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룡의 징비록은 사실상 실패한 책이었다.
왕과 재상, 대통령, 장관 중 누구도 탐독한 적이 별로 없는 책이다.
대신 적국인 일본에서 1695년에 출간되었다.
나는 2008년에 처음으로 정도전을 집중조명한 소설 <나는 고백한다 - 정도전 살해사건>를 출간하여 그간 조선역적으로 규정되어온 그를 복권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다 작년에 드라마 정도전이 나오면서 내 소설은 재출간되고, 폄하된 정도전의 진정한 가치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참 잘된 일이다.
이번 징비록 드라마를 앞두고, 나는 또한번 고맙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소설의 영향력이 쇠퇴하여 내 목소리가 크지 못한 상황에서 드라마가 나와준다는 것 자체가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난 1992년 <소설 토정비결>을 쓰면서 임진왜란을 앞둔 시기 조선 선각자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바 있다. 그러다 1998년 <당취>를 쓰면서 임진왜란 중의 의병, 승군의 활약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신문연재소설이라서 나름대로 효과는 있었지만 내가 소설을 쓴 목표는 다 이루지 못했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안읽는다기보다 못읽는다. 독서는 지속하지 않으면 두뇌가 책읽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다섯 쪽 넘기기 전에 잠이 온다. 그래서 목청은 높은데 글로 적으라면 석 줄도 못적는다.)
내가 20년 전, 10년 전에 글로 했던 이야기를 이제야 KBS가 영상으로 하려는 모양이다. 영상시대이니 영상이 앞서야 한다. 글은 저 뒤쪽에 서성거리는 형국이다. 내가 그 자리에 있으니 어쩔 수없다.
내가 이번에 발표한 <소설 징비록>은 기초는 1998년에 쓴 셈이니 17년만에 다시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임금만 조명을 받지 신하나 백성은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해왔다. 국민들이 독재자 밑에서 굴종하며 살다보니 왕, 대통령 등에만 집중을 해온 탓이다. 민의 중요성을 정작 민이 알지 못한다.
내 <소설 징비록>을 읽은 친구가 이렇게 물었다. 소설 말미에, 왜란으로 끊긴 녹봉이 전쟁이 끝난 1998년 봄에야 지급되었다고 적었는데, 결국 "유성룡은 7년 전쟁 중 녹봉을 받지 못한 셈 아닌가. 누가 그분에게 녹봉을 드리냐?"고 물은 것이다. 내가 말했다. 소설로 나오고 드라마로 나오는 게 그분이 받는 녹봉이라고.
말이 좋아 내가 <전시재상 유성룡>이라고 타이틀을 걸었지 이 표현은 적군인 일본군이 쓴 말이다. 당시 조선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도리어 삭탈관직시켰다. 적이 무서워한 유성룡, 이순신, 사명당 등을 정작 우리 조정은 잡아다 죽이려고나 하고 삭탈관직이나 시킨 것이다.
유성룡은 왜란 초기 좌의정이었는데, 그는 개성쯤에 이르러 삭탈관직되었다. 기록에는 왜란 시기의 도체찰사라고 나오지만, 그래서 마치 조선군총사령관쯤으로 묘사되지만 그건 훨씬 뒤 정유재란 때의 일이다. 임진년에는 주요 전투가 끝난 이듬해에 겨우 관서도체찰사가 될 뿐이다.
그는 무보직 상태에서 행궁을 기웃거렸을 뿐이다. 책임감 때문에 그런 것이다. 전형적인 노블리스오블리제였을 뿐이다. 내 소설에 나오는 화자인 내 할아버지 이효원도 애초 호종명단에 없었지만 공신집안이라는 이유로 줄곧 왕과 세자를 호종했듯이 유성룡도 그렇게 한 것이다.
유성룡은 조명연합군에 대한 지휘권이 명나라에 넘어가자 비밀리에 유격군을 운용하기도 했고, 그러다 명군에 저지당하기도 했다. 그가 전쟁 전 이순신과 권율을 추천해 전선에 보냈다는 건 그리 강조되지도 않는다.
전란이 숨고르기를 한 뒤 유성룡은 잠시 영의정에 오르지만 정유재란을 치른 뒤 또 삭탈관직되었다.
왕조실록에도 유성룡은 호종공신 1등이 아니고 2등일 뿐이다. 3등에 내시들이 대거 포함된 걸 보면 내시보다는 좀 낫다고 해주었을 뿐이다. 내 할아버지 이효원은 광해군 때 삭탈관직되는 바람에 호종공신에 들지도 못하고 아래 등급인 원종공신1등이 되었다. 내시보다 못한 것이다. 이항복이 1등인 걸 보면 이완구가 총리되는 이치를 알 수 있다. 그저 각하, 전하, 이렇게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데 바른 말하는 사람은 늘 뒷전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유성룡이 징비록을 남겼음에도 이후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마침내 왜란의 후예들에게 강점되고 끝내 나라가 분단되는 지경에 이른다. 오늘의 일본이 휘두르는 욱일승천기라는 깃발, 그게 임진왜란 때 부산에 처음 상륙한 소서행장, 즉 고니시 유키나카의 깃발이다. 아베 신조는 그의 다른 얼굴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는 일제에 부역하면서 출세하고 부를 축적한 언론, 재벌, 군인들이 오늘날까지 으르렁거린다.
징비록은 슬픈 책이다. 조국 조선이 아니라 적국 일본에서 출간된 책이다. 드라마 재밌게 보고, 소설 재밌게 읽으시되 그 사연이나 아시고 즐기시기 바란다.
- 제천에 들러 이근규 시장께 이 소설을 드렸다. 제천은 의병의 도시다.
- 제천 의병전시관 내 의병부조물. 교과서에 나오는 것이다. 왜란 때, 백성들이 일어나 나라 구해주자
패왕 선조가 복귀해 다시 백성들을 탄압하고, 육이오전쟁 때, 도망간 대통령 대신해 학도병 등이 일어나
나라 구해주자 독재자가 돌아와 다시 독재했다. <징비록>을 통해 이런 어처구니없는
역사의 법칙을 이해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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