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가 말하는‘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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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토정비결 1, 2, 3, 4 _ 이재운 지음, 해냄, 470쪽, 각권 1만3000원
‘소설 토정비결’을 쓴 지 어느덧 18년이 지났다. 하도 긴장하며 쓴 소설이라 원고 말미에 ‘끝’이라고 적으며 시원해하던 게 엊그제인 양 기억이 생생한데, 그러고도 오랜 세월 거듭 되새김질을 하다 보니 글도 세월에 휘어지는지 그새 다듬고 고쳐 1부에서 2부까지 늘어났다.
처음 이 소설을 기획할 때는 토정 이지함이 누군지, 그가 쓴 토정비결이 무슨 책인지 잘 알지도 못했다. 무식이 용기라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다 보니 어렴풋하게 그려지는 게 있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열심히 쓰고, 겁 없이 세상에 내놓았다. 1991년에 1부를 펴내고, 훨씬 더 지난 2000년에 ‘당취’란 제목으로 경향신문 연재를 끝내고 2부까지 펴냈으니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소설이 그저 재미있고 약간의 감동을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런 길고 긴 작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의심스럽고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미라 두고두고 되씹고 또 생각해보고, 뒤적거리다 보니 오늘에는 엉뚱한 결과물까지 덤으로 얻었다. 칭기즈 칸이나 여불위, 삼국지 같은 대하소설을 잇따라 발표하면서도 결코 놓지 않은 의심이 있었으니, ‘소설 토정비결’을 쓰면서 품었던 ‘운명’이라는 게 혹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 의심을 풀기 위해 상당한 비용을 들여가면서 프로그램과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비교 분석한 결과 약 5년 만에 그런 것은 없다는 결론을 내 종지부를 찍고, 이 의심의 끝에서 성격이 형성되는 원리를 발견, 바이오코드라는 성격분석 도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그간 내가 다뤄온 소설 속 인물들이 제대로 그려져 있는지 궁금했다. 옛 문헌과 자료 등을 종으로 횡으로 살펴 인물 성격을 들여다보니 잘못된 것이 하나둘 드러났다. 물론 내 소설에서만 잘못 그려진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작가들이 실존 인물 묘사를 자의적으로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치 그림을 그리면서 주인공을 화가 자신의 얼굴과 비슷하게 그려내는 일이 많은 것처럼, 작가들도 주인공의 성격을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그려낸 작품이 많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왜 태평양전쟁으로 한창 공출이 심할 때 누군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을 보고, 같은 시기에 누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부끄러워했을까. 이와 같은 의심이 다다른 마지막은 그들의 성격이 다르며, 이 성격이란 방어기제의 하나라는 사실이었다. 결국 이 방어기제가 만들어낸 성격이 운명을 이끈다는 사례가 자주 눈에 띄었다.
이후 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성격 묘사부터 바로잡기 시작했다. ‘소설 토정비결’도 그런 관점에서 더 다듬었다.
20여 년 전 그 시절, 젊음만 믿고 큰 고민 없이 다가간 작품이지만 ‘소설 토정비결’이 도리어 내게 큰 화두를 안겨준 셈이다. 인생의 어느 하루, 어느 한 시각인들 귀하지 않으랴만 이 작품에 몰두한 1990~91년은 내겐 매우 특별한 시절이었다.
이재운│소설가·한국지식문화재단 이사장│
<신동아 2009.05.01 통권 596호(p598~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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