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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인문학에 조국의 미래가 달렸다'를 읽고

페이스북> 30년 전, 아는 이가 영어 배우겠다고 미국 흑인을 개인강사로 부르는 걸 보고 깜짝 놀라 그러지 말라고 권한 바 있다.

지금이야 흑인과 백인의 언어 능력에 별 차이가 없지만, 그때만 해도 백인과 흑인의 영어는 서로 달랐다. 

(설명이 더 필요할 수 있겠지만 넘어간다)


김형석 선생의 말씀은 짖거나 지저귀는 정도로는 우리말, 우리글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맥스(시츄 견)는 배 고파도, 목 말라도 짖기만 하면 주인인 나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이처럼 인류가 대충 쓰다 버려지거나 사라진 언어는 수천 가지, 혹은 수만 가지가 된다.

인문 지식이나 사상이나 철학이 없는 언어는 닭이 울고, 새가 지저귀고, 늑대가 짖는 것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인문학이 담기고 인류의 지혜가 녹아들면 그 언어는 전혀 다른 생명 가치를 지닌다.


SNS는 동물농장 같은 공간이다. 농장 주인도 글 쓰고, 그 농장의 가축들도 글을 쓴다.

자기가 쓴 글을 보고 누군가는 그의 지적 수준이나 건강 상태, 뇌 질환, 삶의 질 같은 수많은 정보를 훤히 알아낸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다.


관상 보고 선거에 당선된다, 말년운이 좋다, 이런 말 같잖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에 유산균이 모자라 세로토닌이 부족하다, 임신 8주가 되었구나, 임파선이 막혀 독소가 잘 배출되지 않는다, 뇌에 아밀로이드 단백질이나 타우 단백질이 많이 쌓였구나, 소뇌에 혈류량이 줄었구나, 햇빛을 안보시는군요, 이런 정보를 술술 말하는 의사도 있다. 


이 글, 짧다 보니 소통이 될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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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께서 우리말과 한글의 미래에 대해 걱정이 많으신 것같다.

물론 이대로 두면 없어질 것이 분명하다.

우리말은, 지난 2천년간 한문이 홍수처럼 밀어닥쳤지만 끝내 살아남았다. 행운이 있었다.


중국은 우리나라에 문자를 제공했을 뿐 말을 전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글은 한문, 말은 우리말로 생활이 가능했다.

첫 위기는 몽골의 지배를 받을 때였는데, 다행스럽게 원-고려 연합정부 형식이 되다보니 언어 식민 지배가 그리 강하지 않았다. 

두번째 위기는 명나라 이후다. 탈레반같은 주자학자들이 유전자까지 중국에 갖다 붙이려고 악을 썼다. 친일파하던 짓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중국을 머릿속에 넣고 살았지만, 다행이 그 중국은 사라져버린 하상주 시절의 고대 국가이고, 현실의 명나라나 청나라가 아니었다. 그래서 역시 말을 지킬 수 있었다.


진짜 큰 위기는 일제 강점기에 왔다. 유학을 추종하기만 한 우리 탈레반들은 옥편 하나 만들 줄 몰랐다. 한문으로 한자 풀이한 옥편, 강의자전이나 끼고 다닐 뿐 그걸 번역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애들이라도 배우라고 남긴 최세진의 훈몽자회가 그 흔적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일제총독부가 일본어사전을 들여와 그대로 번역하여 조선어사전이라고 펴내자, 친일 지식인들은 아무 그 사전을 끼고 살았다. 그때부터 사실상 일본어사전으로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법을 만들고, 편지를 썼다. 일본어를 쓰되 발음만 우리 식으로 하고, 내용은 일본에서 쓰는 그대로였다. 36년간 그러고나니 우리말과 한글이 위태로워졌다.


하지만 우리말과 한글을 위태롭게 한 것은, 일제보다 미군이 한 수 앞섰다.

기독교를 내세운 미군은 영어쓰기를 강요하여 여기저기서 영어가 독버섯처럼 퍼졌다. 

나는 지금까지 우리말에 스며든 일본어를 벗기기 위해 노력 중인데, 영어는 어떻게 할 힘이 없다. 

일본어 독기를 빼는데 100년이 걸린다면 영어 독기는 아마 수백 년 그 독을 뿜을 것이고, 미국이 망하지 않고, 또한 한국인이 이처럼 책 한 권 읽지 않는 인구가 절반 이상인 이 상황이 지속되는 한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들쥐들이 이리 몰려가고 저리 몰려가는 중에도, 조선 초기의 인물 이도는 문자가 없던 백성을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어냈다.

그때 만일 훈민정음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우리는 지금 한문이나 일본어나 영어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이도가 훈민정음을 만들어 왕의 권능으로 보급하려 애썼지만 지식인, 정치인들이 막아 그러지 못한 것을 스코틀랜드 목사 존 로스와 매킨타이어가 기어이 민중 문자로 보급시켰다.

이 두 가지 기적이 오늘날 영어 독점 세계에서 우리말과 한글을 지켜주고 있다.


