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4월 14일, 택지개발 중이던 안동 정상동 기슭에서 오래된 묘지를 수습했다. 당시 412년 된 무덤인데, 시신의 가슴에 덮여 있던 한지가 고스란히 발굴되었다. 한글 편지 두 장이다.
412년만에 세상에 나온 이 편지는 무덤의 주인이 고성이씨 이응태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편지글을 써넣은 이는 바로 그의 부인이다. 원이란 아이가 있고, 임신 중이었다.
이응태는 1556년 명종 11년에 태어나 1586년에 죽었다. 31세에 죽으니 요절이다. 병사했다.
부인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삼줄기와 함께 엮어 신발을 만들고, 유복자가 태어나면 입히려던 아기옷까지 무덤에 넣어주었다.
몇년 뒤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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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 아버지
당신 언제나 나더러 우리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이 어린 것은 누구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이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가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어서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 이승에서는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힘이 듭니다.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드리는 거랍니다.
자세히 보고 내게 말해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뭐라고 말할 것 있다 하신 후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서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이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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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본 원문
원이 아바님께
병슐 뉴월 초하룻날 집에서
자내 샹해 날드려 닐오되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날하고 자식하며 뉘긔 걸하야 엇디하야 살라하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는고
자내 날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며
나는 자내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런고
매양 자내드려 내 닐오되 한데 누어 새기보소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엿비 녀겨 사랑호리
남도 우리 같은가 하야 자내드러 닐렀더니
엇디 그런 일을 생각지 아녀 나를 버리고 몬져 가시난고
자내 여히고 아무려 내 살 셰 업스니
수이 자내한테 가고져 하니 날 데려가소
자내 향해 마음을 차승(此乘)니 찾즐리 업스니
아마래 션운 뜻이 가이 업스니 이 내 안밖은 어데다가 두고
자식 데리고 자내를 그려 살려뇨 하노
이따 이 내 유무(遺墨) 보시고 내 꿈에 자셰 와 니르소
내 꿈에 이 보신 말 자세 듣고져 하야 이리 써녔네
자셰 보시고 날드려 니르소
자내 내 밴 자식 나거든 보고 사뢸 일하고 그리 가시지
밴 자식 놓거든 누를 아바 하라 하시논고
아무리 한들 내 안 같을까
이런 텬디(天地)같은 한(恨)이라 하늘아래 또 이실가
자내는 한갓 그리 가 겨실 뿐이거니와
아무려 한들 내 안 같이 셜울가
그지 그지 끝이 업서 다 못 써 대강만 적네
이 유무(遺墨) 자셰 보시고 내 꿈에 자셰히 뵈고 자셰 니르소
나는 다만 자내 보려 믿고있뇌 이따 몰래 뵈쇼셔
하 그지 그지 업서 이만 적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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