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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자기가 무슨 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

1994년인가, 우리말에 의미도 모르고 자주 쓰이는 어휘가 많다는 걸 알고 그런 어휘들만 모아 바른 뜻을 새기는 일을 했다. 모아 보니 500가지나 됐다. 그래서 나온 것이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500가지>였다. 이후 시리즈물이 여러 권 나와 인기를 끌었는데, 내가 여기서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이라고 타이틀을 단 건 독자들에게는 대단히 모욕적인 말이었다. 그런데도 독자들이 그걸 인정하고 크게 호응을 해줘서 늘 고맙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두 군데에서 보이는 게 아니다.

며칠 전 포털뉴스에는 "이순신이 두 명이었다. 이순신의 분신이 있었나?" 하는 황당한 뉴스가 올랐다. 그러면서 이순신 제독과 동명이인인 한 참모가 있었다는 내용을 올렸다. 이순신에 대한 전기를 읽어본 이라면 이순신 제독과 휘하의 이순신 참모가 발음은 같으면서 한자가 다른 사람이라는 걸 다 알고 있다. 자기가 무식해서 뒤늦게 알았으면 아, 그런가 보다 하고 말면 되는 일을 무슨 대단한 발견이나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 사람들이 비웃는다.

 

또 언젠가는 이명박 서울시장이 쓴 상량문에 龍 자가 있다고 이 시장이 용이 상징하는 '영원한 용'이 되려는 야욕을 갖고 있다고 열린우리당의 우원식 의원이 폭로했는데, 이걸 신문마다 받아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상량문에는 변소 상량문이든 헛간 상량문이든 다 용이 들어간다. 용은 물을 상징하는 수신이라 화재 예방으로 적어넣는 것일 뿐이다. 이런 것도 모르고 말하는 국회의원이나, 역시 모르고 기사나 받아쓰는 앵무새 기자나 다 똑같다.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니까 이런 실수가 자꾸 생긴다. 사전 한 번만 들춰봐도 아는 사실인데 이런다.

 

요즘 특히 연합뉴스에서 실수가 많이 보인다. 49재를 49제로 하는 건 예사고, 사전을 찾아보지 않아서 틀리는 일이 너무 많다. 케이블티비, 인터넷신문이 비온 뒤 솟아나는 죽순처럼 많다 보니 허섭한 재주를 가진 이들이 스스로 대단한 줄 우쭐하게 사전도 안보고 글을 쓰다보니 생기는 일이다.

 

난 야구를 좋아해서 가끔 추신수나 이승엽이 나오는 중계방송을 틀어보는데, 처음부터 보지 않고 중간에 켜다보니 상황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중계하는 놈들은 추신수나 이승엽 얘기는 안하고 그 경기에 푹 빠져 다른 선수들 분석하기에 정신이 없다. 한국인이 일본야구를 보고 미국야구를 볼 때는 이승엽과 추신수 보려고 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지 그 야구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중계하는 놈들은 맨날 그쪽 야구를 봐야 해설이 되니 자나깨나 보다가 그만 그 야구에 빠져버리고, 자신들이 왜 중계를 하는지 본분을 잊어버린다. 추신수 언제 나오나 궁금해 기다리는데 이놈들은 헛소리만 지껄인다. 이승엽이 나와 있는데도 이승엽 얘기를 안할 때가 많다.

하는 수없이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요행히 보면 보고, 못보면 만다. 올해는 일부 채널에서 가끔 몇 타수 몇 안타니 하는 작은 설명이 붙기도 하는데, 그나마 고맙다. 그런데 다 그러질 않고 여전히 중계하는 놈들 두 놈만 헛소리를 지껄인다.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나같은 소설가는 이렇게 자나깨나 글 쓰는 게 직업이듯이 각자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고 남는 시간에 정치행위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글은 안쓰고, 작품 활동은 거의 없는 사람들이 정치판에는 잘 기웃거리고, 툭하면 모여서 세미나니 토론이니 시위니 해서 몹시 바쁘다. 교수들이 특히 그런데, 제 전공은 내팽개치고 정치판만 목이 빠져라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가끔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본분을 져버릴 순 없다. 본분을 잃으면 부평초같은 물에 뜬 풀이 되어 이러저리 물결치는대로 흘러다녀야 한다. 인간이 그래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