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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이기는 백과사전

민주주의가 시끄러운가요?

민주주의가 시끄러운가요?

 

 - 4.19 혁명 후 우리나라는 비록 가난하기는 하나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백가쟁명으로 떠들어대는 다수의 목소리로 시끄러웠다. 누구나 다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다. 토론은 일견 혼란스러워 보인다. 지리멸렬해보인다. 독재자들이 보기에는 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자 일본 육군 장교 출신 박정희 소장이 탱크를 끌고와 민주의 심장을 쏘았다. 그는 비록 흉탄을 맞고 세상을 떠나지만 그의 딸은 5.16쿠데타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왜 시끄러운지 쓴다. 제발이지 총은 쏘지 말아달라. 1961년에 군부의 일격을 당한 민주주의는 이후 31년간 짓밟히고 찢어지고 더럽혀지다가 1992년 문민정부로 겨우 회생했다.

나는 역진화는 없다는 다윈의 주장을 믿기 때문에 역사에 후퇴가 없다는 사실도 믿는다.


<경인일보로 가서 이 글 읽어보기>

 

민주주의가 시끄러운가요?

 

1992년, 아직 공산주의 훈습에 젖어 있던 중국에 갔다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명암을 똑똑히 보았다. 일당 독재사회란 겉으로는 일사분란하지만 실은 창의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상명하복의 굳은 조직이다. 인구가 오천 만 명이라도 결국 이 독재자를 닮은 인형을 5천 만 개 복제해놓은 것처럼 모든 것을 독재자 한 사람, 혹은 정당의 기준에 맞추니 어쩔 수가 없다. 정당 역시 국회의원이 150명이든 200명이든 딱 한 사람의 지시에 따라 로봇처럼 움직이니 이처럼 생각할 자유를 거세당한 조직은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생각할 사람이라곤 독재자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머지 하버드대 나온 천재, 서울대 나온 수재, 고시 3관왕조차 이 독재자의 말과 의중을 해석하는 용도로밖에는 쓰이지 못한다. 하찮은 결정을 앞두고도 독재자가 뭐라는지 하명만 기다리며 손을 놓는다.

 

우리는 비록 공산주의를 하진 않았지만 그에 못지않은 군부독재를 오래도록 경험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 배경에는 공산당 혹은 일당 독재 체제처럼 딱딱하기만 하던 이 공무원 조직에 선거로 당선된 자치단체장들이 ‘쳐들어가’ 이룩한 뜻밖의 공이 있다. 무슨 소리냐, 교도소간 단체장이 수두룩하고, 각종 비리와 부패로 얼룩졌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독재에 너무 오래 길들여진 사람들이 볼 때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너무 시끄러운 방종, 무책임으로 보일 수 있다. 또 공무원들이 볼 때 민선 단체장은 무모하게 일만 저지르려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 단체장들은 누구 눈치 안보고 자기 머리로, 자기들 머리로 자치단체를 이끈다. 위에 눈치를 봐야 할 독재자가 없으니 그래도 제 머리로 애쓴다. 4년 동안 실적이 없으면 시민들이 내려오라고 명령한다. 의회도 갈아치운다. 그러니 새 두뇌로 계속 순환된다. 독재사회에서는 독재자의 3대까지 최고권력이 무투표로 승계되지만 민주주의 나라에서는 아예 불가능하다.

 

자웅동체 단계에서 암수와 남녀라는 성이 생긴 것은 서로 정보를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독재사회는 독재자의 유전자만 복제해 퍼뜨리는 단세포 세상이고, 민주사회는 활발한 교류로 다양한 종, 다양한 특징을 가진 생명체를 퍼뜨리는 다세포 세상이다. 단일 유전자만 퍼뜨리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심지어 멸종을 부르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건 생물학계의 상식이다.

 

다세포 세상에서는 민선 단체장이 비록 스탈린이나 김일성이어도 상관없다. 4년마다 선거를 치러야 하니 독재자로 바뀔 새가 없다. 10년 이상은 묵어야 독재자가 되지 4년 임기 가지고는 독재체제를 구축할 시간이 안된다. 그러니 민주주의는 그루지아 출신의 심성 착한 스탈린, 말 달리며 독립운동하던 김일성이 악마로 변신할 기회를 주지 않는 묘약이다.

 

고조선 시절부터 음주가무, 고성방가를 즐기고 좀 시끄럽게 자기 주장을 펴는 우리 민족 기질상 민주주의에 가장 잘 어울린다. 전쟁이 나면 노비, 머슴, 천민, 기생, 소작인들까지 들고일어나 적과 싸우는 나라는 우리 민족밖에 없다. 중국과 일본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 이 열렬한 참여 정신이 우리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있다. 그러니 시끄럽기는 하다. 하지만 이것이 민주주의의 진면목이다. 이 민주주의가 지방자치로 만개하고 있다.

 

단체장과 의회가 다소 시끄럽고 혼란스럽지만 그런 가운데 창의성 독창성이 살아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1등을 하는 분야가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활력은 유신시대나 군부시대에 나온 게 아니라 역설적이지만 대통령이 안주감이 되고, 단체장이 검찰 법원 들락거리고, 의회에서 멱살잡이할 때 나온 것이다.

 

머지않아 우리나라는 활발한 참여민주주의가 정착되고, 나아가 유권자들이 모두 함께하는 직접민주주의로 도약할 듯하다. 독재자들이 보기에 우리 사회는 말 많고 시끄럽고 혼란스러울 테지만, 그래서 독재와 식민에 길들여진 군부가 5.16쿠데타를 일으키고, 5.18쿠데타를 일으켰겠지만, 민주주의는 다수가 통제하는 폭풍, 태풍 같은 위력으로 우리나라를 도약시킬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민주주의 만세. 


 - 태풍. 민주주의의 에너지는 이 태풍의 에너지와 비슷하다. 태풍이 되지 않으면 그저 물방울 혹은 물분자 하나하나에 불과하지만 한 번 모이면 이런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낸다. 아무리 뛰어난 물방울이라도 이런 에너지를 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