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뒤 대안교과서라는 책이 출판되어 논란이 인 적이 있다.
그중 하나가 그 책에 표현된 '민왕후'라는 어휘였다.
이에 대해 책을 쓴 이들이 친일파니 역사왜곡이니 하는 비판이 잇따랐다.
이 교과서가 나오기 이전부터 '명성왕후'라고만 쓰고 '명성황후'란 호칭을 쓰지 않은 내가 이 문제를 정리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야 적게 됐다.
'명성황후'란 뮤지컬이 나오면서 이 호칭이 문제가 됐는데, 물론 이전에 민비'로 불리던 데 비하면 나아진 측면이 있다. 민비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광범위하다. 비란 왕비 뿐만 아니라 후비들까지 다 포함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비라고 하면 그가 정실인지 후실인지 구분이 안된다. 그래서 민비라고 하면 안되고, 왕후라고 해야 한다.
그렇다고 황후라고 하면 황제의 정실 부인이란 뜻인데, 명성왕후의 남편인 고종은 명성왕후가 죽을 때까지 왕이었다. 명성왕후가 죽은 게 1895년 10월 8일이고, 그의 남편 고종이 황제가 된 것은 2년 뒤인 1897년 10월 12일이다.
물론 대한제국이 성립되고나서 명성왕후를 명성황후로 추봉하기는 했다.
하지만 추봉이나 추존으로 정식 명칭이 되는 건 아니다.
일반관리들도 죽고 나면 한두 계급씩 올려 추존하는 게 예사인데, 왕실도 마찬가지다.
만일 명성왕후를 명성황후로 고집해야 한다면 대한제국에서 추봉한 대원군도 대원왕이라고 불러야 맞다. 하지만 누구도 대원군을 대원왕으로 부르는 이가 없고, 시비거는 이도 없다.
마찬가지로 추봉을 인정하여 꼭 그렇게 불러야 한다면 공자도 공자라고 부르지 말고 문성왕이라고 불러야 한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그러니 명성왕후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가장 바른 표현이다.
* 1. 명성왕후 : 현종의 정비이자 숙종의 어머니. 한자는 明聖. 명성왕후 김씨라고 한다.
2. 명성왕후 : 고종 이재황의 정비이자 대원군 이하응의 며느리. 한자가 明成. 명성왕후 민씨라고 한다.
-르몽드 지에 소개된 명성왕후. 독일지에는 궁녀라고 나온다.
- 일본에서 그린 공식 초상화 속의 명성왕후. 판권소유(板權所有) 메이지(明治)27년(서기 1894년) 9월10일 인쇄 동년동월10일 발행이 적혀 있다.
- 위 일본이 발행한 명성왕후 사진 부분 확대.
- 러시아 영사 아나톨리 샤프킨 부인 소장 명성왕후 사진. 북한에서는 이 사진을 진영으로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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