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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사람들/선시(禪詩) 감상실

대도무문(大道無門)

大道無門 (無碍子心)
* 임진왜란 때의 승장 유정 큰스님의 글이다. 문정왕후 시절 불교를 중흥시킨 보우 대사와 나눈 선문답 기록이라고 하는데, 유정 스님은 보우 스님이 제주도 유배지에서 장살된 뒤 직접 문집을 찬술한 분이다. 내 소설 <당취>의 주요 인물이다.

- 티벳 수미산 정경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
여기에 문 없이 큰 도가 있으니 이름하여 무애자심(無碍子心)이라 한다.
무애자심은 무엇이던고 ?
문이 없는데 들어가고 길이 없는데 가는 고로 대도(大道)라.

문이 없는데 들어간다 함은 무엇을 뜻 함이뇨?
동쪽도 서쪽도 없으며, 남과 북이 없고,
안과 밖도 없고, 앞도 뒤도 없고, 높은 것도 낮은 것도,
둥긂도 모남도 없고, 길고 짧음이나, 크고 작음도 없음을 말함이라.

길이 없는데 간다 함은 또 무슨 말이냐 ?
막힘도 통함도 없고, 밝음도 어둠도 없으며, 거룩함도 평범함도,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으며 늙고 젊음의 구별 또한 없다.

너와 나의 경계가 없을뿐더러 선과 악의 나눔이나 진짜다 가짜다,
옮다 그르다의 시비도 있을 수 없음이니 이를 일러 길 없는 길을 간다 함이라.

문 없는 문을 들어서고, 길 없는 길을 감은 걸림이 없는 마음이 그 열쇠인데,
걸림이 없는 마음이란 또 무엇을 말함이냐 ?
물질에도 구애받지 않고, 정신에도 구애받지 않으니,
두 마음의 경계가 무너진 상태를 뜻함이다.

물질의 본질을 알고 보면 물질이 아니요(色則是色),
정신도 그 본질을 캐보면 형체가 없는 것이 아닐진대(空則是空),
공연히 인간들이 천만 가지 경계를 짓고 부질없는 이름을 붙여
이것이 옳다 저것이 그르다 시비를 하지만,
티끌만큼도 치우침이 없는 것이 걸림 없는 마음이라.

그건 마치 산 그림자가 물에 비치되 산이 물에 젖지 않고,
구름이 산허리를 어루만지며 지나되
높은 산허리에 걸리지 않는 것과 같은 상태를 말 함이리라.

중생들은 형체도 없는 마음을 있다 하고,
천만 가지 이름 지어 이것이 도(道)다, 저것이 법(法)이다 떠들어대지만,
그것은 훌륭한 스승 밑에서 배운다고 되는 일이 아니요,
만 권 서책을 읽어 이루어지는 일은 더 더욱 아닐래라.
그것은 오직 스스로 경험하고 깨달아야 가능할 것인즉......

자신이 깨닫고 경험한 것이 옳은지 그른지 비추어 볼 거울은 또 무엇이냐 ?
걸림이 없는 마음이란 원래 깨끗하고 맑아 흔들림이 없음이니
만약 헛되고 쓸데없는 생각이 발동하면 하는 일마다 짜증이요.
가는 곳마다 지옥일 따름.
헛되고 부질없는 마음의 경계는 어떻게 허물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욕망의 도깨비는
어느 방망이를 휘둘러 쫓아내어 평안함을 구할 것인가 ?

중생들이여,
거듭 말하지만 그 열쇠는 그대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
쓸데없는 책속에 빠져 허송 세월 할 생각 말고 ,
죽고 없는 옛사람의 그림자 좇아 절하고 복 비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라.

천만 파도가 움직여 가지만 바닷물의 근본에 변함이 있더냐 ?
물은 변함이 없되 바람 따라 파도가 일 듯
어리석은 마음이 동하면 괴로움의 파도가 일고,
청정하면 봄 바다가 되는 것이니.

그러나 형제여.
알고 보면 깨달음도 깨달음이 아니요.
미망도 원래 미망이 아니라
그 깨달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법에는 본래 차별이 없음이니라.

깨달음이니 어리석음이니 하는 것은 오직 스스로 마음의 장난일 뿐.
천지 자연의 이치에는 상도 벌도 없는 것이니라.
다만 마음을 알고 이해하는 자는 진실로 깨달았다 할 것이요.
감정에 이끌리고 자제하지 못하면
천만 가지 지식이 머릿 속에 있다 해도 어리석다 할 것이니
인연에 얽매이면 범부일 것이요.
인연도 초월하면 성인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아 ! 그러나 형제여.
꽃은 분명 아름답건만 필설로 그 아름다움을 다 그려낼 수 없고,
솔거의 솜씨로도 그 향기를 옮겨오지 못함이니,
어찌 말이나 어설픈 글로 큰 도를 설명할 수 있으리요만,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환희도 갈등도 열반 적정도 법에 있는 것이 아니요.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선지식이 남긴 경전 속에 있는 것도 아님이니,
살아 지옥을 원망말고 죽어 극락을 바라지 마라.

극락도 지옥도, 행복도 불행도, 무지도 성급함도
오로지 그대의 마음속에 있는 것인즉,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고, 달랠 수도 없고
때릴 수도 없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고 물으면
나 역시 우매하지만 이렇게 답을 하겠노라.

쓸데없는 서책 던져 버리고 산에 올라 눈 들어 하늘을 보고,
고개 숙여 흘러가는 물을 보라.
물이 그물에 걸리던가 ? 지나는 바람이 그물에 걸리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