우리말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이 정도 언어는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나 갖고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것은 바로 훈민정음이다. 이걸 주시경이 한글이라고 잘못 번역하는 바람에 오늘날 한글이 글인 줄 아는 바보들이 굉장히 많아졌지만, 어차피 책 한 권 안읽는 사람들이 글이 뭔지 글자가 뭔지 알 까닭이 없을 테니 그렇다 말할 뿐 한숨이나 쉴 수밖에 없다.

우리말을 적는 문자 한글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렇게 잘 살지도 못하고, 아마 옛날에 중국어나 일본어나 영어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한글은 겨우 130여년 전 갑오개혁 이후에 공식적으로 쓰기 시작한 그릇일 뿐이다. 한글 역사가 겨우 130년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결국 한글은 빈 그릇이다.

사전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일본어 사전 베낀 게 거의 전부다.

그러다 보니 우리말 뜻도 모르고, 한자어 뜻도 모른다.

내가 24년째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중이라고 하니, 누군가 나더러 뭐하러 그런 작업을 하느냐고 물었다. 사전 없어도 우리가 대화하는 데 무슨 지장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말했다. 난 미국 중류 이상의 사람들이 쓰는 영어를 배우지 흑인(인종 비하가 아니라 흑인들이 해방된 지 얼마 안되어 이들이 밑바닥 생활에 머물렀던 시절을 가리킴) 영어는 배우지 않는다고.

SNS에 맞춤법 모르고, 문장 구조 모르고, 단어조차 모르고, 논리가 뭔지 모르는 채 마구 써갈기는 사람들이 더러 보이는데, '흑인영어'가 그런 식이다. 


언어는 지식인들이 쓸 때 빛이 난다.

시장바닥에서 아무리  써봐야, 깡패와 도둑과 사기꾼이 저희들끼리 뭐라고 소통하든 언어는 인문 지식을 가진 사람일 쓸 때 문자로서, 언어로서 살아남지 인문 지식을 담지 못하면 저절로 사라진다. 그런 언어 수천 가지가 사라졌다. 아쉬울 것도 없다. 인문 정신이 담기지 않은 언어는 새가 지저귀고,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와 거의 같은 것이다. 


우리말 즉 한국어와 한글이 사라지지 않으려면 이 말과 글로 좋은 시와 소설을 써야 하고, 이 말과 글로 과학 논문, 의학 논문이 나와야 하고, 이 말과 글을 공무원이나 판사가 제대로 써야 한다. 그런데 판사와 공무원은 아직도 일본어로 글을 쓰고, 학자들 역시 대부분 일본어 아니면 영어로 논문을 쓴다. 시인이랍시고 끄적거린 걸 인문학적으로 걸러지지 않은 잡스런 짜집기 혹은 넋두리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걸 보면 앞이 까마득하다. 동물이 짖거나 지저귀는 정도를 갖고 인간의 언어를 쓴다고 믿으면 안된다.


김형석 선생의 말씀을 새기며 지친 마음을 달랜다. 


<동아일보 / 김형석 칼럼]인문학에 조국의 미래가 달렸다>


과거에는 존재하던 수천 종의 언어, 지금은 사라지거나 강대국에 흡수
문화권의 힘은 결국 인문학이 결정 
아시아선 中-日 언어문화 영향력 커져
훗날 한글과 한국의 운명은 무엇일까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사상을 갖고 산다. 그 생각과 사상을 유지하고 전달하는 도구가 ‘말’이다. 언어가 없는 삶은 불가능하다. 동물들은 감정을 표출하는 소리는 있으나 개념을 갖춘 언어는 없다.

인간의 삶이 다양한 것같이 말의 종류도 수없이 많다.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수천 종이 있었다고 학자들은 추산한다. 그런데 그 언어가 점차 사라져 간다. 씨족이나 부족의 언어가 민족의 언어로 통합되기도 하고, 인도나 중국 같은 방대한 사회의 여러 언어가 하나로 통합되기도 했다. 문화권이 하나가 되면서는 언어도 동일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교통의 발달과 매스미디어의 역할도 큰 몫을 차지했다. 

이런 변화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 두드러진 현상은, 문자를 갖추지 못한 말은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대만의 원주민들도 자기들의 언어가 있었다. 그러나 문자가 없기 때문에 말은 점차 사라져 간다. 얼마 지나면 중국 문화권으로 흡수될 것이다. 지금도 우리 주변의 여러 민족이 문자가 없기 때문에 언어를 잃어가고 있다. 한글(문자)이 없었다면 우리가 그런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중남미의 여러 국가 원주민들이 유럽언어 문화권으로 흡수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몇 세기가 지나면 문자를 동반하지 못한 언어는 소멸될 것이다. 

또 문자와 언어가 있더라도 그 민족과 국가의 운명에 따라 언어의 세력도 약화될 수 있다. 네덜란드의 학자가 연세대에 온 적이 있었다. 그 교수는 저서를 남길 때는 영어를 사용했다. 모국어로 출판하면 독자를 넓혀갈 수가 없고 번역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문화 수준이 가장 높은 국가다. 그러나 스위스의 언어와 문자가 없기 때문에 독일어 문화권이나 프랑스어 문화권에 속한다. 최근에는 영어 문화권으로 옮겨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