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이자 우리말 사전 2019.3.21-52회 / 호남湖南은 어디를 가리키는 말일까?
-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 / 이재운 / 책이있는마을 / 304쪽 / 신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잡학사전 / 이재운 / 노마드 / 552쪽 / 24년 28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어원사전 / 이재운 / 노마드 / 552쪽 / 23년 28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 한자어 사전 / 이재운 / 노마드 / 편집디자인 중 / 10년 5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숙어 사전 / 이재운 / 노마드 / 증보 중
호남湖南은 어디를 가리키는 말일까?
이순신 제독이 쓴 편지 중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竊想湖南國家之保障 若無湖南是無國家
是以昨日進陣于閑山島以爲遮海路之計
전라도 출신 정치인마다 이 글귀를 가슴에 담고 있으며, 전라도 땅 곳곳에 若無湖南是無國家 8자를 새긴 비석이 많다.
이순신 제독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서 이 말씀을 새겨도 늦지 않다.
두 가지 관점에서 적는다.
1. 이순신은 8도 중에서 호남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것인가?
2. '호남'은 구체적으로 어느 땅을 가리키나?
1. 이순신은 8도 중에서 호남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것인가?
이 글귀가 들어간 편지를 쓴 날은 1593년 7월 16일이다.
그와 친하게 지내는 영암의 현덕승(친척이라고도 함)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 글귀가 들어간 것이다.
편지를 보낸 1593년 7월 16일은, 임진왜란 때로 이미 경상좌우도가 적에게 함락되고, 충청북도가 함락되고, 서울이 함락되고, 황해도, 평안도 일부, 강원도, 함경도가 함락된 시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라좌수영에서 가까운 호남의 관문 진주성이 막 함락되었다는 것이다. 진주 다음은 바로 호남이고, 전라좌수영 관할 지역이다.
7월 2일에 진주성이 위태롭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5일에는 진주성이 함락되었다는 급보가 들어오자 이순신은 당황스러웠는지 '거짓말'이라고 일기에 적었다. 이튿날에는 관군이 광양의 관청과 창고에 불을 지르고 피난했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마지막 남은 호남이 무너질 위기인 것이다. 7월 9일에는 광양과 순천이 무너졌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10일에는 진주성 함락이 헛소식이라는 잘못된 보고가 들어오자 이순신은 그러면 그렇지 그럴 리가 없다고 일기에 적는다. 하지만 진주성 패전 소식은 곧 전사 장수 명단이 도착함으로써 사실로 확인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순신은 7월에 전라좌수영의 진을 한산도 두을포로 전진 배치했다.
남쪽에서 쳐들어온 왜적과 맞서는 유일한 진지는 호남 뿐이다.
8도 중에서 남은 곳은 오직 전라좌우도와 충청우도 뿐, 그것도 경상우도에 가까운 호남은 왜적의 공격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그의 심정을 편지에 담아 보낸 것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여 편지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 ... 호남은 이제 조선의 마지막 보장(保障)입니다.
만약 호남마저 왜적에게 무너진다면 곧 조선이라는 나라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나는 어제 우리 전라좌수영의 진을 한산도로 옮겨 왜군이 쳐들어올 바닷길을 미리 막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 보장(保障) ; 보는 지키다, 장은 가로막힌 높은 언덕. 즉 한산도 두을포 수군 진지는 조선을 보장(왜적이 쳐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최후의 언덕) 최전선이란 뜻이다. 흔히 '보장한다' 형태로 많이 쓰인다. 오늘날에는 보험회사에서 가장 많이 쓰는 어휘다.
즉 이순신의 이 말은 호남이 그토록 중요하다는 일반적인 뜻이 아니라 적에게 함락되지 않은 땅이 호남 밖에 없으니 좌수영 진지를 전진 배치하여 적을 미리 막겠다는 각오가 담긴 것이다. '마지막 보장'이라는 말이 바로 그 뜻이다.
2. '호남'은 구체적으로 어느 땅을 가리키나?
중요한 문제가 한 가지 더 있다.
여기서 이순신이 말한 호남이란 전라좌도, 전라우도, 충청우도를 가리킨다.
당시 충청좌도인 지금의 충북은 함락됐지만 지금의 충남인 충청우도는 온전히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순신의 이 호남이라는 말은 금강 이남을 뜻하는 호남이다. 즉 전라좌우도와 충청우도까지 포함한다. 이 당시 이 호남이 무너지면 조선이란 나라는 없는 것이다.
호남의 전략 가치는 임진왜란 때 이미 충분히 증명되었다.
선조 이균의 행조가 의주로 피난 가 있는 중에도 호남은 행정 업무, 군사 업무가 순조롭게 이뤄져 평양성 이북에 있던 조선군에 대한 군량 조달, 무기 조달을 무리없이 해냈다. 그 힘으로 평양성을 탈환하고, 명군에 식량보급을 해낼 수 있었다.
행주산성 전투에서도 최후에는 전라우수군과 충청수군이 군수보급에 성공하여 승리를 결정지었다. 전라도 관군을 이끌고 온 권율이 이토록 잘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군수보급을 호남에서 수시로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충청감사 허욱성과 충청수사 정걸이 참여하여 역시 충청수군의 군수보급을 받고 있었다. 충청수군의 관할 구역은 충청우도 즉 오늘의 충남이다.
