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褓)쌈과 복(福)쌈
옛날에는 과부가 되면 개가나 재혼이 그렇게 쉽지 않았다. 더구나 과부가 외간 남성과 정을 통하거나 교제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 처지의 과부를 구원하는 한 가지 책략이 있었으니 과부를 사랑하는 어떤 남성이거나 양반네의 축첩을 위한 방편으로 야음을 이용해 과부를 보자기에 싸서 훔쳐가는 것, 그것을 일러 소위 보쌈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는 조선사회에서 은밀히 허용하고 있던 일종의 필요 악이었다. 한편으로는 과부가 있는 집에서도 새파란 청상의 며느리를 남모르게 또는 명분을 잃지 않고 새로운 삶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활용되었던 유일한 과부 구원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과부로써 수절을 원하지 않는 여인으로서는 내심 이 보쌈을 원했을지도 모를 일 이다.
강원도에 전해오는 이야기를 보면 이씨 성을 가진 젊은 과부가 산골에 살고 있었다. 픙문에 건너마을에 사는 있는 홀아비가 이 과부를 좋아해서 보쌈 해 가려고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과부는 반가댁의 규수로써 보쌈 당하는 것이 마음에 없어서 어떻게 할 지를 모르고 있던 터였는데, 정말 소문이 있고 난 며칠 후 어느 어두운 밤에 그 홀아비가 장정을 여러명 데리고 와서 그 과부를 자루에 넣어서 보쌈을 해 가려고 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이 일을 모면할 방법을 궁리를 하다가 남동생을 여장을 시킨 후에 이불을 덥고 누어 있게 하고 그 과부는 병풍 뒤에 슬쩍 숨어 버렸다. 홀아비와 그 일행들은 그런줄도 모르고 이제 되었다 싶어 여장 남자를 자루에 담아 홀아비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 왔다.홀아비는 이튿날 날이 밝는대로 작수성례라도 올린후에 부부의 연을 맺으리라 마음을 먹고 그날 밤은 우선 자기 여동생의 방에다 재우기로 하고 문밖에는 장정들이 지키게 하였다.
17~8세나 되는 홀아비의 여동생은 홀아비의 여동생은 미안하고 안타까워서 올케가 될 여인에게 “일이 이왕지사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어쩌겠어요, 이것이 모두 팔자 소관이려니 생각하시고 이제 그만 저와 함께 잠이나 주시지요”하고 함께 잠 자리에 들것을 권하였다. 여장남자는 부끄러운 듯 잠시 주저 주저하다가 불을 끄고 이불속으로 함께 들어가서 처녀를 끼고 그만 정을 통해버렸겠다.
이 일을 알게된 홀아비는 “헛짚어도 유분수지 젠장~! 내 장가 가려다 매제를 먼저 보게 되었으니 무슨 놈의 팔자가 이리도 기구하더냐~!”하고 탄식을 하였다고 한다.
이런 악습도 있었다. 어느 양반 댁의 귀한 외동딸이 남편을 둘 이상 섬겨야 할 팔자를 타고 났다고 하였는데 그 수효대로 딸의 팔자 땜을 시키려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자기에 싸서 잡아다가 딸과 하룻밤을 지내게 한 다음에 죽여버리는 일도 있었다. 팔자 땜을 마치고 시집을 보내면 청상 과부를 면할 수 있다고 믿었던 악습 때문이었는데 이런 경우에도 보쌈이라고 하였다. 지금으로 치면 엄연한 인권유린이고 특수강간죄와 실인죄에 해당하여 중형을 면치 못할것인데 이런 일들이 보쌈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어던 셈이었다.
그런데 배추,무,등에 갖은 양념을 한 다음 배춧잎에 싸서 먹는 담근김치를 보쌈김치라고 하는 것을 비롯해서 시장통을 지나다 보면”보쌈왕족발””제육보쌈””할머니보쌈”등등의 간판이 눈에 띄는데 쌈을 싸서 먹는것까지 보쌈이라고 하는 것은 유쾌하지 못하다 할 것이다. 먹는 음식을 과부 보쌈하듯 한다는 것은 멀쩡하게 내 돈 내고 먹으면서도 훔쳐먹는다는 말과 비슷하게 한다. 본래 먹는 보쌈은 복리(福裏)이나 박점(縛苫)에서 유래된 것인데 음식을 묶거나 쌈으로 먹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복(福)쌈이 변형되어 보(褓)쌈과 혼용되어 온 것 같다.
<<동국세시기>>를 보면”보름날에는 취나물이나 배춧잎 혹은 김에 밥을 싸서 먹는다.이것을 복쌈이라고 한다”로 되어 있고 <<열양세시기>>에도 “김과 취나물등속에다 밥을 싸서 먹는데 믾이 먹을수록 좋다고 한다.이것을 복쌈이라고 하는데 풍년들기를 바라는 뜻이다”라고 하였으니 오늘 날의 “보쌈”은 “복쌈”에서 유래된 것임을 알수 있다.
그러니 보쌈집이라는 간판을 복쌈집으로 바꾸지 않으면 옛 어르신들이 환생하여 이 꼬락서니를 보셨을 때 모두 과부 보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보(褓)쌈 집으로 오해들 하시지는 않을지~~~!
전 문화원장 이인영님의 글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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