 않는가

춤꾼은 원래가

자기 장단을 타고난다는 눈짓 말일세

그렇지

싸우는 현장의 장단소리에 맞추어

 

벗이여, 알통이 벌떡이는

노동자의 팔뚝에 신부처럼 안기시라

 

바로 거기선 자기를 놓아야 한다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온몸이 한 줌의 땀방울이 되어

저 해방의 강물 속에 티도 없이 사라져야

한 춤꾼은 비로소 구비치는 자기 춤을 얻나니

 

벗이여

저 비록 이름없는 병사들이지만

그들과 함께 어깨를 쳐

거대한 도리깨처럼

저 가진자들의 거짓된 껍줄을 털어라

이세상 껍줄을 털면서 자기를 털고

빠듯이 익어가는 알맹이, 해방의 세상

그렇지 바로 그것을 빚어내야 한다네

 

승리의 세계지

그렇지, 지기는 누가 졌단 말인가

우리 쓰러졌어도 이기고 있는 민중의 아우성 젊은 춤꾼이여

오, 우리굿의 맨마루, 절정 인류최초의 맘판을 일으키시라

 

온몸으로 디리대는 자만이 맛보는

승리의 절정 맘판과의

짜릿한 교감의 주인공이여

 

저 폐허 위에 너무나 원통해

모두가 발을 구르는 저 폐허위에

희대를 학살자를 몰아치는

몸부림의 극치 아, 신바람 신바람을 일으키시라

 

이 썩어 문드러진 놈의 세상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벅,벅,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리다

마지막 심지까지 꼬꾸라진다 해도

언땅의 어영차 지고 일어서는

대지의 새싹 나네처럼

 

젊은 춤꾼이여

딱 한발띠기에 일생을 걸어라

 

이러한 <묏비나리>가 광주항쟁 때 죽은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그 이전 노동현장에서 죽은 박기순 두 남녀의 영혼 결혼식 주제가로 등장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란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는 다음과 같다. <묏비나리>와 거의 같은데 이를 황석영, 김종률 두 사람이 약간 손질하고, 김종률이 곡을 붙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이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등장한 것은 광주항쟁 이후지만 그 이전 내 청춘이 부르르 떨던 박정희 독재, 전두환 독재 시대를 경험한 세대에게는 인생의 주제가나 다름없이 여겨지게 되어 이후 민주화 현장에서도 자주 불려졌다.

 

난 이 노랫말을 끝까지 소리내어 읽어내지 못한다. 눈물이 흘러 도저히 읽을 수 없다.

내게도 먼저 간 동지가 있다 보니 갑자기 피가 끓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 노래는 가사보다 감흥이 덜한 편이다.

하긴 백기완 선생이 감옥에서 처절한 마음으로 지은 그 노랫말을 어찌 곡이 따르겠는가.

 

 


<내가 보고 들은 1980년 5월의 광주>


<죽기 전에 통일되어>


<육이오전쟁, 아버지 세대에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