- 각 수군의 관할 구역 지도. 전라좌수영 소속인 광양 순천 지역이 함락됐다는 보고가 들어온 직후 이순신은 경상우수영 소속의 경남 통영 한산도 두을포로 진을 더 전진시켜 설치했다. 이 그림은 해변 가 군현은 육군이 아닌 수군 담당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전라 좌도 중 전라남도 지역이 이순신 관할 지역이다.
-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경상우수영(수사 원균) 관할 지역인 한산도 두을포로 전진배치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얼마 뒤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지만 이땐 전라좌수사였다. 두을포는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로 나중에 이곳에 제승당이 설치된다.
그러므로 이순신의 若無湖南是無國家란 표현은 '호남이 무너지면 조선도 무너진다'로 해석해야 가장 바른 뜻이 된다.
사실 이러한 호남의 전략 가치를 뒤늦게 파악한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은 1597년 정유재란 때는 호남부터 칠 것을 명령하여 초토화 작전을 벌였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전라좌도와 전라우도가 무너지고, 충청우도까지 무너져 이순신의 고향인 아산까지 왜적에게 피해를 입었다.
내가 만든 <~우리말 잡학사전(원제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에 호남은 이렇게 나온다.
호남(湖南)
>본 뜻 : 전라남북도를 통틀어 가리키는 명칭으로 호남 지방이란 말을 즐겨 쓴다. 말 그대로 보자면 호남(湖南)은 호(湖) 남쪽이란 뜻으로 금강 이남 지역을 가리킨다. 호남은 원래 공주·부여 등 충청도 일부와 전라도 지방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며,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금강 이남 사람을 등용하지 말라'고 한 그 경계와 같다. 참고로 호서(湖西)는 충청도를, 기호(畿湖)는 경기도와 황해도 남부 일부, 그리고 충남의 금강 이북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뀐 뜻 : 오늘날에 이르러 호남은 행정구역상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따라서 금강의 남쪽 지역인 공주, 부여 등 충남 일부 지역은 호남에 포함하지 않는다.
호남의 호(湖)를 제천 의림지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채택하지 않는다.
- 湖江 즉 금강 지도. 금강 남쪽은 호남, 금강 서쪽은 호서다.
- 김정호의 여지전도에 보이는 호남. 확실히 금강 이남이다.
- 조선전도의 호남. 역시 금강 이남이다.
즉 호남이란 충청도 금강 이남을 가리키는 어휘다. 지금은 전라남북도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금강 이남을 호남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전라우도, 전라좌도, 충청우도를 가리킨다. 한국학대사전에는 충청남도 남부와 전라남북도를 포함하는 지방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한편 충청우도 중에서 금강 북쪽 지역은 특별히 호서라고 불렀다.
물론 아픈 구석이지만 호남이란 명칭은 중국에서 따온 것이다. 중국 장강의 지류로 형성된 동정호의 남쪽을 호남이라고 한 것을 비유하여 조선에서도 호남이란 비공식 명칭을 갖다 쓴 것뿐이다. 그러자니 장강에 비견되는 금강을 찾고, 그러면서 금강을 호강이라고 부르고, 우리도 중국 같은 호남이 있다, 이런 허세가 깃들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순신의 이 편지 내용을 근거로 전라남북도 사람들이 고향을 애틋이 여기는 건 좋지만, 그 편지에 담긴 본뜻은 알고 있으면 좋겠다. 역사적으로 호남을 거론할 때는 충청우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 태이자 이재운 우리말 사전 시리즈 이미지
50회 / 사찰의 전(殿), 각(閣)과 궁(宮)은 어떻게 다를까?
49회 / 사찰(寺刹), 사원(寺院), 정사(精舍), 암자(庵子)는 어떻게 다를까?
46회 / 구정이란 말 쓰지 말라
45회 / 우리말의 '과거' 표현법은 무엇인가?
44회 / 나전칠기란 무엇인가?
43회 / 왜 한나라를 한국(漢國), 원나라를 원국(元國)이라고 안쓸까?
42회 / 제사도 안지내면서 형은 무슨 형?
41회 / 김 여사라고 부르지 말라
40회 / 1404년 1월 11일부터 점심을 먹었다
39회 / 세계라는 말에 이렇게 깊은 뜻이?
38회 / 상(商)나라는 어쩌다 장사하는 상(商)이 됐을까?
37회 / 수덕사 불상 뱃속에서 뭐가 나왔다고?
36회 / 대충대충 설렁설렁 얼렁뚱땅, 이래 가지고는 안된다
35회 / 점심 먹으면서 정말 점심(點心)은 하는 거야?
34회 / 불고기가 일본말이라고?
33회 / 메리야스가 양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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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회 / 나라는 1945년 8월 15일에 해방되지만 법률은 1961년 1월 1일에 해방되었다
30회 / 가수 윤복희는 정말 미니스커트를 입고 비행기 트랩을 내려왔을까?
29회 / 500년 전 한자 읽는 방법을 알려준 최세진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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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회 / 천출 김정은? 김씨 일가가 천민 출신인가?
25회 / 茶를 다로 읽을까, 차로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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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회 / 오매불망? 2018년에도 이런 말 써야 하나?
22회 / 유명을 달리하다? 뭘 달리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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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회 / 은행? 왜 금행이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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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회 / 아직도 창씨개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13회 / 왜구가 아기발도(阿其拔都)로 불리게 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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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회 / 조계종? 조계가 무슨 뜻인데?
9회 / 선거? 선은 무엇이고 거는 무엇인가?
8회 / 골백번은 대체 몇 번이란 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