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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사람들/선시(禪詩) 감상실

비파 소리 따라가니 - 비파행

비파 소리 따라가니 - 琵琶行

- 낙천(樂天) 백거이(白居易)의 시를 신석정(辛夕汀)이 옮기다

 

심양강 저문 날에 손을 보낼제
갈꽃 단풍잎에 갈 바람 불어
주인은 말을 내리고 손은 배에 올라
잔 들자니 피리도 거문고도 없어라
하염없이 잔 놓고 떠나려 할제
아득한 강물에 달이 적시어
문득 비파 소리 물을 타고 들려 와
주인도 손도 갈길을 잊었구나
비파 소리 따라서 타는 이 물어보니
소리는 끊쳤어도 미처 대답이 없어
배 저어 가까이 따라가 대고
등불 돌려 술을 다시 갖추어 놓고
천만번 부르니 겨우 나오는데
비파 안은채 수집어 고개를 숙여
줄 골라 두어 소리 투겨 보는데
제 가락 아니지만 어딘지 끌려
줄줄이 타는 소리 소리마다 생각이라
평생에 못 이룬 뜻 하소하는 듯하구나
머리 수그린채 비파를 손에 맡겨
덧없는 심사를 쏟아 놓는 듯
지긋이 눌렀다간 되쳐 투기니
예상 뒤이어 육요를 타누나
큰 줄을 쏟아지는 소낙비라면
작은 줄은 속삭이는 말소리 같아
큰 줄 작은 줄이 어울어지는 소린
큰 구슬 작은 구슬 옥반에 구는 소리
꽃 아래 주고 받는 꾀꼬리 소릴런가
흐느끼며 여울물을 돌아가는 시냇물 소리
높고 낮던 소리가 그 어디 엉기어
막힌채 이슥히 소리가 죽어
깊은 한 소스라쳐 일어나는데
되려 없는 소리가 한결 좋아라
은병이 깨져 쏟아지는 물 소리
철기가 뒤끓어 창칼 쓰는 소리
한 곡조 끝내고 줄을 투기니
네 줄이 한데 합쳐 비단 째는 소리
여기 저기 배에선 숨소리조차 없고
가을달만 희구나 강위에 희구나
흥 그리며 발목을 줄사이에 꽂고
옷깃을 여미며 고이 일어나서
스스로 하는 말이 서울 사는 계집으로
고향은 하막릉 아래이었노라고
열세살에 비파를 처음 배워
교방에 있었노라 이르드고
줄 골라 소리 내면 칭찬하는 소리
단장하고 나오면 추랑도 시새웠어
오릉에 사는 귀공자 서로 시새워
내 한 곡 끝나면 비단도 선사했다오
흥겨워 은비녀 비치개로 장단도 치고
술 엎질러 비단 치마 적셔도 봤소
해마다 이러여니 즐거이 보내며
가을달 봄바람을 그저 보냈소
아우는 수자리로 수양어머닌 저승으로
세월이 가고 오고 나도 또한 늙었고
문전엔 찾아 오던 말도 드물고
장사치의 아내가 되고 말았소
사랑보다 이끝에 밝은 장사친
지난달 차 사러 간 뒤 소식이 없고
강 가에 오가며 빈 배를 지키노라면
뱃전을 감도는 달빛 차게 빛나고
이슥한 밤 꿈꾸는 내 지난 청춘이며
흐느껴 우는 꿈에 눈시울도 뜨겁구나
내 듣노니 비파 소리 탄식일레라
중얼대는 그 소린 더욱 설어라
모두다 천애에 떠도는 외로운 사람
어쩌자고 만나서 알게 되었으리
지난 해 서울을 떠나온 이후
귀양살이 심양에 누운 몸이라
궁벽한 고장이라 풍류도 없어
해가 다하도록 한 곡조도 못 들었지
더더구나 나 사는 곳 습기가 많아
집을 싸고 갈과 대 우거졌지
왼종일 이곳에서 무슨 소리 들리리
두견이 피를 토하고 원숭이 슬피 울어
꽃 피는 봄 달 밝은 가을 밤에
흥겨우면 홀로 잔을 기울여 봐도
초동의 노래와 목동의 피리 뿐이여
제가락 찾아서  들을길 없더니
오늘밤 그대의 비파 소리 들으니
꿈결에 들려 오는 신선의 주악인듯
원하노니 그대여 한 곡조 더 타다오
그대를 위해 비파행 지으려거니
내 말에 느껴 이윽고 다시 일어나
줄 골라 비파를 급히 타누나
먼저보다 설어라 타는 그 소리
모두다 눈물없이 들을 길 없어
게서도 누가 가장 섧어하는가
내 옷깃 적시네 눈을 적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