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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바우덕이>-성인판

바우덕이 님에게 보내는 작가의 편지


미안해요, 바우덕이 님.

기억하고 싶지 않을 옛이야기를 들춰내서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알고 싶었어요. 당신이 어떤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왜 사람들이 당신의 이름을 미친 듯이 부르며 환호했는지 궁금했어요.

천민이라고 적어서 미안해요. 안그러면 당신이 겪었을 그 고통을 누가 알아주겠어요? 고아라고 해서 미안해요. 안그러면 당신이 그 거칠고 혹독한 남사당패에 왜 들어갔겠어요? 그렇지요? 남사당패에 딸을 팔아먹을 부모는 없는 거잖아요?

당신이 너무 외로워 보여 어머니도 그리고, 아버지도 그리고, 오라버니도 그려봤어요. 비록 양반가에서 소박맞은 어머니지만 정겹잖아요. 남사당패에서 달아난 불구 아버지지만 그래도 당신만 사랑하잖아요. 평생 딴 데서 따로 살았지만 그래도 오라버니는 오라버니잖아요. 미안해요. 더 행복하게 그려드리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요. 더 행복하게 그리고 싶어도, 뭐 제 인생이라고 더 행복하지도 못하길래 그냥 미친 듯이 써버렸어요. 용서해주세요.

 

마지막 이경화의 수발을 받아가며 하늘로 갈 때까지는 정말이지 저도 눈물이 나서 쓰다 쉬고 쓰다 쉬고 그랬어요. 참말로 엉엉 울었어요. 하지만 당신을 덜 아프게 하지는 못했어요. 아름답게 그려드리지도 못했어요. 더 아프게, 더 비참하게 그렸어요. 그래도 당신의 고통을 다 그려내지 못했을 거에요. 당신의 사랑마저 이루어지지 못하게, 잔인하게 그렸어요. 저 너무 못됐지요? 미안해요. 이경화의 사랑을 저도 알겠거든요. 그런 사랑이 얼마나 지고한 것인지 저는 잘 알거든요.

 

바우덕이 님, 당신을 알게 되어 정말 행복했어요. 처음에는 당신에 대해 아는 게 없어 고생했지만, 당신이 살던 청룡골에 자주 가서 흐르는 시냇물을 지켜보고, 당신도 보았을 산빛이며 산마루도 바라보았어요. 당신이 자주 들렀다는 청룡사에 가 하염없이 앉아 눈을 감아보기도 했어요. 당신이 지금 어느 세상에 계시든 난 당신을 알고 싶었어요. 당신에 관한 것이라면 하찮은 거라도 다 알고 싶었어요.

 

미안해요. 당신이 기억하는 사실대로 그려드리지 못해 미안해요. 능력이 부족했어요. 그래도 당신의 정신만은 제대로 그리고 싶었어요. 그럼 용서해 주실 수 있지요? 그리고 이젠 울지 마세요. 당신의 짧은 인생, 정말 멋졌어요. 그러니 모란꽃 만발한 극락에서 늘 행복하세요.

 

이재운 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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